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두 번의 사과
[이영승의 붓을 따라]  두 번의 사과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9.01.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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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라 가볍게 보고 말했다. 분명 나의 실수였다. 그 어떤 변명 한마디 하지 못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깍듯이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이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첫 사과는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다. 아파트 옆 동에 살고 있는 같은 반 학생이 아들 방으로 자꾸만 놀러왔다. 아내는 못 오게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많았다. 그 아이는 부모가 이혼 후 새엄마가 들어왔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엘리베이터 안에 오줌을 누는가하면, 아무데나 낙서를 하고, 친구들과 싸움질도 심했다. 그래서 ‘문제아’라는 소문이 온 동네에 나돌았으며 친구들도 기피했다. 

고심 끝에 아내 몰래 “그런 아이이니 자주 어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아들에게 슬며시 타일렀다. 아들은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아버지, 저도 걔가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나까지 멀리하면 걔는 어떻게 해요? 계속 같이 놀지는 않을 테니 그냥 지켜봐주세요.”라고 정색하며 반박했다. 나는 그때 고개를 바로 들 수가 없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솔직히 사과했다. 

그 후 한두 해 지났을 무렵이다. 주말이 되어 아들과 집 근처 아차산으로 등산을 갔다. 산 중턱을 오르는데 아들의 친구 한 사람과 마주쳤다. 서로 반갑다며 인사를 나눈 후 지나가자 내가 곧바로 “쟤 공부 잘하니?”하고 무심코 물었다. 아들이 정색하며 또 항의조로 말했다. “아버지의 말을 쟤가 들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요? 쟤가 공부를 잘하니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어쩔 뻔 했어요? 공부가 다가 아니잖아요?” 그때도 나는 깍듯이 사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어라고 변명할 여지도 없지 않은가?

세월이 흘러 아들이 해병대를 제대한 직후였다. 집밖이 왁자지껄하여 뛰쳐나갔다. 아파트 정문 앞 건널목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모인 사람들 중심에 아들이 서있었다. 혹시 사고에 연루되었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사고 순간을 목격한 아들이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외제 승용차가 자장면 배달원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조폭처럼 생긴 두 젊은 가해자가 차에서 내려와 배달원이 운전을 잘못했다며 발로 차는 등 폭행을 가했다. 건널목에서 대기하던 많은 목격자들이 이를 보고도 젊은이들이 무서워 아무도 만류하지 않았다. 해병대 출신인 아들이 불의를 보고 참을 수 없어 “쓰러진 사람에게 어찌 이럴 수 있느냐?”며 제재하고 나섰다. 

순간 두 젊은이가 “야 이 자식, 너는 뭐야?”하며 양쪽에 막아섰다. 가격 당하려는 일촉즉발의 위협에 직면한 것이다. 도망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의 일에 2대1로 위험을 무릅쓰고 싸울 수도 없었다. 참으로 난감하고 절박한 위기의 순간이었다. 순간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차가 도착해 위기를 모면했다. 이를 지켜보며 걱정하던 많은 목격자들이 와! 하며 안도의 손뼉을 쳤단다. 

가슴을 조이며 듣던 내가 “왜 쓸데없이 무모하게 나섰느냐?”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꽉 다물었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또 무슨 말인가 한방 얻어맞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이 “괜히 무모하게 나섰다가 위기에 직면했어요. 앞으로는 조심해야 될 것 같아요”라고 했다. 내가 충고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난날 두 번 사과했던 경험 덕분이다. ‘팔십 노인이 세 살 아이에게서 배운다’는 옛말이 나를 두고 한말 같아 씁쓸했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회원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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