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한 장군의 자살소식을 접하며
[이계송칼럼] 한 장군의 자살소식을 접하며
  • 이계송 (재미수필가)
  • 승인 2018.12.0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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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남북전쟁 후 남군한테 '전원 사면령'내려

미국의 남북전쟁은 2차대전보다 더 큰 36만명의 전사자를 냈다. 당시 미국 인구로 보면 엄청난 희생이었다. 이 때문에 승자가 패자를 가혹하게 응징하려는 분위기도 팽배했다. 남군은 ‘반란군’이 됐다. 남군 소령 이상의 장교는 모든 공직에서 배제당하는 엄격한 조치가 취해졌다.

그러나 링컨은 ‘반란군’인 남군 전원에게 사면령을 내렸다. 인간적인 은전이 아니었다. 미 육군이 함몰되는 상태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였다. 분풀이나 반란의 씨앗을 척결하는 것보다 우선 나라부터 살려야 했다. 나라 살리기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링컨의 용단으로 살아남은 남부의 패자들은 군복무를 선택했다. 북부의 졸부들 밑에서 굴욕을 참느니 차라리 군대에 다시 들어가 나라를 위해 명예롭게 일하겠다고 생각했다. 미 육해공군의 탁월한 지휘관 가운데 남부 출신이 많은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 전후 이승만의 고민도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친일분자들을 모두 척결하자니, 나라를 세울 수 있는 전문인재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더욱이 공산주의와도 싸워야 했다. 그가 친일분자들을 써먹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아닌가 싶다.

이라크에서도 비슷한 고민의 시기가 있었다. 히지만 이라크는 다른 길을 걸었다. 중동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은 사담후세인에 충성했던 영관급 이상의 모든 장교들을 몰아냈다. 결국 이라크는 인재난으로 사경(死境)에 빠져들었고, 쫓겨났던 장교들은 대부분 IS를 이끌게 된 것이다. 미국의 때늦은 후회는 엄청난 인명의 손실로 이어진 뒤였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청산’의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면서도, 이런저런 걱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링컨이나 이승만의 경우와는 사정이 다르지만 이러다가 잘라내서는 안 되는 생살마저 자꾸 잘라내는 게 아닐까 염려스러운 것이다. 지지자들의 정서에 부응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처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렴풋이 조선의 사화(士禍)까지 떠오른다.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신세대건 구세대건 사람을 아껴주고 키워주는 전통이 부족한 것같다. 미운 놈은 어떻게든 털어서 제거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 때문에 ‘적폐청산’이란 개혁에서도 인재의 낭비가 두려운 것이다.

군(軍)과 안보(安保)는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다. 그럼에도 지나친 인재의 낭비가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지 않은지 한번 살펴볼 때가 되었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재수 장군의 비보도 그런 점에서 예사스럽지 않다. “세월호 사고시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때의 일을 사찰로 단죄하다니 정말 안타깝다”는 그 유서를 예사로 넘겨서는 안 될 듯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여러 장군들이 ‘적폐’의 대상이 되었다. ‘박주찬 대장 부부 공관병 갑질 사건’도 비슷하다. 박장군은 대장으로 4성장군이었다. 공관병 갑질은 잘못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동안 군부대에 있어온 뿌리 깊은 관행이었다.

그럼에도 여론재판이 난무했고, 또 다른 꼬투리로 그를 인신구속까지 했다. 결국 무혐의 처리 됐지만, 버스는 지난 뒤였다. 4성장군이면 나라의 귀중한 자산이다. 그런 자산을 모욕을 주어 소진하고 만 것이다. 바보 같은 짓이다.

나라의 동량(棟樑)을 함부로 쓰러뜨리면서 제대로 발전된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아직도 인재가 크기에는 척박한 토양이다. 인적청산 보다는 제도와 관행의 폐단을 고쳐가야 하는 이유다.

기득권, 수구세력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가장 소외된 민초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호화스런 주택, 자동차에다 학벌, 명성, 권력 같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라의 미래에 대한 큰 비전이 없이, 수구세력을 때려잡는 것만이 개혁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개혁세력이 얼마나 급속도로 새로운 배타적 이익집단으로 타락하여 권력을 즐기며, 또 다른 출세주의 소굴을 만드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벌써부터 그런 징조가 청와대 안에서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이곳 미국까지 전해온다. 영국의 정치가 존 액튼 경의 말대로 모든 권력은 타락하게 마련인 것일까?

고 이재수 장군의 명복을 빌며 가족들과 슬픔을 함께 한다. 고인이 나라를 위해 힘을 보탤 수 있는, 아직 젊은 나이이기에 비통한 마음이 더 크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꽃씨뿌리는마음으로>(에세이집)

이계송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이계송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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