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첫눈 속에 맞은 백설공주
[이영승의 붓을 따라] 첫눈 속에 맞은 백설공주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8.12.06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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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기쁜 일도 많겠으나 이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있을까? 늦게 출가한 딸이 마흔에 그토록 기다리던 첫아이를 낳았다. 고희를 몇 달 앞둔 나에게는 첫손주이다.    

출산을 위해 휴직을 내고 우리 집에 온지 3일째였다. 예정일이 2주나 남아 느긋했는데 이른 새벽 갑자기 산기가 돌았다. 황급히 차를 몰아 입원시키고 나니 창밖에 첫눈이 펑펑 쏟아졌다. 9cm로 37년 만에 가장 많이 내린 첫눈이란다. 나이 든 산모의 초산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14시간의 고통을 참으며 순산했다. 모성애는 강하다는 말이 실감났다. 성이 백(白)씨고, 첫눈 속에 맞은 여아(女兒)이니 백설공주(白雪公主)가 분명하지 않은가?

‘손주자랑 하려면 돈을 내놓고 하라’는 말이 있다. 실제 그렇게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손주재롱이 얼마나 귀엽고 신기하면 그러할까! 나도 한때 손주자랑이 식상할 때가 있었다. 나이 더 먹은 나는 자식 출가도 시키지 못했는데 어찌 마냥 들어 줄 수 있었겠는가. 간사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던가? 누가 어떤 손주자랑을 해도 지금은 다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픈 얘기와 늙는 얘기 그리고 손주자랑은 피해야 할 글감이라지만 오늘은 몇 줄 적지 않을 수가 없다. 자랑은 아니며 솔직한 심경이다. 그동안 재롱부리는 손주 손을 잡고 다니는 어른들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무수한 글감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 앞으로 그 금기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혼 후 1년이 지나도록 애기가 들어서지 않아 노심초사하던 아내가 이제야 한숨을 돌리는 듯하다. 이를 지켜보는 나 또한 살맛이 난다. 이토록 새로운 활력을 찾게 해 준 딸아이가 참으로 고맙다. 50여 년 전 어머니가 첫손자를 보고나서 그토록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의 어머니 심경을 이제야 알 듯하다.

산후조리원에 있는 딸과 사위가 수시로 애기의 사진을 보내온다. ‘베베컴’이라는 앱을 다운 받으니 CCTV에 의한 애기의 동영상도 볼 수 있다. 태어난 지 일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이목구비가 곱고 선명한지... 때로는 눈을 맞춰주는 듯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도 그랬던가? 신비롭기 그지없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아내는 시도 때도 없이 사진과 동영상에 몰입되어 눈을 떼지 못한다. 어쩌다 애기가 눈이라도 깜박하면 신기하여 어쩔 줄을 모른다. 나도 동영상을 앞에 놓고 자판을 두드린다. 아이가 자란 후 읽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뛴다. 

아내가 외조부 자격으로 아이 이름을 지어보라고 했다. 고심 끝에 백설주(白雪珠)로 지었다. 백설공주(白雪公主)에서 공자를 빼고, 주(主)자는 구슬 주(珠)로 바꾼 것이다. 흰 눈과 같이 순수하고, 진주처럼 초롱초롱 빛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설주와 이름이 같다하여 선택되지는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백설공주’로 자리 잡았다. 

1년 후 딸이 복직하면 우리가 맡아 키워줄 예정이다. 그때는 아장아장 걸을 수 있겠지? 1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 어려서는 온갖 재롱 다 부리고, 자라면서 집안에 웃음꽃 활짝 피우리라.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 할비로서 아무리 사랑을 준다한들 받는 기쁨에 어찌 비하겠는가!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회원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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