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린 행운
[이영승의 붓을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린 행운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8.12.2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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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156인 아들은 멘사시험에도 합격한 수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전국 산수경시대회에서 9등을 할 정도로 특히 수학에 재능이 있었다. 포항공대 수학과를 졸업 후 지금은 은행원으로 일역을 담당하고 있다. 자식 자랑하는 사람 팔불출인 줄 내 어찌 모르랴. 우리 부부만큼 자식 때문에 고통 받고 절망해본 사람도 드물 것이다.

아들이 매년 서울대에 200명씩 들어가는 명문 대원외고에 합격했다. 전 해에 딸이 입학하고 금년 아들까지 입학하자 아내는 학교 정문 앞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우리 집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인 학교라 반대하고 싶었지만 이미 전셋집까지 물색해 놓은 터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아들은 2학년 중반부터 컴퓨터게임에 중독됐다. 게임중독의 폐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졸업 때 내신 성적이 57명중 끝에서 2번째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매일 같이 방과 후 학원에 간다고 나가서는 게임방에 있다가 학원 종료 시간에 맞춰 귀가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탈선이 두려워 모른척했다. 수 십 만원 학원비를 반년 이상 내면서 애간장만 태웠다. 어느 날 아들이 학원비가 아까웠는지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겠다고 했다. 혹시나 변화를 기대하며 독서실 예약을 했다. 주인과 연락하며 매일 동태를 체크했으나 수개월간 독서실에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어느덧 3학년이 됐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우리는 정면대결을 결심하고 밤마다 게임방을 찾아다니며 납치해왔다. 그러자 아들은 반경을 넓혀 더 먼 곳으로 나가버렸다. 이제는 찾아 나설 수조차 없게 됐다. 아들은 노골적으로 게임방에서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아내는 새벽에 들어와 잠든 아들을 깨워 등교시키느라 지쳐갔다.

학교 정문 앞에서 매일 같이 지각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연속되는 지각과 졸음수업으로 담임의 경고 전화가 계속 되더니 급기야 최 후 통첩이 왔다. 수업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묵과할 수 없으니 전학을 시키라는 것이다. 조금만 더 지켜봐달라는 아내의 애원으로 겨우 전학을 연기시켰다.

중학 때까지는 담임을 찾아가면 전교에서 제일 머리 좋은 학생이란 칭찬과 함께 교장선생님 방에까지 안내받아 차를 대접받던 아내였다. 이제는 담임선생님 앞에 죄인이 되어 얼굴조차 들 수없는 처치가 됐다. ‘내 자식이 S대에 못가면 누가 가랴’하며 자신만만하던 배짱은 간 곳이 없다. 지방대학에라도 갈 수 있을까 하다가 전문대라도 갈 수 있었으면 했다.

그 심정도 모르는 아들은 말만하면 반항이다. 주먹으로 벽을 뚫고, 형광등을 부수는가하면, 대문을 발로차서 망가뜨리기도 했다. 자식일이라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억장이 무너져 갔다. 대학은 고사하고 사람노릇이라도 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서슴없이 하기에 이르렀다.

한번은 훈계하는 아내를 밀쳐 바닥에 넘어졌다. 아들에게 충격을 주면 변화가 올까하여 아내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들은 미안함은 고사하고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없이 이틀 만에 퇴원했다. 하루는 아들이 눈이 아프다며 안과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아내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되어 안과에 예약 후 의사선생님을 미리 찾아갔다. 아들의 게임중독 상태를 얘기 후 “게임을 자제하지 않으면 실명될 수 있다고 겁을 줘서 게임을 덜하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의사 양심상 그렇게는 말할 수 없다며 주의만 줬다. 그 정도로 효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당시 나는 지방근무로 주말에만 귀가해 심각성을 다 알지 못했다. 아내가 혼자 감내하며 극히 일부만 얘기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인 것 같았다. 내가 구구절절 편지를 써서 하소연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일주간 고심하여 쓴 장문의 편지를 등기로 보냈다.

주말이 되어 긴장된 마음으로 귀가했다. 아내가 내 손을 잡고 아들 방으로 안내했다. 책상위에는 뜯지도 않은 편지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애내가 “아빠 오기 전에 읽어보고 무슨 말이든 한 마디 하라”고 수차 얘기했으나 끝내 거들떠보지도 않았단다. 허탈감을 감당할 수 없어 집을 나와 골목을 무작정 걷는데 목공소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방망이 2개를 주문했다. 집으로 돌아와“이번 기회에 매로 한번 다스려볼 테니 절대 만류하지 말라”고 했다. 의외로 아내도 동의했다.

저녁에 아들이 들어오자 문을 닫아걸고 문초하며 방망이를 들고 엎드리라 소리쳤다. 도망가거나 반항할까 은근히 두려웠는데 순순히 응했다. 한 찰 두 찰 때리기 시작했으나 아들은 죽여보라는 듯 묵묵부답이다. 그것이 나를 더욱 화나게 했다. 중단할 명분을 찾지 목한 나는 점점 세게 쳤다. 문밖에서 노심초사 지켜보던 아내가 급기야“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소리쳤다.

정신을 차린 나는 탄성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골목을 헤매다가 어느 선술집에 들어갔다. 얼마를 마셨는지 정신이 혼미할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빨리 들어오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집에 들어가니 울고 있던 아내가 아들 방으로 안내했다. 이불을 들치니 잠든 아들의 온 몸이 피멍으로 처참했다. 평생 처음 들어본 매였는데 후회막급이었다.

어느덧 3학년 2학기가 되어 입시가 코앞에 다가왔다. 아들도 심각성을 아는 듯했으나 너무 오래 방치한 공부라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급기야 가출을 하고 말았다. 이일을 어찌하면 좋으랴! 가출 신고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 내외는 밤새도록 무작정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그야말로 생지옥 같은 긴 밤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갈 곳을 찾아 헤매던 아들이 서울역 노숙자 속에 누워 있었는데 의인을 만난다. 몇 차례 고시에 낙방 후 뜻을 접고 동아건설에 갓 입사한 젊은이다. 시골에서 야간열차로 올라와 새벽 2시 서울역 대합실을 지나다 노숙자들 속의 머리 깎은 학생을 발견한다. 말을 붙여보니 대원외고 3학년 학생이다. 무슨 연유가 있을 것 같아 자기 숙소로 데려갔다.

밤새워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하며 아들로부터 게임으로 학업을 방한 얘기를 듣는다. 아침이 되자 아들이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합격 후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단다. 다음 날 젊은이가 아들의 귀가를 확인키 위해 전화했다. 앞으로 아들과 소통하며 마음잡고 공부하도록 돕겠다며 아들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했다. 그야말로 구세주를 만난 것이다.

수능시험이 4개월 남았는데 그날부터 정말 독하게 공부했다. 그 결과 수능 점수 380점을 받았다. 서울대 모든 과를 갈 수 있는 높은 점수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한들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기쁨도 잠시, 지난해부터 대학입시에 고교 내신성적 반영 제도가 생겼다. 아들의 내신등급은 최하위라 웬만한 대학은 원서를 낼 수 없었다. 시름이 깊어가던 어느 날 기쁜 소식이 들렸다. 포항공대가 특목고 출신에 대해 수능점수를 환산하여 내신등급으로 적용한다는 입시요강을 발표했다. 특목고 같은 우수 집단에서 내신성적의 강제배분은 모순임을 인정해준 것이다. 아들은 내신1등급이 되어 포항공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국무총리실에 근무하는 친구 부부와 식사를 하게 됐다. 젊은 의인을 만난 아들 얘기를 했더니“총리실과 중앙일보가 연합으로 매달 1건씩 사회적 미담 사례를 발굴, 신문에 게재하는데 이야말로 미담 사례인 것 같다”며 제보를 했다. 중앙일보 기자가 찾아와 아들과 아내를 인터뷰하여 사진과 함께 신문 양면에 대서특필했다. 그러자 방송3사가 그 기사를 보았다며 출연을 제의해왔다. 아내는 부모를 힘들게 한 자식 흉을 신문에 내어 만천하에 알린 것도 부끄러운데 방송에까지 나가서 떠들기 싫다며 끝내 거절했다.

하루는 그 은인으로부터 식사대접을 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일전 그분 결혼식에 아내와 아들이 참석했는데 답례로 그러는가 보다 생각하며 나갔다. 식사자리에서 의외의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지난번 기사를 직장 회장님이 보고 감동받아 “자랑스러운 이 직원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상을 내리라”하여 연말에 대상을 받았단다. 아내는 “이렇게 맛있는 식사 대접은 평생 처음이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대학 첫 여름방학이었다. 귀경길에 음성꽃동네에 들러 일주간 봉사활동 후 귀가하겠다는 아들의 전화가 왔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부부가 찾아 내려갔다. 일주일을 계획했으나 자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 팽개치고 떠날 수 없다며 며칠만 더 하겠단다. 할 수없이 우리만 올라왔는데 아들은 황금 같은 방학 3주를 봉사에 할애하고 올라왔다.

2학년 종강 날이었다. 아들이 예고 없이 보따리를 싸들고 귀가했다. 입대를 위해 휴학을 했단다. 그동안 너무 철없이 살아서 해병대에 입대 극한상황을 체험하고 싶다고 했다. 해병대가 어떤 곳인지 알기나하느냐며 만류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매달 지원자를 모집하는데 수차 지원했으나 선택되지 못했다. 선발에 도움이 될까하여 컴퓨터그래픽 등 여러 자격증과 포항공대 학장 추천서를 첨부해 신청한 결과 드디어 입대하게 됐다.

신병 훈련기간에 24회의 각종 시험을 쳐서 전 훈련병 중 1등을 하면 특별휴가 5일을 받는데 아들이 영예의 휴가를 받아서 왔다. 하루는 아들이‘백령도에만 배치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라는 독백을 내가 엿듣게 됐다. 해병대는 포항, 김포, 백령도 3개부대가 있는데 백령도는 당시 남북한 NNL 관계로 초긴장상태라 기피하는 상황이었다. 걱정의 나날을 보내던 중, 자기 동생이 육군본부 인사담당 고위 장교라고 자랑하던 후배 생각이 났다.

아들에게 후배 얘기를 하면서 “연고가 포항이고, 훈련성적도 1등이니 포항에 배치 받도록 부탁해보면 어떨까?”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들은 정색하며“아버지, 만약 그런 청탁하시면 탈영해버릴 겁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놀란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아들은 컴퓨터 추첨 결과 백령도에 배치됐으며, 한마디 불만도 내색 않고 입대했다.

입대하던 날 돈 한 푼 지니고 가지 않겠다는 아들을 설득하여 겨우 비상금 10만원을 접어서 옷 속에 넣어줬는데 3년 후 제대할 때 그대로 갖고 나왔다. 복무 중 면회를 일체 사절하여 입대 후 2년이 지나서야 백령도 구경을 하고 싶다는 명목으로 겨우 한번 다녀왔다. 그 고된 초병 시절 중대장으로부터 모두가 선호하는 부대본부 행정요원으로 발탁 받았으나 해병대 지원 목적을 생각하여 끝내 거절 했단다.

신병 시절 고약한 고참병 하나가 구타를 일삼았는데 아들은 명문대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특히 표적이 됐다. 심한 구타로 여러 날 병원에 입원까지 한 적 있으며 손등에는 담뱃불로 지진 흉터가 지금도 큼지막이 남아있다. 그 고참병이 제대하기만을 학수고대했는데 막상 제대 날이 잡히자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단다.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해주기로 마음먹고 손목시계를 사 보내달라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당연히 상사께 선물 하려는가 보다 싶어 괜찮은 제품으로 사 보냈다. 제대 후 들은 얘긴데 시계 선물을 받은 그 고참병이 제대하면서 아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단다.

아들이 제대하던 날은 유난히도 추운 겨울밤이었다. 아들이 내게“백령도에 남아 고생하는 병들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는다”며 간식을 좀 보내고 싶다 하였다. 아침 일찍 아들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과자 등을 한 박스 가득 채워 택배로 보냈다. 그 감동적이던 순간은 지금도 가슴이 찡하다. 이것이 바로 해병대 정신이구나 싶었다.

자식에 대해 욕심 없는 부모 누가 있으랴! 그 명석한 머리에 게임만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하버드를 나와 더 큰 길을 걸을 수도 있을 텐데, 아쉬움이 적지 않다. 그러나 가출했던 20년 전 그날을 생각하면 더 이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은 것만도 기적이 아닌가 싶다. 천당과 지옥은 그 누구도 살아서는 가볼 수 없는 곳이다. 우리는 아들 덕택에 두 곳을 모두 수없이 오르내린 행운(?)을 누렸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회원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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