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한 여름의 끝자락에서
[해외기고] 한 여름의 끝자락에서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11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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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한 여름도 시간의 흐름에는 무릎을 꿇는지 조금씩 꼬리를 사리고 있다. 하지만 뜨거움 속에도 열정과 예술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 축제들이 있었다. 호주사회에 아시안 들의 예술과 문화를 알리는 2019 브리스아시아 축제(BrisAsia Festival)가 지난 2월9일부터 3월3일까지 3주 동안 개최됐다. 이 축제는 아시안 들의 전통예술과 현대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보여준 문화잔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에 시작된 이 축제는 올해로 7회 째를 맞으며 아시안 들의 문화를 백인사회에 새롭게 각인시키는 이벤트로 자리를 잡았다. 브리즈번의 여러 장소에서 약 80여개의 풍성한 공연을 벌였으며 예술을 통해서 다민족 사회의 문화를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화합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브리즈번 교민사회에 훈훈한 음악 콘서트가 열렸다는 소식이다. ‘제자들과 함께하는 추억의 콘서트’라는 테마로 브리즈번 교민인 테너 남상천씨와 한국에서 활동 중인 옛 제자들이 함께 추억을 만드는 초가을 밤의 콘서트가 열렸다. 20여 년 전 한국의 예술 고등학교에서 재직할 당시에 가르쳤던 제자들이 호주의 이민자로 살고 있는 옛 스승을 찾아와서 콘서트 무대를 기획한 것이다. 이민자의 삶이란 예전의 내가 아닌 낯선 타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이 일상화되어있는 게 현실이다. 현역 프로페셔널 성악가로 활동하는 세 명의 제자들은 남반부로 날아와서 스승의 손을 잡고 한 무대에 서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었다.

테너 배은환, 소프라노 최은실, 메조 소프라노 김민지 3명의 제자들은 스승뿐만이 아니라 브리즈번 교민들에게도 따뜻한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21년 만에 무대 위에 다시 섰다는 남 테너는 긴장된 모습이었지만 제자들과 손을 잡고 열창하는 모습이 멋져보였다. 한국인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봄 처녀, 뱃노래, 떠나가는 배, 얼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등 잘 알려진 가곡들과 유명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며 교민들에게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를 선사해 준 밤이었다. 음악이란 이민자들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이슬비 같은 존재라 여겨진다. 푸치니 작곡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테너가 부르는 Nessun Dorma(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들으면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설렘과 감동에 눈물이 절로 흘러내린다. 문화생활이 야박한 브리즈번의 밤을 행복함으로 채워주었던 성악가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시인 가이어의 ‘영혼의 창’에 이런 글귀가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으냐?
내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내 모든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싶으냐?

여기 있다. 봐라.”

가이어 시를 접하고 보니 “아! 내 마음이 원하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의 창’은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다.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봐라”하면서. 참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요즘 세상이 아닌가.

3월의 마지막 한 주를 열띤 강의로 마무리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안보 특별보좌관인 문정인교수의 강연회가 지난 3월20-21일 이틀 동안 브리즈번에서 있었다. 첫 날에는 퀸스랜드대학교에서 영어로 강연회가 열렸다. 약 100여명의 호주 인들과 한인대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두 시간에 걸친 강연과 질의응답이 있었다. 문 특보는 세계인의 관심사인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유창한 영어로 강연하며 질문에 성의 있게 대답해주었다. 쉽지 않은 주제였지만 오랜 교수경력으로 쌓인 노련함으로 강연을 편안하고 유연하게 풀어나갔다. 둘째 날에는 한인교민들을 대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어디까지 왔나’ 라는 주제의 강연회가 브리즈번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힐턴호텔에서 있었다. 저녁 시간이었지만 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들었으며 예리한 질문도 서슴지 않고 던졌다. 한국정치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 진심으로 내 조국을 걱정하는 사람들 각자가 가진 견해의 차이는 다르겠지만 우리들의 나라라는 자존심만은 모두가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개인적인 정치 견해를 잠시 내려놓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더 이상의 민족상잔이라는 비극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평화공존 , 전쟁종식, 북한의 비핵화, 무장해제, 북미협상, 남미협상, 판문점 협상, 개성공단 등등 정말 다양한 언어들이 매일 한국뉴스에서 무제한으로 쏟아지고 있다. 앵커들은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시청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문 특보의 호주방문이 한국교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갈증이 해소됐기를 기대해본다. 문 특보는 미디어에서 많은 질타도 받지만 통일 안보분야에서는 국내외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학자이다. 정치적인 이념이 진보, 보수로 갈려서 시끄러운 한국 사회가 안타깝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주장이 강하고 두뇌가 명석하며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고 느껴졌다. 미디어가 사람을 만드는 세상이다. 정치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모든 현실을 한방에 몰아붙일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도 빠져든다.

켄 숫자로 생각하게 만드는 삶의 지혜가 있다. 5에서 2를 빼고 다시 2를 빼면 1(5-2-2=1)이 남는다. 오해에서 이해를 하고 또다시 이해를 해주면, 1(일) 바로 하나가 된다. 하나란 의미는 바로 우리가 한 마음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내가 타인에 대해서 가진 오해를 한번 이해하고 또 한 번 더 이해하게 되면 서로가 하나로 일치 할 수 있다는 ‘1’이라는 정답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산수 문제가 살아가면서 만나고 부딪히는 사람의 일상 속에서는 제대로 된 정답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새 일 년 중의 세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간다. 남은 시간들, ‘우리’라는 한국인 특유의 다정한 정서로 서로 도와가며 하루하루를 후회하지 않도록 살면 좋겠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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