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코리안] ‘새해에는 북녘 땅에 그리팅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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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길화(방송인, 본지 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24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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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 MBC의 랜드마크가 된 미러맨(mirror man)과 유영호 작가.

‘미러맨’을 아시나요

상암동 MBC 입구에 서 있는 조형물 ‘미러맨(mirror man)’. 두 사람이 핑거터치(finger touch)를 하면서 서로 마주보며 서 있는 이 조각은 중견 작가 유영호의 작품이다. 2014년 MBC 상암동 사옥 건설 당시 공모전에서 당선되었는데 애초에는 ‘스퀘어엠(Square-M)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명명되었다.

이 작품은 2015년 헐리우드 마블의 영화 <어벤져스2: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이스터 에그’로 등장하면서 유명해졌고 상암동 MBC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신화적 맥락에서 <어벤져스2>를 분석한 고재열 기자에 따르면 울트론은 선과 악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며, 선에서 악이 나오고 악에서 선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미러맨(mirror man)’이라고 단수(單數)로 표기하고 있는데 기실 한 사람이 거울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단복수 여부가 주제의 해석에서 매우 중요하다. 유영호 작가도 미디어인 MBC의 성찰을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한 몸이니 마주보며 반성하라는 얘기다.

헐리우드 마블 영화 <어벤져스 2>에 나온 미러맨.

세계로 뻗는 그리팅맨 프로젝트

바로 이 미러맨의 작가 유영호가 필생의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공공미술 설치 프로젝트가 있다. 그것은 ‘그리팅맨(greeting man)’ 즉 ‘인사하는 사람’이다. 이 작품은 고개숙여 인사하는 모습으로 된 6미터 높이의 알루미늄 조형물이다. 인사하는 각도는 여러 차례 습작을 거친 끝에 15도로 유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공도 의례도 아닌 겸손 모드다.

그는 무릇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는 행위를 통해 지구촌의 소통과 화합을 추구할 수 있다고 보고, 6년 전부터 세계 곳곳에 이 그리팅맨을 설치하고 있다. ‘인사 정신’의 확산을 도모하는 것이다. 2012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를 필두로, 그동안 파나마, 에콰도르, 미국 뉴저지 등에 설치했고 한국에는 강원도 양구 펀치볼, 경기도 연천 옥녀봉 등에 설치했다.

한국에서 가장 먼 지구대척점인 우루과이에서 시작해 태평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파나마, 지구의 남반구와 북반구가 만나는 에콰도르 등은 그리팅맨의 정신을 세계에 전파할 수 있는 거점이었다. 특히 에콰도르 카얌베는 적도를 사이에 놓고 그리팅맨 한 쌍이 마주보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접경지대에 설치된 한국의 그리팅맨은 분단상황에서 남북의 평화와 소통을 꿈꾸는 예술적 실천이다.

Ecuador에 적도선이 지나가는 도시인 Cayambe에 서로 마주보도록 설치된 그리팅맨.
Ecuador에 적도선이 지나가는 도시인 Cayambe에 서로 마주보도록 설치된 그리팅맨.

연천에 먼저 설치된 그리팅맨

특히 민통선 북방 임진강변에 위치한 연천 옥녀봉의 경우, 북측에서 관측될 수 있는 현저한 지형지물임에도 불구하고 군당국의 협조로 10미터 높이의 그리팅맨이 우뚝 서 있다. 그것은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마주보는 북한 땅에도 그리팅맨을 설치하려는 작가의 포석(布石)이었다.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옥계리에 설치되어 있는 남녘의 그리팅맨. 여기서 군사분계선 너머 보이는 곳은 북한의 황해북도 장풍군 고잔상리로 추정된다. 유영호 작가는 북측을 바라보는 연천군의 그리팅맨과 마주보는 형상으로 장풍군에 그리팅맨을 설치하는 꿈을 꾼다. 남과 북의 그리팅맨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그가 옥녀봉에 그리팅맨을 설치한 2016년은 북한의 4차 핵실험(2016. 3), 5차 핵실험(2016.11) 등으로 분위기가 갈수록 엄중해지던 국면이었다. 그러나 연천 옥녀봉의 그리팅맨은 변함없이 저립(佇立)해 있다. 예술가의 담대한 상상력은 현실을 뛰어넘고 때로는 현실을 견인한다. 당시 옥녀봉 그리팅맨을 답사할 수 있는 ‘연강 둘레길’을 조성한 연천군의 결정도 담대한 구상이었다.

2016년 4월, 경기도 연천 옥녀봉에 설치된 그리팅맨
2016년 4월, 경기도 연천 옥녀봉에 설치된 그리팅맨

2019년에는 북녘땅에 그리팅맨을

2016년에만 해도 북녘땅에 그리팅맨을 세우겠다는 구상은 그야말로 ‘잠꼬대’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2018년에 일어났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지금도 놀라운 북미 회담이 열린 것이다. 이후 상황은 다소 교착 상태에 있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제 남과 북에서 마주보고 인사하는 그리팅맨의 꿈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9.19 선언 이후 가시적으로 전개되는 남북의 변화는 경이적이다. 화살머리고지에서 남북 유해 공동발굴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비무장지대 내에서 시범적으로 22개의 감시초소(GP)를 철수했다. 우리 군 당국은 내년에 DMZ에 있는 모든 GP를 철수하는 것을 북측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상전벽해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남북에 그리팅맨이 마주보도록 설치되지 말란 법이 없다.

물론 2019년의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새해에 들어 북미회담과 남북회담의 진전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70여년의 분단세월을 뚫고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정착을 모색하는 길은 지난하다. 하지만 모든 국면에서 한걸음씩 전진하면 남북의 공존과 화합은 가능의 영역에 들어올 것이다.

예술가의 담대한 상상력을 현실을 뛰어넘는다. 사진은 유영호 작가의 '남과 북의 그리팅맨' 개념도.
예술가의 담대한 상상력은 때때로 현실을 뛰어넘는다. 사진은 이진석 작가의 '비단길'.
예술가의 담대한 상상력을 현실을 뛰어넘는다. 사진은 이진석 작 '비단길' 그리고 유영호 작가의 '남과 북의 그리팅맨' 개념도.
유영호 작가의 '남과 북의 그리팅맨' 개념도. 오른쪽이 경기도 연천의 그리팅맨이라면 왼쪽은 북녁땅 장풍군의 그리팅맨이 된다.

실감나는 9.19 1주년을 위하여

유영호작가는 북녘땅 그리팅맨의 현실화를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연천군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2019년 9월 19일은 남과 북이 실질적인 전쟁 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를 해소하기로 다짐한 평양 공동선언 1주년을 맞는다. 가령 이 날을 목표로 장풍군 그리팅맨의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 실감나는 9.19 1주년이 될 것이다.

그리팅맨은 사람 사이에서 먼저 인사함으로써 소통과 공존이 이루어진다고 꿈꾼다. 꿈은 한 사람이 꾸면 그저 꿈이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꾸면 마침내 그것은 현실이 된다고 했다. 그렇게 꿈*은 이루어진다. 아마도 새해에는 남과 북에 설치된 그리팅맨이 서로 마주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이다. 2018년 세모의 꿈이다.

필자소개
방송인, 언론학 박사, MBC 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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