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1952년이 서유럽의 운명을 갈랐다
[이계송칼럼] 1952년이 서유럽의 운명을 갈랐다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19.08.0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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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후 서유럽국가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몹시 불안했다. 나치와 파시스트 경험을 가진 직후였기 때문이다. 소련 공산당은 소위 ‘철의 장막’을 치고 동독을 비롯하여 동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동독은 ‘계획된 사회주의 건설’이라고 하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채택한다. 전승국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이에 대한 견제에 나선다. 1949년 NATO를 창립하고, 무장 서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1952년’이 ‘서유럽’의 운명을 가른다. 당시 서유럽은 반공, 경제연합, 군사동맹으로 뭉치고 있었다. 스탈린은 이를 와해 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역사가 Ian Kershaw가 최근 발간한 저서 <The Lure of Western Europe>을 통해서 당시의 상황을 새롭게 조명했다. 스탈린은 서유럽 동맹의 마지막 와해 수단으로 서독을 대안 노선으로 설정한다. 독일을 나누어 점령하고 있던 강대국(미국, 프랑스, 영국)에게 의외의 평화안을 내놓는다. ‘중립국 통일 독일’을 제의한 것이다. ‘통일/비동맹 독일’이라면 민주주의 당파들의 자유로운 활동도 허락하겠다는 선언까지 한다. 또한 자유선거를 실시할 수 있고, 독자적 군대를 가질 수 있다는 제안도 이어진다.” 

“스탈린의 제안에 혹한 서독 정치인은 사회당 당수 Kurt Schumacher였다. 다수의 독일 국민도 스탈린의 제안에 찬성한다. 하지만 이를 반대한 정치인이 있었다. 당시 서독 수상 아데나워(크리스찬 민주당)였다. 그에게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1952년 상황으로 보아 스탈린이 언급한 ‘선거(elections)’란 속임수고, 선전용으로 언제든 조작할 수 있거나 무시할 수도 있는 제안으로 본 것이다. 당시 서독은 수년간 경제적으로 유래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동독 경제는 이보다 훨씬 뒤져있었다. 양 독일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하나는 번영과 자유, 또 하나는 가난, 독재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아데나워와 그의 동료들 무엇보다도 히틀러와 2차대전의 악몽에 치를 떨고 있었다. 아데나워는 특히 소련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받는 독일이 된다면, 서독의 새로운 민주주의는 틀림없이 깨질 거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서독의 생존은 오로지 서방 국가들과 밀착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한 이유였다. 아데나워는 스탈린의 통일 독일의 제의를 즉각 거절한다.” 

영구분단이 될지라도 공산당에게는 절대 문을 열어줄 수 없다는 아데나워의 판단은 옳았다. 국가의 주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지키는 데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당시 서유럽은 자유민주 블럭으로서 경제연합, 군사동맹을 통해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며 반(反)공산주의, 신흥자본주의와 함께 법의 원칙, 인권,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제도를 구축하고 있었다. 안보는 승전 연합국의 최강자인 미국에게 주저하지 않고 맡겼다. 미국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안보의 주권을 유보하고라도 반공을 위해 미국의 힘을 이용하는 실용을 택했던 것이다. 그게 NATO였고, 오늘의 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복지의 초석이 되었음은 물론 독일통일의 경제적 기반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아데나워의 정치적 비전과 리더십은 위대하다. 그는 드골과 손을 잡는다. 엄청난 사건이었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는 지금의 한일관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험악했다. 두 지도자는 과감히 과거사를 뒤로한다. 적대관계를 우호관계로 바꾼 국제외교의 대표적인 사례다. 기념비적인 NATO가 유럽의 안보기구로서 확고한 위치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두 지도자의 혜안과 결단력의 결과다.

전후 서유럽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오늘과 같은 번영과 복지를 누리게 되었는가? 결정적 과정을 재조명한 역사가 Kershaw의 작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핵, 미중패권다툼, 미러협력, 한일경제전쟁, 불안한 한미동맹...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많은 국내외 동포들은 불안하다. 문재인 정부는 막연히 ‘새로운 세상’ 우리끼리 연방통일 무장중립/경제대국의 꿈을 꾸고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가슴만 뜨겁고, 머리로 공감할 수 있는 ‘어떻게’가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불안한 미래, 서유럽과 비슷한 길을 걸어오면서 이만한 판세를 만들어낸 우리 역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좌표가 있다. 지금껏 지켜온 민주, 인권, 자유시장 경쟁 체제다. 그것은 서방세계와의 강력한 연대로만 유지될 것이다. 특히 이웃 나라 일본과 과감히 과거사를 뒤로하고 미래에 희망을 거는 일이 선결과제가 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적어도 한미일 동맹 강화만이 중러북한의 위협을 막아내는 유일한 방안이요,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추구하는 길이다. 1952년 서유럽의 운명을 바꾼 아데나워 수상의 얘기를 꺼낸 이유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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