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혜의 시가 있는 아침] 밤에는 - 최문자
[신지혜의 시가 있는 아침] 밤에는 - 최문자
  • 뉴욕=신지혜 시인
  • 승인 2019.08.16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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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자 시인
최문자 시인

밤에는

얼마나 낮이 무거운지 새들은 밤에 죽습니다 밤은 가끔 내 맘
에 듭니다 증거 없이도 믿어집니다 밤에는 눈을 부릅뜬 물고기
를 때려잡지 못해도 와인 잔을 들고 취해 본 적 없어도 비틀거리
다 자주 웃고 그리우면 눈물 핑 돕니다 이유 없이 한 계절에 몇
번씩 그가 나를 모른 체 해도 밤이 와 주면 밤의 가게처럼 철문
을 닫고 사계절 검은 의자에서 나의 실패담을 썼습니다 아직도
나는 별빛이 모자랍니다 낮이 얼마나 쓰라린지 벌레처럼 밤에
맘 놓고 웁니다 낮에 아팠던 자들의 기침 소리가 들립니다 낮
동안 너무 환한 재를 마시고 밤에 심한 기침을 합니다 쿨룩쿨룩
참았던 낮이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피가 섞여 나옵니다 어떤
기도가 이 밤을 이길까요

- 최문자 시인 작품 ‘밤에는’ -

당신이 한번 이 시에 매료된 이상, 당신은 결코 이 시를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시가 당신을 밤의 가장 어두운 대리석 밑바닥까지 내려가 극한의 슬픔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뼈저리다 못해 찬란한, 고립의 완벽한 어둠 속에서 슬픔으로 활활 타오른다. ‘나의 실패담’ ,‘모자란 별빛’, 그리고 ‘낮이 얼마나 쓰라린지 벌레처럼 밤에 맘 놓고 웁니다’ ‘기침소리’의 구절에서, 한번 더 고통에 무릎이 꺾인다. ‘쿨룩쿨룩 참았던 낮이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피가 섞여 나옵니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시가 우리의 감성을 붙잡고 도저히 놓아주지 않는 이유는, 두뇌가 아닌 참 심장에서 우러난 진실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언어로 빚는 참 보석이 있다면 인위적 시적 기교와 몽상이 아닌, 진실의 기저에서 뼈를 깎는 경험과 극한의 고통을 겪은 자만이 온전히 빚어놓을 수 있는 것, 바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이 시의 고매한 언어적 경지를 목도한다. 자 여기 고통을 변주하는 시, 시퍼런 결기로 슬픔과 맞장을 뜨며 슬퍼서 슬픔을 이기는 형형한 시가 있다. 그렇다. '어떤 기도가 이 밤을 이길' 것인가. 

최문자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무고아원 』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 『사과 사이사이 새』 『파의 목소리』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 등이 있다. 박두진 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야립대상 등을 수상했고 협성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배재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필자소개
시인.《현대시학》으로 등단,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 미주동포문학상, 미주시인문학상, 윤동주서시해외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세계 계관시인협회 U.P.L.I(United Poets Laureate International) 회원. 《뉴욕중앙일보》 《미주중앙일보》 《보스톤코리아》 《뉴욕일보》 《뉴욕코리아》 《LA코리아》 및 다수 신문에 좋은 시를 고정칼럼으로 연재했다. 시집으로 『밑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을 출간했다.

신지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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