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관 알하나건설 회장… 산전수전 겪고 굴지의 기업으로
김효관 알하나건설 회장… 산전수전 겪고 굴지의 기업으로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9.04.2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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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으로 맨손이 됐다가 다시 재기… 교민사회 나눔에도 적극 나서

'쉰들러 리스트'는 전쟁으로 사업기회를 잡고, 공장에 유태인들을 고용하면서 많은 이들을 죽음에서 구해낸 실제 인물의 이야기다.

전쟁은 이처럼 일부에게는 사업의 기회도 제공하지만, 대부분 일상적인 삶과 사업을 파괴하고 만다.

쿠웨이트에서 건설사업을 하는 김효관 회장도 전쟁으로 ‘쫄딱 망했던’ 사람이다.

일요일이었던 4월21일 쿠웨이트한인회 전직 회장인 김효관 회장과 현직 정성희 회장이 기자를 만났다. 현봉철 전 쿠웨이트한인회장의 귀띔으로 용케 이들을 만나 삶의 궤적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정성희 회장은 걸프전으로 중동에 진출한 미군을 만나 미군 캠프에 다양한 물품을 공급하며 새로운 사업을 일군 데 반해, 김효관 회장은 쿠웨이트에서 그동안 일군 모든 것을 두고 철수하면서 한꺼번에 다 잃은 경험을 했다.

“1979년 한신공영에서 파견돼 쿠웨이트 건설현장으로 갔습니다. 프로젝트를 마치면서 현지 회사에 취직했는데, 문제가 생겼어요. 한국인 27명이나 고용을 했던 현지회사가 급여를 6개월치나 주지 않았어요. 대사관에 가서 호소를 하고….”

김 회장의 쿠웨이트 생활은 처음부터 이처럼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을 겪은 후 그는 독립해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토목일이었다. 직원 5명으로 시작했다.

“현대건설에서 하청을 받아 사업을 키워갔습니다. 잠도 자지 않고 일했습니다. 5개 현장을 맡아 바쁘게 일을 했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현대 측에서 식당도 맡아 ‘봉사해 달라’고 해서 케이터링도 했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는데 걸프전이 일어났습니다.이라크가 쿠웨이트른 침공한 것입니다.”

1990년 8월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전쟁이 터지자 모든 건설공사가 중단됐다. 대사관과 주재원들한테도 철수령이 내렸다. 현대건설도 핵심 간부요원만 남기고 빠르게 철수했다.

“저를 포함해 27명이 쿠웨이트에 남았습니다. 공사현장이 있고, 장비가 있으니 누군가 남아야 했던 거지요.”

현대건설 공사현장에서 식당도 경영한 탓에 김 회장은 남은 26명의 밥을 직접 지어 공급했다. 마침 한국에서 가져온 식재료가 두 컨테이너나 남아 있어서 식사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루는 술 취한 이라크 병사 3명이 총을 든 채 우리를 찾아왔어요. 사장을 만나겠다고 했어요.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나서서 내가 사장이다, 내게 얘기하라고 하니, 차를 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말대로 차를 내줬어요.”

이 일을 보고하자, 그제서야 한국 본사에서 잔류인원 27명의 철수를 허락했다.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지 40일이 지났을 때, 이들은 차를 몰고 바그다드를 거쳐서 요르단으로 가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당시 쿠웨이트는 이라크 점령하에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한국에 오니 김 회장의 수중에는 한푼의 돈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벌면 다시 투자하기를 거듭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줄 몰랐거든요. 사업확장에 투입하다 보니, 한국에 한 푼의 돈도 없었습니다.”

먼저 철수한 부인과 아들 둘, 딸 둘 해서 6명이 보증금도 없는 월세 방에서 피난생활을 시작했다. 정말 막막하던 때였다고 김 회장은 회상한다.

“현대건설 본사를 찾아가서 현지 공사대금을 지불해줄 수 없느냐고 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공사는 쿠웨이트 스폰서 이름으로 이뤄지거든요. 중동이 다 그렇듯, 실제로는 한국인이 직접 하는 사업이지만 법률적으로는 현지인 스폰서 회사로 계약하고, 대금도 그 회사로 지급됩니다. 현대건설에서는 나중에 현지 회사측이 공사대금을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어요.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일말의 기회가 남아 있었다. 전쟁후 철수하지 않고 남은 핵심인력 26명의 식사를 40일간 제공한 것은 돈으로 쳐서 주겠다는 제안을 현대건설로부터 받은 것이다.

“당시 잘 쳐서인지 1천3백만원인가 됐어요. 그 돈으로 1천만원 짜리 트럭을 사서 과일을 떼다 팔았어요. 아이들도 키워야 해서 안 해본 게 없지요.”

김 회장이 다시 쿠웨이트로 돌아간 것은 그로부터 1년 후였다. 전쟁이 끝나고 건설사업이 재개됐기 때문이었다.

한국을 찾은 쿠웨이트 김효관 회장(오른쪽)과 정성희 회장.

“돌아가니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동안 애써 마련해놓았던 각종 공사 장비들과 케이터링 장비, 식품컨테이너 등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밀린 공사대금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건설공사는 재개됐고, 김 회장은 잠을 자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김효관 회장은 함께 온 정성희 회장과는 전쟁으로 인해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정 회장은 중동에 진출한 미군을 따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얻은 반면, 김효권 회장은 몽땅 잃었던 것이다. 

김 회장의 얘기는 정말 끝이 없을 정도였다. 걸프전으로 나락에 떨어졌다가 기사회생한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뒤따랐다. 1998년 IMF때 또한번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지금 김 회장이 경영하는 알하나 건설은 중동지역에 있는 대기업을 제외한, 한인 기업들 가운데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상시 직원 수가 700-800명. 신규 공사가 시작되면 1천명이 쉽게 넘는다. 한국인 엔지니어도 30명에 가깝다. 매월 월급만 7억원에 이른다.

김 회장은 나눔에도 앞장선다. 한인회장을 역임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려움을 겪어본 탓에 나눔에 주저하지 않는다. 기자가 2년전 쿠웨이트 한인체육대회와 송년의 밤 취재를 갔을 때도 김 회장은 알하나 직원들을 행사장에 대거 참여시키면서, 대형 TV 등 상당한 물품을 기증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김 회장은 건강검진 차 한국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는 한국에 들어와야 한다”면서 “해외에는 기회가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용기를 내서 해외에서 기회를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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