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기]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러시아 연해주
[방문기]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러시아 연해주
  • 김현중 대전시 외국인투자유치자문관
  • 승인 2018.11.17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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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2011년 퇴임 후 귀향하여 농촌에서 살고 있다. 지난 주 농한기를 이용하여 후배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 북으로 800km 떨어진 극동지방의 수도인 하바롭스크에 다녀왔다. 블라디보스토크는 9288km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지이다.

현지에서 유학한 젊은 가이드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인 블라디보스토크 중심 연해주가 최근 국내 TV에 소개되는 등 방송을 탄 후 연 20만이상의 한국인들이 밀려온다”고 설명했다.

Vladivostok은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남진정책을 한 산물로 1860년 청나라와 맺은 베이징조약 후 러시아 영토가 됐다.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이다. 러시아 극동지구의 대외교역, 물류, 문화, 상업의 중심지로 극동의 ‘세인트 피터스버그’(상트페테르부르크) 라는 별칭도 있다.

연해주는 숙신, 동호, 예맥 등 퉁구스계, 몽골계 민족의 거주지로 고구려, 발해의 본거지라 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아르셰니예프 향토박물관에 가면 7C 고구려의 터에 세워졌던 발해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라게르 산 부근의 신한촌은 1864년에 한인들이 연해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거주한 디나모 스타디움 부근의 구한촌과 함께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이전까지 블라디보스토크의 양대 한인촌 지역이었다.

신한촌은 이상설, 이동휘, 최재형 등이 기거하며 항일 운동하던 곳으로 특히,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거사를 위하여 2년간 최재형의 집에 머무른 바 있다고 한다. 그 후 1937년 스탈린에 의해 17만2천명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한 이후 폐허가 되었다. 우리가 찾은 신한촌 폐허 자리는 아파트 단지로 변모했으며 한민족연구소가 1999년 3.1운동 80주년을 기해 세운 기념비가 외로이 서 있었다.

위와 같이 역사적으로 깊고 또 한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땅 연해주. 큰 기대를 하고 시내를 다니며 유심히 보아도 생필품은 중국제, 승용차는 일본제, 한국제는 폐차 수준의 시내버스와 라면, 과자 정도뿐이다. 필자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양돈업을 하는 재일동포 이성사 씨 그리고 병원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중국동포 안위남씨를 알고 있다. 옛 우리 민족의 후예들이 네트워킹하며 다시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비행기로 인천에서 직항으로 단 2시간 거리, 항만과 남북철도 연결을 통한 물류, 농림수산, 에너지 등 풍부한 자원이 풍부한 연해주는 우리에게 미래 기회의 땅임이 분명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따뜻한 남쪽으로만 몰려 경쟁하지 말고 한민족의 사연이 많은 북으로도 발길을 재촉해 보자. 특히 글로벌 비즈니스 마인드와 해외 네트워크가 강한 OKTA, 한상(韓商)이 관심을 갖고 도전하면서 한민족의 기개를 떨쳐보자.

김현중 대전시 외국인투자유치자문관
김현중 대전시 외국인투자유치자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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