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일본은 적인가
[특별기고] 일본은 적인가
  • 김정남 본지 고문
  • 승인 2019.08.0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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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지난 7월4일, 일본정부가 반도체 등의 핵심소재 3가지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한데 이어 8월2일에는 한국을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수출심사우대국)에서 제외함으로써 이제 한국과 일본은 사실상 경제전쟁에 돌입한 상태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바로 그날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과 함께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리고 8월5일에는 “남북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단숨에 일본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다”면서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지원하는 쌀 5만톤의 수령마저 거부하고 미사일 도발을 거듭하는 북한을 놓고 평화경제는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어쨌든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하나 되어 싸워야 하고, 그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것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싸우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며, 험하고 살벌한 모습으로 국민 내부가 분열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싸우기 전에 이미 패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또한 증오와 적대를 내세우기보다는 지면서 이기는 방법도 생각해 볼 일이다. 8.15를 맞이하면서 느끼는 소회다.

잃어버린 도덕적 우위

일본정부는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하게 된 이유를 이리저리 구차하게 돌려 말하더니 8월6일, 아베는 징용문제를 놓고 한국이 협정을 지키지 않아 양국간의 신뢰가 크게 훼손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보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 때 이루어진 한일간의 위안부 문제 합의를 파기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참에 경제적으로 한국의 기를 꺾어 놓자는 계산이 있을 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아베의 숙원이라 할 헌법개정이라는 정치목표와 연결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요시다 쇼인, 이토 히로부미 등 조선침략 이데올로기의 맥을 잇고 있는 아베한테 이런 보복을 당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일본은 한국정부가 방치하고 있는 틈을 타고 더욱 치밀하게, 정밀타격을 준비해 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대응은 무능해 보이고 미덥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한일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느끼고 겪은 한두 가지 경험을 전하고 싶다. 아마도 1993년 1월쯤이었을 것이다. 제1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YS와 재야인사들과의 면담이 63빌딩에서 있었다. 그 자리에서 홍성우 변호사가 그때 막 떠오르기 시작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에 돈을 내서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이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우리도 이만큼 살 만하게 되었으니, 그분들의 생계는 한국정부가 스스로 책임지고, 일본정부는 다만 그 진실을 밝히고 그 역사적 죄과를 사과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소견을 밝혔다.

YS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3월13일, YS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국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태조사와 생계대책을 마련하고 일본정부는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스스로 밝히고 역사와 세계 앞에 사죄하라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문민정부가 막 출범한 직후라 그 발언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로부터 얼마 뒤 주일한국대사가 나를 찾아와 자신의 외교관 생활 중 일본 앞에서 일찍이 그렇게 당당해 본 적이 없었노라던 모습이 지금도 새롭다. 그에 비하면 지금 한국은 도덕적 우위마저도 잃고, 경제보복까지 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국청년과 일본청년이 손잡는 날

2008년 아니면 2009년이었을 것이다. YS가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내가 수행원으로 따라가게 됐다. 도쿄는 물론 오사카와 교토, 나라까지 들렀는데 나이 든 교포들이 때때옷을 차려입고, 전직 대통령과 사진 찍고 자기들이 손수 만든 떡과 잡채와 김치 등을 들고 와서 대접하던 그 따뜻하고 눈물겨운 정경들이 아련하다.

그때 와세다 대학에서 YS의 특강연설이 있었다. YS는 청중들 앞에서 이렇게 강연했다.

“나는 일본을 원수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내가 정치인이 되고 나서야, 일본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해 나가야 할 이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통령 재임 중 잘한 것 하나 있다면 나는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유치를 꼽고 싶다. 한국과 일본의 2천년 역사에서 이룩한 최초의 협력이 2002년 한일월드컵이었다. 내가 죽을 때 한국의 청년들을 향해 우리들의 이웃인 일본의 청년들과 손에 손잡고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진보를 향해 나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일본이 지난날의 식민지배와 착취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때 일본은 도덕적 대국으로 거듭날 것이며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은 기꺼이 손잡고 미래로, 세계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일미래를 강조한 이 강연에 큰 박수가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또한 나는 한국 민주화투쟁의 고비고비마다 일본시민사회의 양심으로부터의 지지와 협력이 큰 힘이 되었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일본 안에서 일본정부를 향해 “한국이 적인가”를 묻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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