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철 전 뉴욕한인회장 “건배사가 ‘쓰죽’··· 차세대 잘 키우는 게 중요”
김기철 전 뉴욕한인회장 “건배사가 ‘쓰죽’··· 차세대 잘 키우는 게 중요”
  • 뉴욕=이종환 기자
  • 승인 2019.06.1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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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간 한인사회에 봉사··· 롱아일랜드서 ‘럭키 뷰티’ 경영
김기철 전 민주평통 미주부의장
김기철 전 민주평통 미주부의장

“요즘 내 건배 구호가 ‘쓰죽’입니다. ‘쓰고 죽자’예요.”

김기철 전 뉴욕한인회장이 말을 꺼냈다. 본지가 기획 중인 한인청소년들의 미주독립운동 사적기행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강조하면서였다.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김 회장의 사무실을 찾아간 것은 6월8일 오전이었다. 김 회장이 카톡에 찍어준 주소를 따라 볼드윈 그랜드 에비뉴의 건물 사무실을 찾았을 때 2층의 널찍한 공간 한쪽으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1층 매장에 이어진 매장으로 꾸미고 있어요. 상품군을 확대하고 보다 고급스럽게 장식하려 합니다.”

김 회장은 실내를 소개하며 공사계획을 소개했다. 1층에는 통유리로 칸막이해서 화려함을 더할 생각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롱아일랜드에서 뷰티서플라이샵을 경영하고 있다. 럭키 뷰티 서플라이가 상호다. 한때 10여 개를 경영했으며, 지금도 롱아일랜드 곳곳에서 이 같은 간판을 볼 수 있다.

부동산업도 김 회장이 경영하는 아이템이다. 건물을 통째로 매입해 직접 경영하거나 임대하는 방식이다. 김 회장이 집무실을 둔 볼드윈의 널찍한 건물에는 뷰티샵과 네일샵, 헤어샵 등이 포진해 있었다.

“헤어샵은 직접 경영하는 게 쉽지 않아요. 미용사를 보고 손님이 오는데, 미용사가 떠나가면 손님도 데리고 가버리거든요.”

이런 얘기를 나누며 건물 안팎을 둘러보고는 집무실로 들어갔다. 김 회장의 집무실에 들어서면 먼저 수많은 상패와 공로패, 감사패에 놀라게 된다. 양쪽 벽으로 빽빽하게 전시돼 있다. 벽 한켠으로는 사진들도 전시돼 있다.

“남은 게 이런 감사패들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집에도 이 같은 패들이 많다고 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수여한 국민훈장 모란장도 집에 걸려 있다고 한다.

“감사패나 공로패 모두 거져 받는 게 없잖아요. 교민사회를 위해 시간과 돈을 들였다는 표지잖아요.”

이 같은 기자의 돌발적인 칭찬에 김 회장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중 공이 가장 많이 들어간 기념패가 뭣인가’를 묻는 질문에 김 회장은 뉴욕한인청년회의소(JC)회장을 마치고 받은 공로패와 뉴욕한인회장을 마치면서 받은 공로패를 가리켰다.

“1988년 뉴욕에 우리 JC를 만들어서 나중에 회장까지 맡았습니다. 우리가 JC를 만들어 미국 내 주류사회와 교류하자, 일본사람들도 따라 JC를 만들었어요. 뉴욕시티 JC 산하로 해서 서로 많이 교류했어요.”

JC 얘기가 나오자 그는 과거로 되돌아간 듯 이야기에 활기를 띠었다. 한국 정재계에 JC출신들이 무척 많다면서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열거하기도 했다. 일본에는 정치인 45%가 JC출신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JC활동을 하면서 지도자 수업을 많이 받았습니다. JC는 꽃이 핀 단계가 아니라 아름답게 꽃을 피우도록 준비하는 단계지요. 거기서 훈련받아서 다른 곳에서 꽃을 피우는 겁니다.”

이 같은 JC에서의 활동이 나중에 뉴욕한인회를 비롯해 민주평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커뮤니티 봉사활동을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이 미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81년이었다. 그는 아프리칸아메리칸(흑인)이 99%를 차지했던 브루클린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브루클린에서 비즈니스를 하던 20-30명이 모여서 한인회를 만들었습니다. 1983년 출범한 브루클린한인회입니다. 당시 창립멤버로 참여해 조직부장, 사무총장, 부회장을 역임했습니다.”

김 회장의 일생은 한인커뮤니티를 위한 활동과 떼놓을 수 없다. 도미 2년 만에 만든 브루클린한인회에서의 조직력을 인정받아 1986년 조병창 제19대 뉴욕한인회장 집행부에서 조직부장을 맡았다. 그이래 그는 20,21,23,24,25,26대에 걸쳐 임원과 이사, 부회장(23,24대), 이사장(25대)을 역임했다.

그리고 28대에는 드디어 뉴욕한인회장으로 취임했다. 27대 선거에 나갔다가 김석주 회장한테 고배를 마신 뒤였다. 그는 뉴욕한인회장을 할 때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 대회장을 맡는 영광도 누렸다.

그의 이력에는 다른 단체 캐리어도 많이 들어있다. 미주한인청소년재단 수석부회장, 뉴욕한인뷰티서플라이협회 감사, 뉴욕한인상공회의소 수석부이사장, 평통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뉴욕한인교회협의회 부이사장, 뉴욕밀알장애인선교단 이사장, 뉴욕인구센서스한인위원회 후원회장 등도 그가 힘을 보태고 애를 썼던 자리들이다.

민주평통도 떼어놓을 수 없는 이력이다. 그는 15기 민주평통 뉴욕협의회장을 거친 데 이어 16기와 17기 평통에서는 미주부의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미국과 캐나다 중남미의 협의회를 통괄하는 자리다.

“민주평통은 정파성이 너무 강해서는 안 됩니다. 통일을 자문하기 위해 분열적이기보다는 통합적인 성향을 가져야 합니다. 지역사회에도 적극 참여하고 기여해야 합니다. 지역사회에서 한인회가 구심점의 역할을 한다면 민주평통은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김기철 회장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민주평통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피력했다.

“지난 5월 말로 이제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36년간 한인사회에 참여해 각종 직책을 맡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역대 뉴욕한인회장들이 모인 뉴욕역대한인회장협의회 의장도 맡아서, 지난 5월 말로 임기를 마쳤습니다.”

그는 지난 36년의 활동이 벽에 전시된 감사패와 공로패로 남았다며, 이제 정말 ‘야인’이 됐다고 소개했다. 이런 얘기 뒤에 나온 것이 본지가 진행하고 있는 독립운동사적지 탐방이었다.

본지는 해외 한인사회의 도움을 받아 월드코리안장학회를 운영하며, 해외한인자녀들로 한국 대학에 유학 와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해왔다. 그리고 오는 7월1일부터 6일까지 5박 6일간 올해 장학생들로 만주지역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을 진행한다.

이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앞으로는 장학생뿐 아니라 세계한인청소년들이 참여하는 미주 서부와 동부지역 탐방 활동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자 “그런 일이라면 두말 않고 돕겠다”며 ‘쓰죽’이라는 건배사를 소개한 것이다.

“흔히 사람들을 만나면 누구 자녀 아니냐, 누구의 조카 아니냐는 얘기를 곧잘 합니다. 어른의 이름이 나오는 거지요. 그래서 자녀나 조카, 다른 일가를 위해서도 좋은 평판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차세대를 잘 키우는 게 우리의 할 일”이라면서 “세계 차세대들이 미주지역을 돌며 선조들의 독립운동 흔적을 찾아 얼도 되새기고, 미래를 보는 안목도 키우는 일에 우리 같은 사람이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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