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독립운동가루트 100선-인트로] 베이징 도처에 항일독립운동가의 흔적
[북경독립운동가루트 100선-인트로] 베이징 도처에 항일독립운동가의 흔적
  • 베이징=홍성림 해외기자
  • 승인 2019.03.0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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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명에 달하는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베이징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에서 ‘북경독립운동가루트’ 지도제작

2019년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보니 연 초부터 여기저기서 이와 관련된 행사소식이 많다. 특히 며칠 전인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에는 마치 1919년으로 돌아간 듯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는 외침이 삽시간에 들불처럼 전국을 휩쓸며 가슴을 뜨겁게 했다. 때가 되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100주년이라니까 이벤트처럼 쏟아져 나오는 행사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으나, 현지에 살면서 북경을 포함한 중국 화북지역의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발자취를 따라 답사하며 유적지를 발굴하고 홍보하는 일을 하는 단체의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나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폭발하고 있는 이 때, 시류에 편승해 북경의 독립운동사를 소개할까 한다.

1921년 18차에 걸친 '군사통일주비회'가 열렸던 동물원 창관루(畅观楼).
1921년 18차에 걸친 '군사통일주비회'가 열렸던 동물원 창관루(畅观楼).

북경에서의 독립운동을 이야기하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북경이라는 지역이 그만큼 일반대중의 인식 속에서 독립운동사와는 동떨어진 지역이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아예 ‘듣보잡’ 역사인 것이다. 몸소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며 6형제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한 것으로 전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우당 이회영 선생, 역사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깊은 통찰로 올바른 역사인식과 민족정신을 강조한 민족사학의 거두 단재 신채호 선생, 정통유학자로 전국의 유림들을 규합하여 <파리장서>를 만들어 파리강화회의에 송부하고 광복 후에는 성균관대학 초대총장을 지내신 심산 김창숙 선생, 세 분은 북경의 좁은 골목에 위치한 이회영 선생의 집에 모여 독립방략을 논의하며 함께 울고 웃었던 대표적 북경의 독립운동가로 ‘북경 3걸(傑)’로 불린다. 북경은 그 외에도 한국 최고의 아나키스트 이론가로 의열단의 핵심참모였던 유자명 선생,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인 김산(본명 장지락), 창일당과 고려유학회 등의 단체를 이끌며 활동한 운암 김성숙, 그 외에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안창호, 이육사, 심훈, 박용만, 신숙 등등…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만으로도 600명 가까운 독립운동가들이 장기로 거주하거나 혹은 근거지로 자주 왕래하며 활동했다.

1911년 손정도 선생이 북경에 전도사로 들어와 처음으로 조선어 설교를 시작하였던 '북경기독교회 숭문문당(北京基督教会 崇文门堂)' 예배당 내부. 현재도 조선족이 매주 일요일 조선어 예배를 드리고 있다
1911년 손정도 선생이 북경에 전도사로 들어와 처음으로 조선어 설교를 시작하였던 '북경기독교회 숭문문당(北京基督教会 崇文门堂)' 예배당 내부. 현재도 조선족이 매주 일요일 조선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중국 내에서도 북경과 화북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시민연구단체다.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4년여가 됐지만 실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한 것은 이제 1년 남짓 됐다. 비록 활동기간은 짧지만 그동안 소기의 성과가 있어 지금까지 북경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 253분의 정확한 행적을 찾아내어 지도에 그 지점을 표시하고 ‘북경독립운동가루트’ 지도를 제작했다. 그 외에도 정확한 지점을 확정할 수 없지만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이에 가담했던 300여 분의 활동을 지도에 첨부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지도는 100여 차례의 수정을 거쳐 현재 버전 11.8이 완성된 상태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동안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에 가려져 잘못 알려졌거나 일반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북경의 독립운동사가 세상 밖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길 기대한다.

1944년 이육사 선생이 순국하신 '동창후통 28호'로 당시 일본 영사관 헌병대 지하감옥이 있던 곳이다. 1월 16일 기일을 맞아 북경교민들과 함께 찾았다.
1944년 이육사 선생이 순국하신 '동창후통 28호'로 당시 일본 영사관 헌병대 지하감옥이 있던 곳이다. 1월 16일 기일을 맞아 북경교민들과 함께 찾았다.

그동안 북경의 독립운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아마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가 지나치게 상해 임시정부 중심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외교적 수단에 의지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임시정부와는 달리 북경에서 활약하던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무장투쟁만이 자주독립을 쟁취하는 최대의 실천적 방략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통합 임시정부를 수립하던 당시 커다란 희망을 안고 참여했던 많은 분들이 중도에 상해 임시정부의 외교노선에 반발해 북경으로 이동했고, 이렇게 모여든 무장투쟁론자들은 그 이론적 바탕으로 아나키즘이나 사회주의를 수용하거나 체득하게 된다. 1923년 신채호 선생은 <조선혁명선언>을 통해 ‘… 국가존망, 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라고 외교론에 대해 실랄하게 비판하며, 식민지 쟁탈에 혈안이 된 제국주의 국가에 기댄 독립은 절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광복 후 지금까지 냉전시대의 잣대와 흑백논리 속에서 그냥 꼭꼭 감추어야 하는 과거로 남았던 것이다.

그럼 무장투쟁을 주장하던 분들은 왜 북경으로 모였을까? 이 역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정학적으로 국내와 만주, 관내를 연결하는 거점이자, 중국의 수도로서 정치와 사상의 중심지라는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북경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선생은 일찍이 대한독립을 위한 한중공동전선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이를 위해 1921년에는 순 한문잡지인 <천고>를 발간해 일제의 만행과 야욕을 중국인들에게 알리고, 당대 중국을 이끄는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준비했다. 당시 아나키즘은 사상의 선전장이라 할 수 있는 북경대학교를 중심으로 맹렬히 번져나갔고, 그 실천운동의 하나인 피압박민족의 연합과 연대를 실천적, 이론적으로 이끌어낼 수 사상적 기반이 되어 주었다. 많은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이 이에 고무되어 대한독립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나키즘을 수용하거나 혹은 북경 독립운동의 대부격이었던 우당 이회영 선생처럼 오랜 사고를 통해 스스로 아나키즘을 체득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순수한 아마추어 역사학도의 짧은 소견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논점들이 있을 것이나, 그 부분은 전문 역사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겠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과 1920년부터 1932년까지 북경에 본부를 두었던 ‘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뜻 깊게 맞이하며, 앞으로 북경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이 실제로 활동했던 지점과 관련일화 등을 소개하는 ‘북경독립운동가루트 100선’을 준비한다. 비록 지금까지 지도에 찍힌 점은 97개이지만 연재가 끝나갈 즈음에는 새롭게 추가한 내용들로 100개의 지점을 훌쩍 넘길 것이라 믿는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나의 무모한 도전이 일반인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동창후통 28호'는 1943년 조선의용군 대원이었던 이원대 열사의 순국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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