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40] 홍콩의 탄생과 홍차
[유주열의 동북아談說-40] 홍콩의 탄생과 홍차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24 09: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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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회(입법회)가 ‘범죄인 인도 법안’을 심의하려고 하자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홍콩반환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놀란 캐리 람 행정장관이 동 법안 추진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지만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00만에 가까운 홍콩시민들이 검은색의 옷을 입고 법안의 완전 철회와 캐리 람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동 법안이 홍콩의 자치를 위협한다고 주장하고 중국은 홍콩반환 이후에도 홍콩시민의 자유가 보장받고 있다고 반박한다. 미중 무역전쟁과 얽혀 홍콩문제가 국제화되면서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홍콩 사태를 보면서 과거 3년간의 홍콩 생활이 생각난다. 1997년 8월 베이징의 대사관에서 홍콩 총영사관으로 전보발령을 받았다. 주권반환 1개월여 후였다. 마지막 총독 패턴이 떠난 홍콩의 분위기는 어수선해 보였다. 영국 군대가 주둔했던 곳은 인민해방군에 의해 접수되어 중국의 5성홍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홍콩은 시드니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마천루가 숲을 이루면서 푸른 바다에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깨끗한 도시로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와 함께 동서 문화가 섞여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가 잘 통하지 않아 불편했다.

어느 날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를 찾아 베이징에서 써왔던 보통화로 기름을 채워 달라고 했다. 주유소 주인은 대뜸 촌스러운 공산당 말은 쓰지 말고 제대로 된 중국어(廣東話)를 배우라고 젊잖게 충고해 주었다. 주권이 반환되어도 홍콩 사람들의 프라이드는 대단해 보였다.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중국(淸)이 1842년 영국에 할양한 지역이 홍콩이다. 1997년 주권반환과 동시에 시행된 일국양제(一國兩制)는 2047년이 되면 끝나고 홍콩은 ‘샹강(香港)’으로 바뀐다. 아편전쟁의 무대였던 광둥성 후먼(虎門)시에 가면 아편전쟁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초입 유리창 벽 속에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다. 찻잎, 비단 그리고 도자기 등 홍콩의 탄생을 가져 왔다는 물건이다.

영국은 세 가지 물건 중 중국차를 집중 수입하여 무역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 인도에서 생산되는 아편을 수출했다. 건강에 좋은 중국차와 해로운 아편과 맞바꾼 셈이다.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차 무역의 거점으로 홍콩을 원했다.

중국에서 사용하는 차(茶)는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비교적 새로운 글자이다. 이전에는 푸젠성(福建省) 등에서는 차를 ‘투’라고 불렀다. 17세기 중반 푸젠성 타이완을 지배한 네덜란드가 ‘투’를 수입 유럽에 알리면서 영국의 티(tea) 독일의 테(tee) 프랑스의 테(the)라는 말이 나왔다. ‘투(荼)’의 글자는 차(茶)의 나무 목(木) 대신 화(禾)가 들어 있다. ‘투’는 씀바귀 같은 쓴맛이 나는 약초를 일컬었다.

당나라의 육우(陸雨, 733ㅡ804)가 안록산의 난을 피해 남방으로 내려와서 ‘투’를 알게 되고 그 매력에 빠진다. ‘투’에 대한 연구를 하고 관련 책(經典)을 지으면서 다른 유사 식물과 구분하기 위해서 획 하나를 줄여 ‘차(茶)’라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 광둥성을 통해 중국차를 받아들인 러시아 터키 인도 아랍에서는 차이(chai) 또는 샤이라고 부른다.

해금정책을 시행한 중국(淸)은 유일하게 광둥성 광저우를 개방하여 면허를 가진 13개의 공행(公行)이 서양인과 무역을 독점했다. 이곳에 고용된 중국인에는 푸젠성 출신자가 많아 차와 함께 ‘투’가 혼용되어 영국 상인들에게 티(tea) 라는 단어가 굳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차가 유럽과 식민지에 널리 보급되어 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폭발 중국차만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영국의 로버트 블루스는 19세기 초 인도의 아삼 지방에 차농장(tea plantation)을 시작하여 신선한 녹차를 발효시킨 홍차를 생산했다. 19세기 중엽 인도의 히말라야 산맥 인근의 다르질링에서도 홍차를 생산했다.

홍차는 발효되어 장기 보관에 편리하여 아시아로부터 수송거리를 생각할 때 유럽에서는 홍차가 불가피했다. 중국에서는 찻물이 붉어 홍차의 이름을 얻었지만 영국에서는 블랙티(black tea)라고 부른다. 발효된 찻잎이 검기 때문이다.

제임스 테일러는 인도의 일부였던 세일론(실론)에서 커피 농장을 계획했으나 커피나무가 질병으로 고사하자 해발 500m의 밀림을 제거 차나무를 심어 세일론 홍차를 생산했다. 현지 인력에 추가하여 바다 건너 타밀족도 고용했다. 세일론 홍차는 1875년 런던의 경매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런던에서 식료품 업체를 경영하던 토마스 립톤이 테일러의 세일론 홍차를 팔기 시작했다. 립톤의 브랜드로 세일론 홍차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차농장이 늘어났다. 세일론의 산림이 줄어들면서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1948년 영연방의 일원으로 세일론이 독립했으나 1972년 공화제가 되면서 국명도 스리랑카로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 말로 남방의 “파라다이스” 또는 “운 좋은 발견(serendipity)”에서 유래된 세일론은 이 지역에 들어온 포르투갈 사람들이 불렀던 이름이다. 스리랑카는 현지어(신할리어)로 “찬란한 땅(섬)”이라는 의미이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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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2019-06-24 18:24:57
"전기 요금 개편' 기사들에도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한전은 6월 동안 받겠다던 '국민 의견 수렴'을
안내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제 종료(2019. 6. 17. 월 pm6시)했습니다.
불공정한 3안 누진제 폐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산자부는 가장 우세한 국민 의견인 3안을 무시하고
1안을 채택했습니다. 불공정함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yBW8P6UTEGc

국민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N1Q8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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