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아내의 아킬레스건
[이영승의 붓을 따라] 아내의 아킬레스건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9.07.10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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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요즘 외손녀 동영상을 보는 낙으로 산다. 생후 8개월째 접어든 서윤이는 며칠 전부터 배밀이를 시작했다. 신기하기 그지없다. 자식 남매 키우면서 다 겪었건만 마치 처음 보는 것만 같다. 딸은 서윤이 갓난아기 때부터 발달과정을 거의 매일 동영상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낸다. 아내는 아기가 자기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서윤아, 까꿍!” 하며 같은 동영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또 본다.

그러한 아내의 심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딸이 혼기가 차도록 결혼을 하지 않아 한때 심한 우울증까지 겪었던 아내이다. 그런 후 결혼을 하고 손주까지 보았으니 어찌 귀엽지 않으랴! 나 역시 겉으로 표현을 자제할 뿐 동영상을 보는 즐거움은 아내와 다르지 않다. 요즘은 이런 기쁨을 주는 딸이 너무도 고맙기만 하다. 

딸이 아이를 낳은 후부터 아내에게 전화하는 횟수가 부쩍 잦아졌다. 처음 겪는 육아라 아기의 안색만 변해도 전화해서 “엄마, 왜 그래? 어떻게 해?” 하고 유난이다. 모녀가 결혼문제로 갈등이 심했던 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요즘은 수시로 반찬을 만들어 딸에게 택배로 보내느라 바쁘다. 그 덕분에 우리 집 밥상도 푸짐해졌다. 도대체 자식사랑은 어디까지일까? 이를 지켜보는 나까지 흥겹다. 하루는 딸이 서윤이의 웃는 모습이 신기한 듯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장면이 우리에게 왜 이토록 감동을 줄까?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우리도 저를 키울 때 저렇게 귀하게 키웠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며칠 전 아내와 딸이 전화하다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했다. 딸이 느닷없이 “엄마 그러면 앞으로 서윤이 동영상 안 보낼 거야!”라고 했다. 그 말에 아내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하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혀버렸을지도 모른다. 이게 말이나 되는가? 나 같으면 “보내기 싫으면 보내지 마”하고 큰소리 칠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아내의 책임도 없지 않다.

손주 사랑도 어지간해야지. 한참 후 정신을 차린 아내는 “나한테 보내기 싫으면 아빠한테로 보내”하고 그냥 웃어넘겼다. 문제는 딸이 엄마를 놀리려고 농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영상 보내는 일을 부모에게 큰 선심을 쓰고, 효도라도 하는 양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하기야 아내에게는 이보다 더 절박한 일은 없으니 효도라고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나는 요즘 수시로 아내에게 “당신 지은이한테 잘해, 그러다가 동영상 보내지 않으면 어쩔 거야?”하고 농담을 한다. 이 비장의 무기 앞에 아내는 완전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도 아내와 다투게 되면 “당신 그러면 동영상 보내지 말라고 할 거야”라고 써먹으면 어떨까 싶다. 아내에게 이 말보다 더한 아킬레스건은 없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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