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조상숭배의 전통
[해외기고] 조상숭배의 전통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29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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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오랫동안 살다보니 4월은 봄과 가을이 맞물리는 계절로 인식이 된다.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고 익숙해질수록 우리 고유의 전통이나 관습은 조금씩 잊혀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뿌리 없는 나무 없고 조상 없는 후손 없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부딪혀 온다.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계의 모든 대상들이 영혼을 지니고 신령한 힘을 지녔다고 믿으며 산과 들에서 제사를 지내며 숭배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하늘을 으뜸으로 여기며 존중하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였다.

한식성묘(寒食省墓)는 4월 한식(음력 3월)이 되면 자손들이 조상의 묘를 찾아서 성묘를 하며 제사를 지내는 고유한 전통을 말한다. 이 전통은 살아있는 자손과 후손들에게 조상을 추모하고 숭배하는 정신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거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바쁘다는 핑계 속에서 점차 전통을 밀어내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제사준비에 힘든 며느리들의 고충이 명절 증후군(명절스트레스)이라는 현대병을 발생시키기는 현실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식과 성묘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특이한 제사의 전례를 읽게 됐다. 2000년에 경주월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우물이 발견됐다. 10미터 깊이의 우물 안에는 키 130센티미터의 어린아이의 유골과 말, 개, 고양이, 멧돼지 같은 동물들의 뼈가 함께 얽혀 있는 상태에서 출토됐다. 이들은 제사의식의 희생양이었을 거라는 가설이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제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신라왕궁터라고 추정되는 남궁지인(南宮支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도 함께 발굴됐다. 발굴된 또 다른 유물에는 주둥이 부분을 없앤 항아리아가 발견됐는데 부정한 기운을 미리 떼어낸다는 의미이며, 귀신을 쫒는다는 복숭아씨도 있어서 제수용으로 쓰였을 것이라 추정되어진다.

신라인들은 시조가 태어난 우물을 신성한 장소로 여겼다. 특히 통일신라말기에는 전쟁과 기근, 역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시대였다. 따라서 국가차원에서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희생양을 우물 안에 넣고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도 담고 있겠지만 어린애를 희생 제물로 삼았던 그런 제사가 과연 얼마만큼 하늘에 가 닿았을지 의구심이 생긴다. 힘없는 사람이 희생되는 일은 역사를 통해서 시대를 막론하고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4월 초에 안사돈의 청명절 성묘를 위해서 딸과 사위의 가족들이 함께 고향의 선산에 있는 안사돈의 묘지를 방문하고 왔다. 청명절은 중국인들이 성묘를 하는 날인데 동지에서 106일 지난 날로, 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조상의 묘에 풀들이 높게 자라고, 흙도 힘이 없어지는 날(땅에 영양분이 없다는 의미)에 무덤에 자란 잡초들을 뽑고, 흙을 첨가하며 오래 보존하도록 돌보는 날이라고 한다.

나는 이번 방문을 통해서 조상을 공경하고 전통을 지키는 사돈댁 친 인척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지니게 됐다. 또한 그들로 부터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문화와 전통의 계승이 후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유산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멀리에서 모여든 친척들은 묘에 꽃다발을 바치고 절을 하며 죽은 이를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젊은이들에게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비석에 쓰인 한자(漢子) 글을 해석해주고 그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자녀교육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감동했다.

의사였던 안사돈은 환자의 진료를 위해 다른 도시를 방문했다가 갑작스런 사고로 작년에 하느님 곁으로 갔다. 브리즈번에서 가까운 거리에 살았던 우리는 친구처럼 지낸 사이였다. 늘 건강하고 밝게 살며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크리스천이어서 가족과 친구들이 받은 충격은 몹시도 컸다. 고향선산에서 장례식을 치루고 집에 돌아와서도 모두가 큰 충격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힘들어 했었다. 내 사위는 말레시안 계 중국인이다. 어린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호주로 이민 와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았으며, 동양문화보다 서양문화에 더 익숙하고 영어가 모국어가 된 사람이다. 그러나 안사돈은 자녀들이 중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라 학업에도 열성을 보여서 자녀들이 모두 전문가의 길을 걷도록 보살핀 훌륭한 어머니였다.

우리는 12시간이 넘는 긴 비행을 하고 사위 부모님들의 고향인 시부에 도착해서 하루 쉬었다가 다음날 새벽 5시에 출발해서 선산이 있는 묘지를 방문했다. 이른 새벽이었지만 묘지로 향하는 길에는 자동차가 맞물려서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그 사이 사이로 스쿠터에 두 명씩 타고 양손잡이에는 제물을 가득 담은 플라스틱 백을 달고 곡예를 하듯 빠져나가는 엄청난 인파에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놀랐다. 30여분이면 도착할 거리가 거의 두 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일 년에 하루인 청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조상들의 무덤을 재정비하며, 대리석 묘비는 물로 씻어서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조상숭배의 정신을 지킨다고 한다.

사위의 아버지는 기독교 신자였던 부인을 위해서 무덤 앞에 정원을 만들어서 나무를 심고 잔디위에는 천사상과 평화롭게 노는 양들의 조각을 전시해 놓았다. 불교와 기독교를 혼합한 문화, 수십 개의 꽃바구니로 장식된 묘비주위, 수십 명의 친인척들이 모여서 향을 불사르고 절을 했다. 나는 고개 숙여 절을 하고 꽂을 바치면서 마음속으로 말해주었다. “오십대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서 너무나 안타깝지만, 당신은 참으로 복 많은 분입니다. 자녀들과, 며느리, 사위, 친척들, 친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당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함께 했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조상들의 묘지도 방문했었다. 묘비에는 그들의 삶이 간략하게 적혀있었는데, 탄생과 죽음, 새로운 땅에서 정착하게 된 짧은 역사가 날짜 와 함께 적혀있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청명절을 함께 지낸 사람들의 마지막 중요한 절차는 근사한 식사를 같이 하며 노고를 치하하고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같이 할 수 있었던 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으며 나를 가족의 한 사람으로 받아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살아가야 할 딸의 책임, 또한 가벼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친척들의 돈독한 우애가 참으로 부러웠고 그런 가족의 일원이 된 딸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하게만 넘겼던 한식성묘와 제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보람된 여행이라 여겨진다. 그 시간과 공간은 나의 지난 삶을 뒤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바라보게 만들어주었음은 물론이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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