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41] 알라딘의 재스민과 중국의 모리화
[유주열의 동북아談說-41] 알라딘의 재스민과 중국의 모리화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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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에서 상영된 월트 디즈니 영화 ‘알라딘’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여주인공 재스민 공주는 1992년 애니메이션 원작의 캐릭터와 완전히 달랐다. 주변 국가와의 관계에 신경을 쓰고 백성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다. “왕족은 가장 불행한 백성보다는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유언을 잊지 않고 있다. 재스민 공주는 천년 동안 한 번도 술타나(여성술탄)가 나오지 않았다고 술타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관습에 대해 “스피치리스(speechless 침묵하지 않아)”라는 솔로곡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었다. 

“내입을 막고 나를 막아 보시지
나를 막을 수 없을 거야
나는 침묵하지 않을 거야”

결국 아버지 술탄은 “네가 아그라바 왕국의 미래다. 이제 네가 술타나다”라면서 재스민을 왕좌에 오르게 한다.영화 ‘알라딘’의 중국어 자막에서 재스민은 “모리화(茉莉花)공주”로 나온다. 모리화는 남중국 및 인도가 원산지인 순백의 꽃이다. 모리화의 ‘모리’는 산스크리스트어인 진주(眞珠 말리카)에서 유래됐다.

모리화는 3-6세기 남북조 시대 중국을 지배한 북방 기마민족과 함께 중앙아시아에로 전래됐고 그 지역을 지배한 아랍인에 의해 다시 북아프리카로 흘러 들어갔다. 아랍에서는 순백의 하얀 꽃 모리화를 ‘신(神)의 선물’이라는 의미로 “야스민(jasmeen)”으로 불렀다. 야스민의 영어식 발음이 재스민이다. 

야스민은 독특한 향과 순백의 색깔로 청결을 좋아하는 아랍인의 사랑을 받아 왔기에 아그라바 왕국의 술탄이 공주의 이름을 야스민(재스민)으로 불렀을 것이다. 야스민은 튀니스의 국화(國花)이다. 2010년 12월 어느 날 튀니스의 시내에서 26살의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무허가 노점상에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 경찰은 과일과 채소를 몰수하고 저울까지 가져갔다. 뇌물을 원하는 경찰의 단속으로 생존권을 위협받은 부아지지는 분신자살로 항의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벤 알리 튀니스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군부가 중립을 지킴으로서 24년간 집권해 온 독재정권은 붕괴됐다. 세계 언론은 튀니스의 국화 재스민의 이름을 빌려 “재스민 혁명”이라고 불렀다. 튀니스에서 시작한 재스민 혁명은 북아프리카에 요원의 불처럼 번져 나갔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가 탄핵되어 권좌에서 축출되고 리비아에서는 내전이 부활하여 무함마드 알 카다피가 목숨을 잃었다. 아랍 젊은이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youth quake)운동은 튀니스의 재스민 혁명에서 촉발되어 ‘아랍의 봄’을 가져왔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민요의 이름도 모리화다. 모리화곡은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될 때 연주됐고 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의 폐막식 그리고 4년 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엑스포의 주제 음악이 되기도 했다.

“한 송이 아름다운 모리화
가지마다 넘치는 그윽한 향기의 하얀 꽃
아름다운 꽃을 친구에게 보내련다.”

2017년 4월 미국을 찾은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내외 앞에서 트럼프의 외손녀 아라벨라(이방카의 딸)가 부른 모리화 노래이다. 정상 외교에 끼어든 귀여운 얼굴의 아라벨라에게 ‘미중우호의 작은 사자(使者)’, ‘트럼프 외교의 비밀도구(secret tool)’라는 별명을 안겼다. 모리화 노래는 중국 청조의 건륭황제 연간에 양쯔강 남쪽에 유행했던 민요로 찻잎을 따면서 불렀던 일종의 노동요였다. 아열대 산지에서 자생적으로 피는 모리화는 그 향과 순백의 색깔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 민요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중국을 상징하는 노래다.

청조 말기 북양대신 리홍장이 유럽과 러시아를 순방했다. 방문국에서는 연주할 국가를 필요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국기로 삼각 황룡기가 사용됐지만 국가는 없었다. 리홍장은 모리화곡을 임시 국가로 지정했다. 1920년대 초 푸치니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투란도트를 작곡할 때 모리화곡을 주제곡의 하나로 삽입함으로써 이 곡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신중국 건국 후 중국의 국가는 항일 의용군의 행진곡으로 바뀌었지만, 모리화 노래는 여전히 애창되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이 노래를 특히 좋아했다. 그는 2006년 케냐 나이로비의 공자학원을 방문하여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과 교사들과 함께 합창하는 등 해외 순방 시 교민(화교)들과 어울려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 하여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재스민차가 바로 모리화차다. 송나라 시대 푸젠성의 야생 모리화 꽃에 녹차잎을 섞어 찻잎에 꽃향이 천천히 스며들게(薰着) 하는 향편(香片)이라는 독특한 화차(花茶)를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 ‘알라딘에서 아그라바 왕국 공주의 이름이 됐던 재스민은 튀니스에서 혁명이라는 정치적 무게를 가지면서 반독재 저항의 아이콘으로 유전(流轉)되고 있다. 일부 아랍권 독재 국가에서는 재스민은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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