[유주열의 동북아物語-29] “이순신은 나의 스승입니다”
[유주열의 동북아物語-29] “이순신은 나의 스승입니다”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8.11.1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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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맞아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와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를 배출한 가고시마를 다녀왔다. 가고시마에는 ‘지오파크(geo-park지질공원)’라고 부를 정도로 지구과학이 주는 자연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아직도 수많은 화산이 활동하고 있어 언제 분화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시내에는 노란색 봉지가 여기저기 보였다. 화산이 분화될 경우 화산재를 담아 두는 봉지라고 한다. 가끔 흰 연기(수증기)가 나오는 사쿠라지마(櫻島)는 최근까지 화산이 분화하였다고 한다.

가고시마 앞바다에는 긴코만(錦江灣)으로 불리는 거대한 만이 있다. 3만 년 전 이곳은 바다가 아니고 육지였다고 한다.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여 분화구(칼데라)가 생겼고 여기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와 지금의 만이 됐다고 한다. 킨코만의 해저에는 분화구 많이 있는데 수심이 200m 이상 되는 곳도 있다. 사쿠라지마는 분화구에서 다시 폭발한 새끼 화산이다.

가고시마는 본래 계곡이 깊은 산지였는데 화산이 분화되어 흘러나온 화쇄류(火碎流 분출된 화산재 암석 등) 퇴적물이 계곡을 메워 산 정상과 비슷한 고도의 평지가 됐다고 한다. 이러한 평지를 시라스(白砂) 대지라고 부른다. 시라스 대지는 물은 잘 빠져 고구마 농사에는 적합하지만 물을 가두어야 하는 논농사에 부적합하다.

그래서인지 가고시마의 고구마가 유명하다. 가고시마에서는 고구마가 서로 부딪치면서 씻기는 것처럼 애들은 서로 싸우고 부딪쳐야 잘 자란다고 한다. 가고시마에 유명한 소주는 모두 고구마로 만든다. 일본에서는 고구마를 ‘사쓰마이모(薩摩芋)’라고 부르는 것은 고구마가 사쓰마(지금의 가고시마)로 통해 전국에 보급됐기 때문이다.

고온 작물인 고구마는 홋가이도를 제외하고는 일본 전국에서 생산된다. 대마도에도 고구마가 잘 자란다. 대마도에서는 고구마를 ‘코우코우이모(孝行芋)’라고 붙었다. 달콤하면서 부드럽고 노인이 먹기에 좋은 식품으로 효도용 작물이란 뜻이다.

고구마는 스페인 식민지였던 중남미가 원산지로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년) 후 다른 작물과 함께 유럽으로 전파됐다. 동아시아에서 고구마는 스페인의 식민지 필리핀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 왔고 일본의 고구마는 1612년 경 중국의 복건성을 거쳐 오키나와(류큐)에서 들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명말 서광계(徐光啓 1562-1633)라는 학자가 복건성에서 재배되고 있는 고구마를 본인의 고향 상하이의 시험농장에서 재배하는 데 성공하고 고구마의 저장 요리 방법 등을 기록한 ‘농정전서’를 저술했다.

중국에서는 고구마의 맛이 단 것에 착안하여 감저(甘藷)라고 불렀다. 이 농정전서가 100년 후 조선에 전래됐다. 그 책을 통해 감저를 알게 된 조선 통신사 조엄(趙曮 1719-1777)은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들여온다. 우리나라에는 1763년 대마도의 ‘코우코우이모’가 전래되어 부산 영도에서 처음으로 재배됐다. 일본어 ‘코우코우이모’가 ‘고구마’로 순화됐다.

우리나라의 감자는 고구마 보다 60년 후 청나라를 통해 북쪽에서 들여왔다. 감자가 고구마와 닮아서인지 북쪽의 감저 즉 ‘북감저’로 불렀으나 차츰 사람들은 고구마라는 말에 익숙해지자 북감저는 그냥 ‘감저’ 나중에 ‘감자’로 그 이름이 굳어졌다. 우리의 식생활에 빼 놓을 수 없는 식품인 고구마와 감자가 도입된 지역에 따라 각각 일본어와 중국어로 들어 와 있는 셈이다.

일본의 감자는 고구마와 비슷한 시기에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있던 자카르타 지역에서 도입됐다. 일본에서 감자를 ‘자가이모’라고 하는 것은 자카르타에서 들어 왔기 때문이다. 감자는 남미의 안데스 산맥이 원산으로 유럽에 전래됐으나 처음부터 식용이 되지 못하고 나중에 인구가 늘면서 주식 대용이 됐다. 아일랜드의 감자가 유명한데, 영국의 착취로 먹을 것이 없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감자로 연명하였다고 한다. 고구마가 나팔꽃 같은 꽃을 피우고 덩이뿌리를 먹는다면 덩이줄기를 먹는 감자는 꽃이 아름다워서 한 때 유럽의 왕실에서 관상용으로 이용됐다.

가고시마에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영웅들이 태어난 곳으로 고라이쵸(高麗町)와 인근의 가지야쵸(加治屋町)가 유명하다. 고라이쵸는 오쿠보 도시미치가 태어난 곳이고 가지야쵸는 사이고 다카모리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고라이쵸라는 지명은 정유재란 시 피랍된 조선 즉 고려 도공이 일시 집단 거주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자 이 마을의 많은 하급무사의 자녀들이 신식 교육을 받고 영국에 유학 해군 장성이 되어 청일전쟁(1894년) 및 러일전쟁(1904년)에 참전 일본을 승리로 이끄는 영웅이 된다.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키고 메이지 정부를 반석위에 놓이게 한 것은 가지야쵸와 고라이쵸 출신의 하급무사 출신의 인재들이었다.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생인 사이고 쓰구미치(西鄕從道 해군대장) 그리고 그들의 사촌 오오야마 이와오(大山巖 육군대신)도 가지야쵸가 낳은 인물이다. 특히 러일전쟁 시 동해 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궤멸시킨 도고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제독도 가지야쵸 출신으로 이순신 장군을 특별히 존경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도고 제독은 이순신 장군에게서 배운 학익(鶴翼 함대를 학의 날개모양으로 펼쳐 일자로 진격해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전법을 구사하여 러시아와의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동양의 넬슨’으로 추앙받는 도고 제독은 자신이 넬슨과 비교되어도 이순신과는 비교될 수 없다고 하면서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영원한 스승임을 강조하였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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