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힌두교 성지 칸치푸람을 찾아서…1천개 사원이 있는 전통도시
[탐방] 힌두교 성지 칸치푸람을 찾아서…1천개 사원이 있는 전통도시
  • 첸나이=이종환 기자
  • 승인 2019.03.1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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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현장법사도 이곳을 찾아…중국 소림사 창건한 달마대사의 고향

첸나이 시내에서 도마 사도가 순교한 도마 마운트와 그의 무덤이 있는 센톰성당을 방문한 이튿날 칸치푸람이라는 유서깊은 도시로 갔다. 칸치푸람은 ‘빛나는 보석의 도시’라는 뜻이다. 첸나이에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칸치푸람은 도시 전체에 1천여개의 크고 작은 전통 힌두사원이 있어서, 마치 사원 숲으로 이뤄진 도시 같았다.

이곳을 찾은 것은 3월12일이었다. 첸나이의 김상우 한국산업 대표와 함께 그의 엘리베이터 공사현장인 오라가담 공단지역을 둘러보고는, 그가 내준 차량으로 칸치푸람으로 향했다. 현재 인구 17만의 이 도시는 AD 4세기 초에서 9세기 말에 걸쳐 타밀나두주(州) 북부지방을 다스렸던 팔라비 왕조의 수도였던 곳이다. 우리로 치면 경주 같은 곳이다.

한때는 불교가 융성해 당나라의 현장법사도 이곳을 방문하고 기록을 남겼다. 현장법사는 인도 방문기인 ‘대당서역기’에서 “도시 둘레가 10㎞에 달하고 주민들은 정의를 사랑하고 학문을 존중했으며, 석가모니도 생전에 이 도시를 찾은 적이 있다”고 적었다.

칸치푸람 시내로 들어서자 사원의 도시답게 거리 곳곳에 힌두 사원들이 보였다. 건물 지붕들 위로 높다랗게 치솟은 사원 누각들은 웅장하고 우아했다. 먼저 칸치푸람에서 가장 큰 힌두사원인 에캄바레스와라 사원을 찾았다. 이 사원은 ‘고뿌람’으로 불리는 정문 누각이 유명한데, 높이가 59m로, 인도에서도 손꼽이는 높이의 ‘고뿌람’이다. 누각은 다양한 신들의 조각으로 가득차 있었고, 모두 돌로 조각한 것 같았다. 사원 입구에 시바 신의 연인인 파르바티가 망고나무 아래에서 링가(남근상)를 끌어안고 있는 그림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어디 있는지 찾아보지를 못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넓찍한 경내가 나타났다. 조각상들에 뒤덮힌 탑문들이 사방으로 보였다. 사람들을 따라 들어가니 거대한 석조 궁전이 나타났다. 큰 모스크를 연상시키는 건물이었다. 천정이 높지 않고 돌기둥들이 촘촘한 것이 다르다고 할까.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하는 것도 모스크와 같았다. 실내에 들어서자 바닥에 앉아 쉬고 있는 사람, 명상하는 사람, 어울려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도 보였다.

엄청난 크기였다. 긴 실내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양편으로 다양한 조각상들이 새겨진 화강암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었다. 돌기둥에 새겨진 조각들을 모아 사진 전시회를 한다면,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가자 햇빛이 비치며 노천으로 된 작은 광장이 나타났다. 2500년 됐다는 망고나무도 서 있었는데, 겉모습은 턱없이 젊어 보이는 나무였다.

이어 카일라사나타르 사원을 찾았다. 기원 7세기에 건축된 사원으로, 칸치푸람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사원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현지 할머니가 실로 꿴 흰색 꽃타래를 건넸다. 1달러라며, 사원에 들어가 바치라는 시늉을 했다.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 꽃을 사서 들고는 사원을 한바퀴 돌았다.

이곳 역시 입구에서 신을 벗어야만 했다. 이 사원은 실내가 아니라, 노천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신들의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태양에 달궈진 오후의 사원 돌바닥은 양말을 신은 발바닥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도 젊은이 한쌍은 뜨거운 바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리낌없이 때때로 합장도 하면서 천천이 돌았다. 인도에서 사람들이 사원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도록 한 것은 슬리퍼 같은 ‘신식문물’이 들어오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전에는 맨발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첸나이 거리에서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이 아직도 눈에 띄는 것을 보면, 그 같은 추측이 틀리지 않을 것같다.

이어 카막쉬 암발 사원을 찾았다. 시바신의 부인인 카막쉬를 모신 이 사원도 정문 누각은 높고 화려한 조각으로 뒤덮혀 있었다. 카막쉬는 시바 신의 또 다른 부인이라고 한다. 카일라사나타르 사원의 정문 누각(탑문)이 높지 않은 것으로 비춰보면, 힌두사원은 후세로 올수록 정문 누각이 높아지고 화려해진 듯하다.

탑문인 고푸람을 통과하려 하자, 제복을 입은 안내원이 설명을 했다. 외국인은 실내로 들어갈 수 없고, 실내를 향해 사진을 찍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뜰에는 큰 풀장 같은 곳이 있고 물속에 신의 조각상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었다. 고뿌람이 사방으로 서 있고, 지붕과 담벽 위에 해태같은 동물상이 세워져 있었다.

경내 한 가운데는 모스크같은 기능을 하는 건물이 있고,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듣고 있었다. 힌두 승려가 설법을 하고 있는 중인 듯했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가지 못해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다.

첸나이로 돌아왔을 때 심상만 회장이 칸치푸람에서 달마대사가 있던 절도 가봤냐고 물었다. 중국에 와서 선불교를 포교하며, 소림사 1대 조사가 된 달마대사가 칸치푸람 출신이라는 얘기였다. 진작에 귀띔해줬으면, 찾아봤을 것인데 아쉽기 짝이 없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렇다. 달마대사는 칸치푸람을 수도로 한 팔라바왕국의 셋째 왕자였다. 당시는 그 지역에 불교가 성행하던 시기였다. 달마는 그의 스승인 프라기야타라(중국어로는 반야다라)의 유언을 받들어 동쪽으로 갔다. 파키스탄과 아프카니스탄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 도착한 달마는 낙양 소림사로 가서 수행했다. 소림사 토굴에서 9년간 면벽 수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선종(禪宗)을 창한 그는, 책을 읽는 것 보다 참선하고 명상해 마음을 닦을 것을 강조했다.

오래전에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제목의 영화도 만들어지고, 스님들 사이에는 이를 화두로 한 명상도 이뤄진다고 하는데 정답은 ‘스승의 유언에 따랐다’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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