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용 교수가 소개하는 ‘만주 독립운동 사적지 발굴의 역사’
김주용 교수가 소개하는 ‘만주 독립운동 사적지 발굴의 역사’
  • 필자=김주용 원광대 교수
  • 승인 2019.04.1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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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안희제선생 추모학술대회에서 발표… 만주지역 사적지는 400여곳

중국 만주지역 독립운동 사적지를 찾기 위해 그간 정부와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렇게 찾아낸 곳이 400여곳. 하지만 증언에만 의존하다 보니 잘못 짚은 곳들도 있다. 우리 정부와 학계의 만주독립운동 사적지 발굴사를 소개한다. 이 글은 원광대 김주용 교수가 지난 4월3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백산 안희제 선생 순국 76주년 추모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을 발췌한 것이다. 이날 김주용 교수는 ‘발해농장의 현황과 독립운동유적지 보존방안’을 발표하면서, 만주지역 독립운동 사적지 발굴의 역사를 소개했다.[편집자주]

2018년 12월 현재 전 세계에 분포된 독립운동사적지는 1,050곳이다. 그 가운데 중국지역이 가장 많다. 1995년 한국독립유공자협회에서 지원해 이루어진 조사가 만주지역에 분포돼 있는 한국독립운동사적지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실태조사였다.

조사단은 윤병석, 서굉일, 김상기, 채영국, 박민영, 이현주로 이루어졌는데 모두 3팀으로 나누어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1팀은 윤병석, 박민영이 한인독립운동의 무대로서 가장 큰 북간도와 동만주 지역을 담당했으며, 2팀은 김상기, 채영국이 남만주와 서간도, 3팀은 서굉일, 이현주가 담담했다. 이 조사에서 서간도, 북간도는 물론이며, 하얼빈과 밀산, 장춘, 길림지역까지 세밀하게 사적지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다만 동북지역 전체를 조사하는 작업인 만큼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경상북도 안동사람들의 집거구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냈던 석주 묘소가 있었던 신발둔(新發屯)을 취원창으로 잘못 알고 답사한 사례가 그것이다. 이를 지역별, 사적지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사적지 조사 현황

이 조사는 무엇보다도 중국 동북지역 전체에 분포돼 있는 한국독립운동사적지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다음은 이륭양행(怡隆洋行)에 대한 조사 부분이다.

이륭양행의 건물을 찾아낸 것은 필자가 박성수 교수와 보훈처 관계자들과 함께 1991년 9월8일 이곳을 찾을 때의 일이었다.(중략) 이륭양행은 원래 1층 건물이었는데 1979년 2층으로 올렸다 한다. 넓이는 가로 18m, 세로 13m로 약 70평에 해당하는 면적이었다. 1933년생인 조소장의 증언에 따르면 건물 현관의 문 위에 원래 이륭양행(怡隆洋行)이라고 쓰여 있던 것을 자신이 직접 보았다 한다. 이것을 시멘트로 덮어 씌워 지웠다는 것이다.

1995년 조사원이 직접 조사한 내용을 답사기 형태로 쓴 글이다. 이륭양행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제를 실행하는 안동교통국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지번과 자료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지인들의 증언만 가지고 확정한 오류의 대표적 예였다.

합니하에 설립된 신흥무관학교 자리도 의문이 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신흥무관학교는 가장 왕성하게 인재를 배출했던 곳이다. “1912년 당시에는 합니하로 불렀지만 지금은 고려관자란 지명으로 바뀐 곳이다”라고 해서 이것이 그후에도 합니하 신흥무관학교 터로 확정됐다. 그러나 각종 자료에 보이는 합니하 신흥무관학교 터는 합니하가 휘돌아가는 해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한편 조사단의 정식 조사는 아니지만 만주지역 전공자였던 박영석의 답사기는 개인 답사기이면서 공간의 중요성을 일깨운 조사였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 학계에서는 만주지역 조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시작했다. 조동걸은 1993년 이후 두 번의 만주지역 조사를 통해 연길, 심양, 하얼빈 지역의 답사기를 간행했다. 윤병석 역시 거의 같은 시기에 만주지역 답사기를 출간했다. 이렇듯 한중수교는 만주지역 답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며, 연변조선족 자치주를 중심으로 중국 조선족학자와의 공동 답사가 실현되기도 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국외소재 항일독립운동사적지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00년 만주지역 전수조사를 단행했다. 이 때 만주지역 조사단은 단장 박환, 조사원 황민호, 조규태였으며, 국가보훈처 및 현지 관계를 포함해서 총 8명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조사 목적은 ▶만주지역에 산재해 있는 한국독립운동사적의 체계적인 실태조사 ▶유적지 관리 및 기념물 설치의 기초조사 ▶해외사적지 탐방프로그램의 기초조사 ▶해외사적지 도록제작을 위한 기초자료 마련 ▶해외사적지 비디오(동영상) 제작 ▶향후 독립운동사 연구의 활성화에 기여 ▶기존의 답사성과를 총망라하고 새로운 지역에 대한 확대조사 등이었다.

이 조사에 소요된 기간은 총 35일간이었다. 광범위한 조사에 정부가 직접 예산을 편성해서 실시한 최초의 조사였다. 총 139곳의 사적지를 조사했으며, 기존 조사에서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새롭게 추가한 사적지도 포함했다. 이때 동경성 대종교 3.1학교와 총본사를 신규 조사했다. 처음으로 발해진 대종교 총본사 유적지와 발해농장 유적지도 조사했다. 당시 조사보고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안희제는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경영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그는 1933년에 동경성에 정착해 발해농장을 경영하면서 대종교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그러나 백산은 1942년 일제의 대종교말살정책인 임오교변으로 투옥돼 1943년 8월3일 병보석으로 석방된 지 3시간 반 만에 동경성 영제병원에서 서거했다. 안희제의 거처이며, 발해농장 사무실이었던 자리가 지금도 절반가량 남아 있다.

한편 2002년 독립기념관은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근현대사학회와 공동으로 국외사적지 전수 조사를 실시했다. 모두 7개 팀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2002년 1월부터 8월까지 각 지역마다 차이를 두고 조사를 진행했다. 중국 동북지역(만주)은 권대웅을 단장으로 5명의 구성원이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기간은 2002년 7월14일부터 8월4일까지 총 22일이었다. 조사지역은 동북 3성 전역이었다.

이 조사의 특징은 그 동안 확보된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보다 확실한 사적지 위치를 비정했다는 데 있다. 또한 그간 광복회 및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한 ‘청산리대첩기념비’등 기념물에 대한 조사도 병행해 이루어졌다. 다만 안중근의사와 관련 있는 하얼빈총영사관 전기 및 후기 건물에 대한 고증이 잘못되기도 했다. 현재 화원소학교 건물이 초기 즉 1909년 안 의사가 의거 직후 구금당했던 곳인데 이를 1926년 건립된 일본총영사관으로 비정했다.

2005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는 광복 60주년기념사업의 하나로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안내책자 발간을 위한 조사가 시행됐다. 이 조사는 전수조사라기보다는 주요 사적지를 일반인에게 알리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전 세계를 7개 권역으로 나누어 120여 곳의 사적지를 면밀히 조사해 이를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이 모색됐다. 김주용을 단장으로 4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답사팀이 만주지역 조사를 담당했다. 17일간 기존 조사된 사적지를 중심으로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한국독립운동사적지를 중심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청산리대첩비, 봉오동전적비, 명동촌(명동학교, 윤동주 생가, 명동교회 등) 등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사적지 활용차원에서 추진된 조사였다.

2007년 정부 시책에 따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내에 해외사적지관리팀을 신설했으며,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국외사적지 실태조사가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먼저 4개년 계획으로 전 세계 미조사지역을 조사한 후 연차적으로 심화조사를 실시하는 방안이 수립됐다. 장석흥을 단장으로 4명의 조사단은 만주지역 가운데 기존 조사에서 미흡한 지역을 선정해 장백현(長白縣)과 왕청현(汪淸縣) 지역을 집중 조사했다. 왕청현 나자구(羅子溝)에서는 동림학교 학생들이 백초구 일본영사관 영사경찰이 학교를 습격하자 피난처로 사용했던 ‘신선동굴’에서 벽면에 태극기를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를 발견하는 수확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북일(北一)학교 부교장이었던 김남극(金南極)의 순국 장소를 조사함으로써 일제의 만행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혼춘현 대황구(琿春縣 大荒溝)의 13열사 사적지와 하마탕의 김상화(金相和) 열사기념비는 그동안 한국독립운동학계에서 반쪽자리 조사에 치중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적지였다.

이 조사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운동사적지도 조사하는 등 그 외연을 넓혔다. 또한 이 조사에서는 장백현 정몽(正蒙)학교터와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본부 터도 비정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사적지 조사는 공간의 조사이다. 기록물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은 공간조사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은 이번 조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입증했다.

2007년 10월 만주지역 미조사 사적지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졌다. 김영신을 단장으로 4명의 구성원이 답사를 추진했다. 지역은 내몽고와 흑룡강성 가목사를 비롯한 지역이었다. 대부분 미조사지역이었다. 내몽고지역은 주로 이자해 사적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국광복군 초모처장을 역임한 이자해는 의사로서 활동했으며, 해방 후에도 중국에 정착했던 인물이다. 그의 묘소와 거주지는 처음으로 조사된 사적지였다. 흑룡강성 가목사 및 탕원지역의 사적지도 처음 조사됐다. 경북 출신의 독립운동사 배치운과 순국 장소와 기념비 및 대종교 독립운동가 강철구의 순국지였던 가목사 감옥도 처음 조사했다.

2008년 황민호를 단장으로 흑룡강성을 중심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주로 밀산(密山)과 주하현(珠河縣, 尙志市), 연수현(延壽縣)의 미조사 사적지가 그 대상이었다. 먼저 밀산에서는 ‘홍범도 도랑’과 김성무가 도산과 협의해 개척한 십리와 지역(흥농촌), 지일(知一)소학교, 북로군정서 총재였던 서일(徐一)의 순국지를 비정했다. 특히 서일의 순국지는 당벽진(唐璧鎭) 중촌 출신의 대종교 후손이었던 이창섭(李昌燮, 전 중국 여자 스케이트팀 감독)의 구술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밀산 지역은 이전에도 사적지 조사가 진행됐지만 1930년대 사회주의 항일운동 사적지는 조사대상에서 제외된 경우가 허다했다. 이 조사에서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초대 주장을 지냈던 주덕해, 윤낙범, 오복, 이종근(朱德海, 尹落範, 吳福, 李宗根) 등이 만주국군과 항전하면서 희생당한 곳과 묘역 및 기념비 등을 확인했다.

주하현에서는 독립운동가 노은 김규식의 순국지를 확인했다. 주하현 조사시에는 그곳에서 공직생활하고 퇴직했던 한득수의 도움이 컸다. 김규식이 활동했던 시기의 주하현은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인근의 연수현, 방정현 등의 독립운동가들은 교통의 요지인 주하현에 근거를 두고 활동했다. 1926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도 이미 독립운동가들의 토대구축 속에서 주하현 일면파에서 성립했다.

김규식의 부인이 주명수의 묘역을 확인했다. 그는 남편인 김규식이 1930년대 독립운동진영에 의해 피살당한 후 해방 이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1970년대 초반까지 주하현 하동마을에서 살았다. 하동마을은 이른바 안전농촌이었다. 이곳에는 ‘조선족’들이 하동농장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동 3계와 5계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들 가운데 해방 직후 ‘중국인들의 습격’ 속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2016년에는 단장 김주용, 단원 오대록, 김영장, 이홍석 등의 조사단이 답사를 시행했다. 이들은 먼저 발해농장과 사무실 및 발해보통학교 터를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는 현지 거주 조선족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다. 발해소학교 이광 교장에 따르면 수량이 여전히 풍부하며 다양한 종류의 벼를 재배하는 벼품종 개량지 실험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했다. 또한 조사 당시 발해농장 사무실 소유자는 많은 한국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탐방단이 동경성을 들리면 반드시 발해농장터와 사무실을 방문한다고 했다.

사진은 중국 신빈현 평정산진에 있는 의암 유인석 기념원.
사진은 중국 신빈현 평정산진에 있는 의암 유인석 기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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