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할아버지 바보가 되다
[이계송칼럼] 할아버지 바보가 되다
  • 이계송 <재미수필가>
  • 승인 2019.02.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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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딸한테서 첫 손자 봐...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게 축복

70이 넘어 할아버지가 되었다. 늦었다고도 한다. 나로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큰 딸네는 아직 아이가 없다. 5살 아래 둘째 딸(뉴욕거주)에게서 첫 손자를 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었다. 정말 축복이었다. 상제(上帝)의 은총이라고 해야 옳다. 왜 그런가?

둘째 딸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우리 내외는 물론 우리 4남매 전 가족들 모두에게 엄청난 기쁜 소식이었다. 열 달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주고받은 가족들 간 따뜻했던 대화, 베이비샤워 파티에서 함께 만나 나누었던 기쁨, 드디어 터진 순산의 소식에 모두가 안도하며 환호를 질렀던 일.... 아이 하나로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을 나누었으니 은총이 아닌가.

아내는 아이 넷을 낳으며 산후조리 한번 제대로 못한 것이 한(恨)으로 남았던 것 같다. 순산한 딸에게 즉시 달려갔다. 뒤 늦게 나도 합세했다. 외손자를 처음 가슴에 안은 순간의 감격은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저 하늘에서 나의 부모님, 조부모님들도 기쁨을 함께해주셨다. 그분들의 모습이 순간 떠올랐고, 사랑을 먹고 자랐던 나의 어릴 적 모습이 겹쳐졌다.

특히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의 할머니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손자가 드디어 손자를 보았구나” 하시는 것 같았다. 뒤돌아보면 그분만큼 내게 사랑을 듬뿍 주신 분은 없다. 물론 부모님 사랑도 엄청났지만 할머니는 첫 손자인 나를 자신의 살과 피보다 더 귀하게 여기셨다. 굶주릴 정도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할머니는 나의 배만은 채우시려고 숱한 고생을 다 하셨다.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먹고 나는 자랐던 것이다. 지금도 내가 마음이 심란하거나 무거울 때 그분은 가끔씩 꿈속에서 나타나 나를 안아주신다.

막내(아들)를 안아본 지 30년만이다. 난 아이를 품에 안는 법도 잊어버렸다. 서툴게 손자를 안고 첫눈을 마주쳤다. “좋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구나. 나의 할머니가 나를 사랑해주셨던 것처럼 너를 사랑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말년에 이런 귀한 선물을 주신 상제님께 또한 깊은 감사를 드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작품들이 답한다. 사랑으로 산다고. 사람은 태어나 사랑으로 자라고, 사랑으로 성장하고, 또한 사랑으로 말년을 보내다 떠난다. 내가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축복이다. 자녀의 다산(多産)이 복중의 복, 지복(至福)이라고 하는 이유다. 가족 간의 사랑만큼 진한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의 경우, 나의 4남매가 나에게는 최고의 보물이다. 이 보물들이 더 큰 보물을 나에게 안겨줄 것임이 틀림없다.

손자 자랑하려면 지갑부터 꺼내놓으란다. 자랑 안 해도 다 안다는 거다. 친구들은 할아버지/할머니 클럽에 뒤늦은 동참을 환영한다며, 이런저런 충고도 해준다. “행복이 넘칠 때”라는 것, “손자 바보가 된 기분을 잘 안다”는 것, 손자 돌봐주되 “적당히 봐주고 적당히 즐기라”는 거다.

미국의 의학전문 잡지 Newsmax Health가 소개한 연구결과도 재미있다. “손주를 이따금씩 돌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장수한다. 연령과 일반적인 건강상태를 감안했을 때 손주를 이따금 돌보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20년 동안 사망할 가능성이 3분의 1이 낮다. 반대로 전혀 돌보지 않거나 풀타임으로 돌보는 것은 좋지 않다. 이따금 손주를 돌보는 사람들의 50%가 10년 생존을 하고, 손주 없이 성인이 된 자녀만을 돌보는 노인도 절반이 10년을 생존한다. 자녀 없이 친구나 이웃을 보살피는 사람은 7년을 생존하고, 이해 비해 다른 사람을 보살피지 않는 노인은 평균 4년을 생존한다.” 왜 그런가? “보살핌을 주는 사람은 스스로가 다른 사람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삶의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자바보’라도 좋다. “하나의 손자가 자기 자식 셋보다 귀엽다”는 유태인들의 속담이 정곡들 찌른다. 문인 계용묵은 “손자는 인생의 봄 싹”이라며 “그것을 가꾸어 내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뜻있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봄 싹’을 돌보며 즐기는 일은 은총이며, 지복(至福)임이 틀림없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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