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프랑스 르망교구의 한국인 사제
[해외기고] 프랑스 르망교구의 한국인 사제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22 0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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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날씨에 어깨가 움츠러들며 한 계절이 깊어짐을 느끼게 된다. 눈부신 햇살이 여전히 한낮의 거리를 채우긴 하지만 가을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들린다. 나이의 숫자와는 상관없이 슬며시 계절병이 도지는 모양이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설렘이 생기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꺼내서 다시 펼쳐본다. 작가는 책의 첫 페이지에서 “떠난다는 것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자 낯선 것과의 새로운 만남”이라고 적고 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불안과 호기심을 동반하지만 신선한 바람을 가슴으로 불어넣는 페퍼민트 향 같은 것이라 여겨진다. 수도원기행을 읽으면서 영혼의 울림을 던져줄 것 같은 프랑스 수도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겨 본다.

새로운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가는데 익숙한 이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무심코 넘겼던 이름이었는데, 이제는 익숙하고 반갑게 다가온다. 프랑스 르망교구에서 사목하는 한국인 사제, 이영길(가를로) 신부님이다. 공지영 작가가 프랑스에서 수도원 기행을 시작할 때 큰 도움을 받았다며 수십 차례나 책에서 언급했던 이름이다. 이영길 신부님은 현재 브리즈번 한인성당의 본당주임이신 이성길(바오로) 신부님의 동생 되는 분이다. 지난주에 이영길 신부님이 브리즈번 한인성당을 방문해서 미사를 집전하시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만나기 쉽지 않은 분이라서 신자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전에 이영길 신부님과 브리즈번에서 두 차례 만난 적이 있어서 이미 친분이 있었다. 미사 후에 성당입구에 서서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신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에서 신부님의 따뜻한 성품을 엿볼 수 있었다.

이영길 신부님은 1976년 안동교구에서 부제품을 받고 파리가톨릭대학에서 유학했으며, 다음해인 1977년에 안동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1989년 르망교구에서 파견사목을 하셨다. 그리고 2000년- 2006년까지 파리가톨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공부했으며 2010년에 ‘초기 한국평신도들이 남겨준 교회론 적 유산’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가를로 신부님은 르망교구의 요청으로 2009년부터 프랑스 보몽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현재는 르망(Le Mans)교구의 주교좌성당에서 협조사제로 프랑스 가톨릭신자들을 사목하고 계신다.

안동은 천주교 순교자들이 많이 나온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 천주교는 유교 학이 사회주류를 이루던 조선시대에 유학자였던 평신도들이 천주교 신앙을 스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외국에서 사제를 모셔 와서 교회를 세운 세계에 유래가 없는 독자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와 르망교구와의 만남은 19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길고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르망 교구는 조선교구 제4대 교구장을 지냈던 장 베르뇌(한국명 장경일·1814∼1866) 주교님의 고향이어서 프랑스신자들이 한국에 갖는 애정이 각별하다고 한다. 베르뇌 주교는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리(배론 성지)에서 한국 최초의 신학교를 설립하는 등 10년간 사목활동을 펼치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했다. 50년 전 안동교구를 설립할 때 첫 주교직을 맡아서 헌신했던 프랑스인 두봉주교님(90세)은 아직도 안동교구의 큰 어른으로 건재해 계신다.

르몽교구의 주교님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영길 신부님의 유창한 불어 통역 덕분에 두 나라 간에 깊은 우정을 맺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냈다는 언론의 평가를 받았다. 이영길 신부님은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150년 전 프랑스신부가 흘린 피, 한국 신부가 땀으로 갚습니다”라는 말로 한국교구와 르망교구와의 관계를 표현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인 가톨릭계의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에도 신부 수가 매년 급감해서 텅 빈 성당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여 년 전 한국천주교의 박해를 온몸으로 겪으며 순교했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후예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오늘날은 프랑스교구가 한국에서 사제를 수입해서 사목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안동교구에서 4명의 젊은 사제들을 프랑스로 파견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변해가는 현 사회의 흐름을 감지 할 수가 있다.

일요일 미사 후에 이영길 신부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준비해간 책 ‘수도원기행’을 보여주며 신부님 이름이 나오는 밑 부분에 인증 샷을 해달라며 사인을 부탁했다. 7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인 신부님의 얼굴에서는 소년 같은 순진한 미소가 묻어난다. 오랜 시간을 프랑스에서 보낸 탓인지 한국말 발음조차도 불어발음이 섞인 듯 부드러운 소리로 들린다. 신부님들과 대화를 나누면 종교이상의 정신적인 철학을 배우고 인간적인 사고를 교환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신앙의 돌 반석 위에 굳건하게 버티는 사제의 모습이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을 것 같다. 10년의 공부, 순결, 청빈, 순종을 서약하면서 평신도를 돌보는 사제의 길이 쉽지 않음을 잘 알기에 존경심으로 대한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대신 전해주는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며 머릿속에 집어넣고, 다른 이들에게 입으로 전하며, 가슴에 담아두기도 한다.

공지영 작가는 책의 후기에서 신부님에 대한 인간적인 면을 “나그네를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 몸소 내게 가르쳐주셨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언어구사는 없을 듯싶다. 파리의 에펠탑보다 더 가보고 싶은 아르정탱의 베네딕토 봉쇄수도원, 솔렘수도원, 성당 지하실에 있다는 피에타 상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본다. 언젠가 유럽수도원 기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도 온다면 이영길 신부님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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