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강남좌파
[선비촌만필] 강남좌파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19.08.19 11: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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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좌파정권 시절에 유행했던 ‘강남좌파’라는 냉소적 용어가 요즈음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는 당시 언론에 회자되던 이 시사용어가 집권 좌파인사들의 위선(僞善)과 2중성을 풍자한 용어라는 것을 한참을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극우세력과 충돌하던 급진좌파와는 달리 머리는 좌파, 몸은 우파인 시대의 기형아가 바로 ‘강남좌파’라는 것이다. 7-80년대 독재시대에도 보수야당의 아성이었고 보수의 메카로 알려진 강남.

각종 선거에서 진보정당이 발붙이지 못했던 ‘강남’이라는 지명에 ‘좌파’라는 이념 용어를 이렇게 조립한 논객들의 기발함이 놀라웠다. ‘강남’이란 지명이 상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1970년대 강남일대에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오일달러 유입과 함께 불기 시작한 투기열풍은 ‘강남대박’ 신화를 창조하며 신흥부촌으로 떠올랐다. 강남 일원은 많이 배우고 가진 자들, 그들의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정보력을 바탕으로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리던 이른바 ‘강남우파’들의 경연장 이었다. 이들이 이주한 강남일원은 낙후한 구도심 ‘강북’에 대비되는 계획, 첨단 도시 인프라와 함께 고급 아파트촌이 건설되면서 화이트칼라들의 독특한 생활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들의 생활문화를 ‘강남문화’라고 일컬었는데 혹자는 이를 천민자본주의 ‘졸부문화’로 폄하하기도 했지만, 강남은 높은 지적수준에 권력이나 부(富)를 가진 기득권자들, 즉 사회적 ‘갑’집단들을 상징하고 있었다. 치열한 신분상승 경쟁에서 승자들이 많이 살고 있던 강남은 낙오한 사회적 약자들에겐 냉소와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강남’은 지역명칭이라기 보다 특정계층의 생활문화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화이트칼라들의 생태계를 지칭하던 ‘강남문화’는 우리사회 양극화를 상징하는 용어이기도 했다. 고도성장 수혜자인 ‘강남우파’들과 전문직, 문화계 등 지식산업 종사자들의 요람이던 ‘강남’이라는 지명에 ‘좌파’라는 이념의 딱지를 덧붙이고 보니 이 용어에는 설명이 필요해졌다.

좌파집권시절 논객들이 ‘강남좌파’라는 용어를 통해 당시 집권좌파 엘리트들이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평등, 인권, 분배정의 같은 진보적 가치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위선적 행태를 비판했다. ‘강남좌파’는 산업화 세력이 이룩했다는 성장과 풍요의 상징 강남문화에 젖어있던 운동권 엘리트들이 좌파적 이념이나 가치를 남용하는 이른바 ‘이기적 좌파군상’들이라고 조롱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이미 3~40년 전에 서구 선진국에서도 우리의 ‘강남좌파’와 유사한 시사용어가 쓰이고 있었다. ‘리무진 리버럴’, ‘살롱 사회주의’, ‘캐비어 좌파’ 등의 용어가 그것이다. 분단의 유산 때문이었을까! 서구의 좌, 우파는 상호경쟁하며 단점을 보완하는 공존개념이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상대를 적대시(敵對視)하고 정죄(定罪)하는 용어가 되어버렸다. 그 시대 사회적 양극단을 다양하게 경험했던 필자로서는 80년대 강남문화로 부터 소외된 자들의 열패감(劣敗感)에 공감하기도 했었다.

7~80년대 압축 성장 과정에서 자유, 인권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의 희생 위에 구축된 권력이나 부(富)가 존경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그 정당성을 의심받거나 부정당하기도 했다. 이런 당시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여 입으로는 보편적 가치를 외치고 낙오한 대중들을 선동하던 강남좌파들이 행동은 화려한 스펙을 배경으로 수구 기득권자들의 부패와 탐욕스러움을 닮아가는 위선적 2중성은 ‘내로남불’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이런 좌파 지식인들의 모습에서 ‘강남좌파’라는 신조어는 사회적 풍자어로 확산됐다. 어떤 논자의 주장처럼 차라리 행동은 좌파처럼 사상은 우파처럼 처신했다면 조롱은 면하지 않았을까! 앞에서는 소외된 서민들의 애환을 얘기하고 그들의 인권과 복지를 외치면서 뒤로는 끊임없이 권력과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진보 엘리트들의 2중성을 절묘하게 표현한 용어가 “강남좌파”라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나 일상에서 경험하는 ‘강남좌파’는 많다. 봉건체제가 주는 온갖 특권은 다 누리면서 청빈(淸貧)을 노래하며 도탄에 빠진 민생을 걱정하는 관념적, 위선적 언어로 현실을 호도했던 사대부들! 미국 시민권자인 가족이나 유학생 자녀를 둔 자신은 의식 있는 반미(反美)주의자로 행세하는 진보 지식인의 2중성!

입시위주의 황폐한 교육현실을 성토하며 뒤로는 자녀들의 일류병을 부추기는 사회 개혁론자들과 자기는 강남거주를 고집하면서 남에겐 ‘왜 강남에만 살려고 하는가?’로 반문하는 강남좌파들의 내로남불은 또 어떤가!

참으로 ‘강남좌파’의 뿌리는 깊고도 오래되었다. 이러한 2중적, 위선적 행태는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사회지도층, 특히 정치인들에게 일반화 된 증상이기도 하다. 이는 대중 정치의 함정인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인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위선을 벗고 사(私)적 영역에서도 좌파적 가치를 실행하는 도덕적 좌파가 되던가, 아니면 위선적 2중성을 고백하고 언행이 일치하는 정직한 좌파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강남좌파’들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선 좌파들의 이상(理想)이나 가치가 실현되는 것도, 부패하고 이기적인 우파들의 탐욕이 청산되는 것도 쉽지 않겠다는 절망감이 엄습해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강남좌파들의 위선적 언행과 무책임한 수구보수들의 기득권 수호 놀음에 국민의 불쾌지수는 높아만 간다.

극성스러운 SNS 광신자들이 배설하는 온갖 확증 편향적 극단론도 우리 사회를 더욱 불신과 혐오의 세계로 추락시키고 있다.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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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진 2019-08-19 13:08:45
멋진 글 감사합니다.예리하게 사회병폐를 지적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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