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이계송칼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19.05.29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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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견(異見) 때문에 한동안 소원했던 친구 K를 지난 4월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다시는 K와는 정치얘기를 하지 않겠다던 다짐이 깨지고 말았다. 얼굴을 붉히는 일이 벌어졌음은 물론이다. 이런 꼴사나운 모습들을 요즈음 자주 경험한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자들과 불안스럽게 여기는 반대자들로 극명하게 갈려 있기 때문이다.

K와 나는 광주출신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 K는 무조건 문 정권을 지지한다. 반대자는 ‘상종 못할 인간’이거나 ‘이상한 놈’이 된다. 도덕적 우월감이 대단하다. K는 나에게 “조선일보를 어떻게 생각 하는가” 물었다. “요즈음 대부분의 언론이 친정부적인데, 그래도 정권비판에 앞장서는 언론으로 꼽을 수 있다. 언론은 정권과 긴장을 유지해야 제 역할을 한다고 본다.” 나의 답에 그는 참지 못했다. <한겨레신문>에 몸담았던 내가 그런 신문을 지지할 줄을 꿈에도 몰랐다는 것, 사람이 변해도 한 참 변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만 하자”고 어이없어 했다. 

대화는 무엇보다도 들을 줄 아는 데서 출발한다. 예를 들면, 영어공부는 듣기가 먼저다. 나 같은 사람은 미국에서 30년을 살았지만 미국인과 대화에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확히 알아듣는 것이 서툴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화는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때 교감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대화는 또한 자기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합리적, 균형 사고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대화 중 지나치게 상대를 통제하려 든 사람들이 있다. ‘생각이 틀렸어, 내가 반드시 바로잡고 말겠다’며 매우 전투적이다. 오만이다. 사실상, 남의 주장을 굳이 끝까지 반대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주장을 굳이 바로잡아줄 의무도 없다. 더구나 쌍욕을 해댈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너의 주장은 들어보나 마나”라며 아예 묵살하는 경우, 자신의 편견을 고치고,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마저 스스로 박차버리는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싸움에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내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면서 상대의 관점을 긍정적으로 수긍한 후 이를 수용할 지 여부는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는대도 말이다. 

대화는 삶을 서로 배워가는 과정이기도 한다. 등소평은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인생경험대학을 다니고 있고, 역사가 내 성적표를 준다”고 답한 적이 있다. 대인(大人)의 겸손한 모습이다. 우리는 평생 학생으로서 배움을 지향하는 겸허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자신이 아는 만큼 주장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정치적인 주장을 펴는 경우, 자신이 믿는 도덕적 윤리적 신념만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명분을 우선시 하다, 그게 멸망의 원인이 되었던, 이조의 주자학의 전통이 아직도 우리사회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오류는 여기에서 생긴다. 

정치는 결과를 두고 평가하는 것이다. 선, 도덕, 정의... 같은 것만이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확신과 주장이 위험한 이유다. 정치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시대상황에 따라 선과 악의 타협의 과정임을 역사가 증명한다. 현실 정치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미/반일 주체, 이를 선(善)이라 여겼던 북한의 역사를 보라, 칼자루 하나만 달랑 찬 거지 국가가 되었다. 친일/친미 굴종의 역사를 견디어 내면서, 위대한 정치적 결과를 만들어 낸 남한은 어떤가. 주권국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며 세계사에 유래 없는 경제대국의 대열에 서 있지 않는가. 

피 터지는 진영 싸움뿐, 대화가 실종된 현 우리사회를 개탄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전향적으로 추진 중인 남북대화 만큼, 문대통령은 남남대화도 못지않게 병행해 갔으면 좋겠다. 남북대화의 성공은 결국 남남대화의 성공에 달려있지 않을까. 국력을 대화로 모아가야 하는 이유다. 그것은 모든 국민들이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겸손, 상대의 의견에 대한 진지한 경청을 생활화 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것이 곧 선진 민주사회 문화를 만들어 가는 길이며, 민주화의 완결이다. 문대통령이 염원하는 새로운 세상은 바로 여기에서 열릴 것이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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