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物語] 해상왕 장보고와 엔닌스님
[유주열의 동북아物語] 해상왕 장보고와 엔닌스님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0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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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의 새해가 됐지만 한일관계는 여전히 좋지 않다. 지난해 10월30일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 판결에 이어 11월21일에는 위안부 지원 화해·치유재단의 공식해산 그리고 최근 터진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 소동 등 한일관계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인사들은 양국 관계가 1500년 이상 이어져 왔는데 불행한 역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에 의한 임진왜란의 7년 전쟁과 메이지 일본의 강점 36년을 지적하면서 좋았던 시절이 훨씬 많았음을 이야기한다.

지난 해 가을 불교를 통해 활발했던 한일 교류의 현장을 찾아 일본 시가현의 히에이산(比叡山)과 와카야마현의 고야산(高野山)을 다녀왔다. 특히 히에이산 엔랴쿠지(延曆寺)의 엔닌(圓仁)스님과 신라인 장보고와의 인연은 한일 양국의 국민들이 알아야 할 귀중한 역사로 생각됐다.

6세기 중반 백제의 성왕에 의해 공식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인 일본은 백제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가장 피크를 이룬 때가 쇼무(聖武)천황 시대로 화엄종 법상종 등 한반도에서 들어 간 종파가 많았다. 쇼토쿠(聖德) 태자가 창건한 호류지(法隆寺)는 법상종이며 나라(奈良)시대 불교의 대표적인 사찰로 쇼무 천황이 세웠다는 도다이지(東大寺)는 화엄종이다. 덴무(天武) 천황이 황후의 병환이 낫게 하기 위해 새운 야쿠시지(藥師寺)도 법상종이다.

50대 천황인 간무(桓武)는 백제 무령왕의 10세손인 다카노노 니가사를 어머니로 두어 백제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승려들의 지나친 권한 남용과 부패로 불교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수도를 나라에서 헤이안(平安, 지금의 교토)으로 옮겼다.

간무 천황은 승려 사이초(最澄)를 중국(唐)에 파견하여 천태종의 도입을 이끌었다. 사이초는 단기 유학 케이스로 규슈에서 배를 타고 중국의 절강성 명주(明州, 지금의 영파)에 도착했다. 절강성의 천태산 국청사로 향하기 위해서다.

수년 전 필자가 천태산을 방문했을 때 사이초의 행적이 곳곳에 보존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천태종은 중국 수나라 고승 지의(智顗)에 의하여 창건된 종파로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은 해동(고려)천태종을 창건했다. 천태종은 흰 연꽃과 같은 올바른 가르침을 받는다는 의미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법화경)이 중심이라고 한다.

중국에는 수도 장안을 중심으로 인도의 밀교가 도입되어 유행하고 있었다. 사이초는 중국 천태종에 선종 그리고 밀교의 정신도 포함 모든 사람은 부처님 앞에 평등하다는 교리로 일본 천태종을 개창했다. 간무 천황의 지원을 받아 헤이안 인근의 히에이산에 당시 연호를 딴 엔랴쿠지를 창건했다. 해발 848m의 히에이산은 비와코(琵琶湖) 호반에 위치하며 수도에서 멀지 않아 왕실과 귀족이 순례하는 불교 성지가 됐다.

간무 천황이 살아 있을 때 번성했던 천태종은 그의 아들들인 헤이제이(平城)천황 그리고 사가(嵯峨)천황 대에 와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수도 헤이안에는 중국의 밀교를 제대로 공부한 구카이(空海)스님이 인기를 얻고 있었다. 전교대사 사이초보다 7년 연하인 홍법대사 구카이는 804년 견당사의 일원으로 사이초와 같이 규슈에서 출발하는 배를 탔다.

4대의 견당사 선박에 구카이는 제1호함, 사이초는 제2호함에 탔다. 도중에 풍랑으로 4호함은 행방불명이 되고 3호함은 규슈로 되돌아 왔다. 중국까지 간 배는 1호 및 2호함인데 구카이가 탄 배는 복건성 복주에 잘못 도착하여 6개월에 걸쳐 장안으로 갈 수 있었다. 다행이 사이초가 탄 배는 예정 목적지 명주에 도착하여 순조롭게 단기 유학을 마치고 돌아 올 수 있었다.

구카이는 당의 수도 장안에서 당시 유행하던 밀교의 스승 혜과를 만나 정통 밀교를 공부하고 사이초 보다 1년 늦게 귀국했다. 중국 서안의 청룡사에 가면 구카이가 스승 혜과로부터 밀교를 전수받는 모습의 동상이 있다. 불교에서 밀교는 문자로 표현된 현교(顯敎)와 달리 비밀의 가르침을 말한다

학자 집안 출신인 구카이는 승려가 되기 전에 천황 자녀의 가정교사로 발탁된 외숙과 함께 고향 사누키(지금의 香川)에서 상경 유학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논어 등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서예에도 발군이었다고 한다.

간무 천황의 차남으로 헤이제이 천황에 이어 황제가 된 사가 천황은 유학에 조예가 있는 달필가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사이초보다 구카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구카이가 가져 온 밀교는 기복과 재앙을 막게 해달라는 가지기도(加持祈禱)를 통해 현세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사가 천황은 구카이에게 고야산에 거대한 땅을 하사했다. 고야산에서 자라는 신비의 나무 금송(金松 삼나무의 일종)은 잘 썩지 않아 천황의 관재(棺材)로 사용된다고 한다. 백제 무령왕의 관재가 고야산의 금송으로 알려져 있다. 마침 늦가을의 단풍과 금송의 조화는 고야산 풍경을 신비롭게 했다.

구카이는 고야산에서 일본 밀교의 진언종(眞言宗)을 개창했다. 진언종의 총본산은 교토의 도지(東寺)이지만 고야산의 곤고부지(金剛峯寺)를 으뜸으로 치기도 한다. 고야산은 해발 1000m 전후의 8개 산봉우리가 둘러싸인 해발 800m의 평탄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하늘에서 보면 8개의 산봉우리가 마치 활짝 핀 연꽃을 닮았으며 밀교에서 말하는 만다라(曼陀羅, 불법의 모든 덕을 원만하게 갖춘 원)처럼 보인다고 한다. 문수보살을 섬기는 중국 산서성 우타이산(五臺山)에도 고야산과 비슷한 지형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면서 밀교가 나오기 시작했다. 인도의 남쪽은 강력한 토착의 힌두교가 활발했고 북쪽에는 외래 종교 이슬람교가 침입해 왔다. 불교는 남북의 협공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힌두교의 주술적이며 구복적인 것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병든 자를 낫게 한다든지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게 하는 등 기도를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했다. 실제 구카이도 이러한 기도로 효험을 보여주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천태종은 진언종의 개창으로 일시 쇠퇴했으나 천태종 3대 교조였던 자각대사 엔닌에 의해 다시 번성했다. 엔닌은 신라인 장보고의 선단과 장보고가 중국에 만든 신라방의 도움으로 9년간 당나라 체재했고 그 기록인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를 연구한 미국 하버드대의 에드윈 라이샤워 교수는 장보고를 9세기 동아시아의 해상 상업제국의 무역왕으로 높이 평가했다.

엔닌은 귀국 후 엔랴쿠지에 신라명신(新羅明神)이라는 사당을 만들어 장보고를 모셨다. 이러한 인연으로 지금도 엔랴쿠지는 장보고의 출생지 전라남도 완도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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