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162] 장승
[아! 대한민국-162] 장승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19.01.19 0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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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오늘에 와서 장승은 사람들의 삶과 동떨어진 채 한낱 민속적 볼거리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본래는 민중의 생활에 깊숙이 뿌리 박혀 민중의 삶과 함께 어우려져왔던 원시시대 이래의 토속적인 풍물이었다.

장승은 솟대, 선돌, 돌무더기, 신목, 신당 등과 함께 원시신앙의 조형물로 유목, 농경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승의 주된 임무 중의 하나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마을을 수호하는 지킴이 역할이었고 마마와 같은 괴질과 재해가 범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 주민들을 공동체 의식으로 묶어주고. 마을과 마을의 경계표시, 여행자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일까지 떠맡았다. 당연히 장승이 서 있는 위치는 마을 어귀나 큰길가 아니면 들녘이 된다.

장승은 마을 사람들의 소망을 들어주는 대상으로 그들의 애환이나 고충을 끌어안아 주는 가깝고 편안한 모습이면 족했다. 굳이 근엄함이나 엄숙함 따위로 치장할 필요가 없었다. 못난이 장승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그 모습이 민중의 삶과 닮은꼴이요, 어디선가 본 듯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친근하고 소박한 얼굴인 때문이다. 장승은 무형식의 형식이라고 일컬을 만큼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귀신, 장군, 노인, 선비, 문무관, 미륵, 부처 등등 그 소재도 다양하며 표정 또한 천태만상이다.

장승은 지역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비교적 전국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또한 장승의 재료에는 소나무, 밤나무, 오리나무 등의 나무로 되어 있는 곳(주로 중북부지방), 돌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장승의 모습도 대개 그것이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초기에는 사모관대를 쓴 권위적인 모습의 장승이 만들어지다가 점차 민중의 모습, 그 중에서도 파란과 역경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온 인자하고 친근한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바뀌어 왔다. 어느 곳에서는 소년 장승이 만들어지는데, 이는 미륵신앙과 관련하여 후천개벽된 평등사회에 대한 염원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에서 나무 장승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 서울 인근의 남한산성 주변이다. 엄미리, 검복리, 무갑리, 하번천리, 양짓말, 서하리 등나무 장승의 숫자도 많지만 그 수 못지않게 온전히 보존·전승되어 온 곳이 이들 지역이다. 남한산성 주변의 장승들은 대개 이정표를 적고 있다. 서울 80리, 이천 40리… 등으로 되어 있지만 그 거리는 정확하지 않다. 마치 오가는 길손들에게 농이라도 거는 듯이 다소는 중구난방이다. 나무장승은 돌장승에 비해 소박하고 친근한 맛이 나는데다 3~4년마다 깎아 모셔야 하기 때문에, 그 조각솜씨 만으로도 훌륭한 민중예술 작품이 된다.

나무가 썩어 더 이상 장승의 역할을 못하게 되면 뒷산에 무덤을 파고 묻으며 제사의식을 치른다. 장승은 대개 길을 사이에 두고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마주 보게 세우거나 나란히 세운다. 장승의 기본형은 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을 변형하여 수호신상으로 상징적인 표현을 하고 몸체에 이름을 적어놓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얼굴의 표현인데 보통 툭 불거진 통방울 눈, 주먹코, 삐져나온 송곳니와 앞니, 그리고 고깥이나 갓 모양의 모자가 기본이다.

모양은 이렇게 희화적이지만, 어쩐지 보통의 한국 사람에게 쉽게 어울릴 수 있고 가깝게 다가가고 싶은 그런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 한국의 장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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