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36] ‘벚꽃’은 죄가 없다
[유주열의 동북아談說-36] ‘벚꽃’은 죄가 없다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1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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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분명한 한중일 삼국에서 봄을 알리는 전령사는 단연 봄꽃이다. 봄꽃에는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목련 등이 있다. 중국에는 개나리를 영춘화(迎春花)로 부르면서 봄의 전령사 대접을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벚꽃이 아닌가 생각한다.

벚꽃은 겨울을 난 앙상한 가지에서 사람의 혼을 쑥 빼 놓을 만큼 담홍색으로 무리지어 피어난다. 벚꽃이 없는 봄을 생각하기 어렵다. 어제까지만 해도 꽃 봉오리였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활짝 피어 벚꽃은 “팝콘처럼 핀다”는 말도 있다.

벚꽃은 피는 모습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어원 전문가는 ‘벗는 꽃(脫花)’에서 의미를 찾는다. 무궁화가 100일간 꾸준히 피고 지는데 비해 벚꽃은 겨우 15일 이내 모두 피었다가 모두 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핀다’는 의미의 ‘사쿠’에서 ‘사쿠라’가 됐다고 한다.

벚꽃이 무리지어 하나 둘 터지기 시작하면 그 근처가 밤에도 밝게 느껴지고 낮에는 마치 안개라도 끼어 있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북서풍의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디어 내어 잎을 내고 꽃을 천천히 보여주어도 좋으련만 잎보다 화려한 꽃을 먼저 내 보인다.

이 때쯤이면 전국의 벚꽃 명소에서는 축제를 준비하고 미리 선전도 해두는데 이상 저온으로 꽃이 피지 않아 애를 태울 때도 있다고 한다. 언젠가 어느 지방의 벚꽃 축제에 갔더니 꽃은 아직 피지 않았는데 벚꽃나무 아래 화롯불을 가져다 놓은 것을 보았다. 따뜻해야 피는 벚꽃을 속이기 위해 화롯불로 나무를 데운다는 것이다.

탐스럽고 화려하게 핀 벚꽃을 보면서 느낀 것은 벚꽃이 너무 화려해서 유교정신이 강한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크게 환영을 받지 못했던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봄꽃 중에는 매화는 다르다. 충효를 으뜸으로 치는 동양사회에서 찬바람이 아직 가시지 않은 초봄에 심지어 눈까지 둘러쓰고 피는 한 송이 순백의 매화는 예찬됐다. 옛 선인들의 매화에 대한 시는 많으나 벚꽃에 대한 시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닌지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한반도의 도래 문화가 유행하던 헤이안(平安)시대 귀족들은 매화를 더 귀하게 생각했다. 5월1일 즉위하는 나루히토 일왕과 함께 사용될 새로운 연호 ‘레이와(令和)’는 매화를 찬미하는 만요수(萬葉集)의 노래에서 따왔다. “(매화가 피기에)좋은 계절의 이른 봄날, 공기도 맑고 바람도 부드럽네(初春令月 氣淑風和)”라는 노래다. 만요슈는 백제의 영향이 큰 일본의 고대 시가집이다.

9세기 중반 비운의 귀족이었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管原道眞)가 모함에 걸려 멀리 규슈로 유배됐다. 그는 정원에 핀 매화를 다시 못 볼 것을 무엇보다도 아쉬워했다. 미치자네는 유배길에 나서면서 “동풍이 불거든 향기를 보내주고 주인이 없다 해도 봄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미치자네가 규슈에 도착하자 놀랍게도 자신이 사랑했던 매화가 먼저 날라 와 있지 않은가. 미치자네의 ‘도비우메(飛梅)’ 전설이 규슈의 다자이후 텐만구에 남아 있다.

일본이 대륙과의 관계가 단절되자 국풍이라 해 일본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매화보다 벚꽃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됐다. 일본 최고의 벚꽃 명소는 나라현 중심에 있는 요시노(吉野)다. 요시노에 가면 “히토메센본(一目千本)”이라는 말이 있다. 한눈에 천 그루의 만개한 벚꽃나무를 본다는 의미이다. 요시노에는 벚꽃나무를 1000 여전부터 심어 지금은 3만 주의 벚꽃나무가 굽이굽이 층을 이루며 피고 있다.

7세기 중반 덴지(天智)일왕이 동생 덴무(天武)를 후계자로 삼았으나 왕위 계승자를 아들로 바꾸고 싶어 했다. 영리한 덴무는 스스로 황태제에서 물러나 요시노의 절에 출가했다. 덴지가 죽자 덴무는 요시노 호족의 지원을 받아 진신(壬申)의 난을 일으켜 조카를 쫓아낸다. 일왕이 된 덴무는 어려운 시절 거처했던 요시노에 벚꽃이 만개한 꿈을 꾸고 벚꽃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심게 했다고 전한다.

일본에서 벚꽃을 즐기는 문화는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시대에 절정을 이룬다. 오랫동안 평화에 젖어 화려함을 추구하는 죠닌(町人 상인)문화가 유행하던 에도시대에는 우끼요에(浮世畵 풍속화)와 함께 벚꽃의 인기는 폭발했다. 요시노의 어린 벚나무가 에도의 원예촌이었던 소메이(染井) 수목원에서 특별 교배돼 배양된 신종 벚나무 ‘소메이 요시노’가 전국에 보급됐다.

도쿄의 대사관 근무할 때이다. 봄이 되자 일본 지인으로부터 벚꽃을 즐기는 하나미(花見) 모임에 초대 받았다. 하나미 모임에 갔더니 아름드리 벚꽃나무 밑에 돗자리를 펴 놓고 옹기종기 몰려 앉아 도시락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근처의 벚꽃나무 마다 사람이 곽 차 빈 자리가 없었다. 지인의 말로는 명당자리를 잡기 위해 동료가 아침부터 위치 좋은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아 놓고 기다렸다고 한다.

벚꽃은 일본의 군국주의에 악용됐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대륙침략에 앞장섰던 군국주의자들은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지는 벚꽃의 속성이 군인(사무라이)정신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벚꽃나무는 군국주의자들의 정훈목(政訓木)이 돼 군인이 주둔하는 곳에는 벚꽃나무를 심어 군인정신을 함양시켰다. 진해의 벚꽃이 유명한 것도 진해가 일본 연합함대의 군항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벚꽃을 외교에도 이용했다. 1910년대 일본은 미국과의 우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수도 워싱턴의 포토맥 강과 연결되는 조수조절 인공호(Tidal Basin)의 호반에 3000 그루의 벚꽃나무를 심었다. 벚꽃은 워싱턴의 봄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1941년 12월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의 만행에 분노한 미국에서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나무를 모두 베어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때 이를 반대한 인사가 독립운동을 위해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이승만 박사였다고 한다. 그는 워싱턴의 벚꽃나무가 제주도 원산의 왕벚나무로 벚꽃나무에는 죄가 없다고 호소했다.

해방된 후 일본 군국주의가 물러나자 국내에도 그들이 심어 둔 벚꽃나무를 베어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다시 벚꽃나무가 제주도 원산임을 밝혀 수난을 받지 않도록 했다. 그 때 벚꽃나무들이 다 베어졌다면 워싱턴의 벚꽃 축제도 진해의 군항제도 없었을 것이다. 벚꽃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해지자 여의도의 윤중로 벚꽃 그리고 쌍계사의 벚꽃그늘 등 지금 전국 곳곳에 10리 벚꽃 길이 만들어져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벚꽃 명소가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고 한다.

벚꽃은 개화를 하면서 흩어질 준비를 한다. 이제 서울의 벚꽃은 꽃 보라를 날리면서 흩어져 꽃잎은 줄고 새잎은 늘어나고 있다. 한반도의 벚꽃의 개화는 아직 진행 중이다. 산에 피는 벚꽃은 지금에서야 피기 시작하고 북한 지역의 신의주에는 4월말이 절정이고 청진은 5월초라고 한다.

일제강점 시기 벚꽃과의 악연으로 벚꽃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편하지만은 않다. 벚꽃은 죄가 없다. 벚꽃은 제주도 원산으로 일제가 벚꽃의 이미지를 정치에 악용한 것뿐이다. 벚꽃은 우리가 우울했던 긴 겨울을 떨치고 행복한 봄을 즐기게 해 준다. 쓸모도 많다. 팔만대장경 목판의 절반 이상이 벚꽃나무라고 한다. 껍질은 질겨서 각궁의 제조에 쓰였고 함경도 지방에는 지붕을 잇는데 요긴했다. 열매(버찌)는 한약재로도 쓰인다고 한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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