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동네 어르신 같은 보성 방장스님을 그리며
[Essay Garden] 동네 어르신 같은 보성 방장스님을 그리며
  •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9.03.0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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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해 동안 제 건강이 나빠 안부를 못 드린 점 스님께 죄송하여 변명 올립니다. 한국에서 대학원 공부한답시고 고생하던 제 딸에게 종종 “엄마 찌찌 먹으러 미국 안가나?”라고 전화에서 하신 우스개 말씀이 떠오릅니다. 

미국으로 돌아 온 후 딸은 지금 두 군데 직장을 오가며 바삐 지내기에, 큰 스님의 입적소식에 통곡을 합니다. 컴퓨터나 손전화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던 제가 최근에는 이상한 영감이었는지 유투브로 훌륭하신 스님의 법문들을 접했습니다. 

하루는 우연히 보성 방장스님의 임종게 영상을 보았지요. 이 슬픈 소식에 저는 당장 고국으로 날아갈 수도 없으니 스님의 저서인 ‘마음 밭을 가꾸는 불자’를 상에 세우고 촛불을 밝히며 삼배를 올립니다. 더 귀한 말씀 그립고 뵙지 못한 아쉬움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2012년 보성 방장스님을 뵈러 부산 사하구에 있는 관음사로 찾아갔던 가파른 승학산 기슭의 초행길. 절벽 길인 줄 멋모르고 구두 신고 숨차게 오르던 우리 모녀의 고생을 모른 척하셨다던 새침스러운 법어에 우린 한바탕 웃었지요. 우리가 머무를 방이 잘 되어 있는지 손수 시자를 앞세우고 점검하시던 관음사에서의 하룻밤. 

조용한 미소의 지현 주지스님과의 차 한 잔, 염주를 굴리며 법당 마당을 걸었던 밤하늘과의 그런 추억에 저희모녀는 행복합니다. 떠나던 날은 저의 두 번째 책 출판을 축하해주시는 하사금에 주차장까지 자동차를 제공해주시어 방장스님의 섬세한 여러 가지 보살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여학교 때부터 스님을 뵈었는데요, 와병의 친정아버지를 위문오신 전 송광사 초대 방장 구산스님과 종종 오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생 때는 저의 아버지 49제를 보성스님께서 조선대학교 곁에 있는 신광사에서 법문을 하셨지요. 또 구산 큰스님을 뵈러 송광사 삼일 암으로 친정집처럼 제가 드나들 때는 보성스님께서는 율사 소임을 맡으셨지요. 

당시 저의 친정어머님은 대한민국에 몇 분 안 되는 귀한 ‘율사’스님이라며 자랑스러워하셨지요. 그러나 지금의 풍족한 절간 음식과 달리 영양이 전혀 없는 두어 가지 반찬. 법당에서 염불 정진하시는 스님의 건강을 걱정하였던 우리들의 마음. 나물반찬은 물론 김 한 톳도 정말로 귀한, 빈곤한 시절이었지만 무섭게 수행하던 참다운 수행승들의 해맑은 모습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당시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아 손전등을 비추며 밤이면 손으로 더듬거리며 조심스레 걸어갔던 요사채의 추억들. 화엄각 앞에 흐르던 차가운 개울물에 얼굴을 씻고 대법당에서 들었던 스님들의 장엄한 새벽 예불소리와 종각의 가지가지 울림들이 불법의 향기로 저에게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힘든 속세에서 저의 신심은 차츰 차츰 깊어갔습니다. 언젠가 서울의 유명 여자 대학생들이 수련을 하는데 신발을 가지런히 벗지 못하는 모습을 보시고 엄하게 꾸짖으셨다는 당시 주지 보성 스님의 말씀 등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큰스님께서는 동네 어르신처럼 항상 사람의 됨됨이와 승가의 가풍을 엄격하게 지적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참, 송광사 방장스님이 되시기 바로 전 해 인가 봅니다. 미국 샌디에이고 한인 타운의 사무실 같은 작은 절 개원식 때 로스앤젤레스에서 도안스님과 오신 인연으로 행사 후 저의 집에서 몇 밤을 주무셨지요. 그 때 저희 집 현관문을 여는 제 남편을 보자마자 “집에 뜬 보름달을 보러 왔어요.”라고 재치 있게 멋진 시 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대장암 절제수술 후 걱정과 달리 서서히 회복되어 건강해진 제 남편을 보고 스님께서 놀라셨던 거지요. 마음을 편히 해주시려고 우리 가족 먹는 대로 간단히 먹자고 하시었기에 대접을 못한 것 같아 마음이 걸립니다. 아침이면 우리 집 강아지 이마에 손을 올리시고 ‘옴마니 반메훔’으로 축생해탈 기도를 해주시던 정경도 그리움 되어 아롱거립니다. 

하루는 제 딸을 보러 가자하시어 4시간 운전하여 산타 바바라 대학교의 교정을 가족이 함께 걸었던 추억. 제가 궁금해 묻는 인생살이 질문에 늘 박식한 해학으로 풀어주시던 동네 아저씨 같은 보성 큰스님. 나쁜 사람에게는 야단을 치시지만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먼저 다가서시던 방장 스님. 말씀은 좀 빨라도 소탈하시며 따뜻하게 사람을 깊게 보실 줄 아는 영특한 혜안을 가지신분. 당시 이민초기의 삶이라 부족한 대접을 해드렸기에 아쉽습니다. 

저희 집 거실에 있는 틱낫한 스님과의 사진을 보시며 국적은 달라도 달라이라마 스님도 뵈었다며 두 분을 존경하신다던 보성 큰 스님, 과거의 엄격한 승가의 규율과 달리 한국불교의 청정함이 점점 퇴색되어 간다며 일부의 스님들을 걱정하시던 말씀은 법정스님과도 의견이 같으셨지요. 무엇보다도 병약하셨음에도 부처님의 가피와 용맹정진으로 세수 91의 건강한 법체로 본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최 선생, 잘 있나” 하시던 경상도 사투리를 어디서 들을까요. 또 제가 대구에서 보았던 것처럼 속세의 친구처럼 늘 농담 주고받던 대구 관음사 원명스님과의 우정은 어찌하시지요.

범일당 보성 방장스님, 생전의 가르침들을 꼭 명심하고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청정한 영혼으로 오래오래 대한민국과 부족한 저희를 지켜 주시옵소서. 
 
- 2019년 2월22일 금요일 다비식 날에 미국에서 추모의 마음으로····  

필자소개
경북 사범대 화학과 졸업
월간 ‘피플 오브 샌디에고‘ 주필역임, 컬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되어
세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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