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자기 자랑, 그 가벼움
[이계송칼럼] 자기 자랑, 그 가벼움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19.07.06 0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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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TV 드라마 한 장면: 노인 친구들(고교동기) 셋이 술을 마신다. A가 손자 자랑을 한다. B는 이에 질 세라 아들 자랑에 열을 낸다. C는 자기가 아파트 3채를 가지고 있는데, 요즈음 꽤나 값이 올랐다고 자랑한다. 술판이 끝나고 각자 돌아가는 길, 화가 나서 과음을 한 A가 비틀걸음을 걸으며 “개에에...자식! 아파트 자랑이나 하지 말지, 난 내 집 한 칸 없이 전세살이를 하는데...”하면서 한탄의 눈물을 흘린다.

무슨 얘기인지 대충 짐작들 하실 거다. 돈에 시달리며 살았던 도스토옙스키는 가난은 가난이 힘든 게 아니라, 남의 눈총이 더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럭저럭 배 안 굶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남의 눈총이 무섭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사나? 그런 자조가 슬프게 한다. 

노년의 나이가 특히 그렇다. 해 놓은 것은 없고, 잘 난 친구들의 자랑을 듣는 일이 가장 힘 든다. 모임 자리마다 자신의 화려한 과거와 현재의 편안함을 은근히 자랑하는 친구가 있기 마련이고, 그가 대화의 장을 지배한다. 성공담이 무용담이 되고, 자기 기준으로만 다른 사람들의 구질구질한 삶의 모습을 재단한다. 노년에도 이런저런 재테크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면, 자랑거리가 없는 친구들은 그냥 그렇게 들어주는 미덕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요즈음 나도 그런 부류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맥시멈 소셜연금을 탄다는 얘기, 아이들이 잘 나가고 있음을 은근히 자랑하고, 잦은 한국체류 얘기,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여행기를 쓰는 일까지...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은 좋겠다”고 말한다. 부러움의 표시 같지만, 은근히 ‘쫑코’를 주는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내가 눈총을 살만한 사려 깊지 못한 언사를 지껄였음이 틀림없다. 사과한다.

소크라테스 앞에서 그리스 최고의 땅 부자가 땅 자랑을 늘어놓았다. 듣다못해 소크라테스가 세계지도를 펴 놓고 한 마디 했다. “당신의 땅이 얼마나 큰 가를 이 지도에 표시 좀 해보시오.” 땅 부자는 무안해졌다.  우리들의 자랑꺼리가 대개는 뭐 그렇게 대한한 것이 아님을 얘기하는 거다. 부자라면 부자 위에 더 큰 부자가 있고, 그 위에 더더 큰 부자가 있다. 더더 큰 부자도 결국은 세상을 다 갖지는 못한다. 물론 무덤에 갈 때는 페니(penny) 하나 가지고 가지 못한다. 겸손을 얘기하는 거다. 

옛 친구들과 만나는 기회가 잦아졌다. 좋은 대화를 즐기려면, 각자가 ‘자기 자랑’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대부분 넉넉지 못한 노년의 삶이기에 특히 그렇다. 그런데, 폼 재고, 뽐내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미국인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지만, 우리보다는 덜해 보인다. 그들의 대화는 아주 단순하다. 고양이와 개, 스포츠, 음식, 취미, 영화 등이다. 무엇보다도 자기 개인이나 남의 사생활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대화는 대화로 끝난다. 반면, 우리의 대화는 그렇지 않다. 뒤끝이 아주 무겁다. 나는 뭐 했나? 이런 한탄이나 심지어는 욕 짓거리도 나온다. 문화의 차이라기보다는 야만의 차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우리말의 ‘자랑’은 부사로는 ‘쇠붙이 따위가 서로 가볍게 부딪쳐 짧게 울리는 소리’로 정의 된다. ‘짜랑 짜랑’ 쇳소리가 ‘자랑’이 된 것이다.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은 결국 가벼운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한다. 진짜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는다. 남이 자랑해 주기 때문이다. 자기의 가벼운 쇳소리가 남의 가슴을 찌르는 송곳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요즈음 한 야당대표가 아들 자랑했다가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는 그 가벼움에 있다.

“비어있는 자가 가장 큰 소리를 낸다.”(세익스피어), “자기를 자랑하는 자는 빛날 수가 없다”(노자), “부엌에서 숟가락을 얻었다”는 우리속담은 별 것도 아닌 걸 자랑하는 일을 가리킨다, 자랑 끝에 불붙는다”는 또 하나의 우리속담은 자랑하면 결국 칼끝이 자기에게 온다는 말이다. 멋진 뿔 자랑하다 뿔 때문에 지구상에서 멸종이 된 메가케로스(megaceros) 사슴 얘기는 야만(野蠻)의 자연도태를 말하고 있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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