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고희단상(古稀斷想)
[이영승의 붓을 따라] 고희단상(古稀斷想)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9.08.23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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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마흔에 불혹(不惑)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혹은 고사하고 온갖 현혹에 바람 앞의 등불이다. 70년 세월이 언제 흘러갔는지 참으로 꿈만 같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쓴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말했다. 남은 세월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정상을 정복하는 것만이 등산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오르는 과정에 길섶의 예쁜 꽃도 감상하고, 맑은 공기와 대자연의 아름다움도 만끽해야할 것이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내려올 때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다.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반환점을 돈지도 오래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만이 유일한 선택이다. 그렇다. 남은세월은 누가 뭐래도 정말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면서 내 의지대로 한번 살아봐야겠다.

인생은 어떤 생각으로 사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행복도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이 과오는 자신의 생이 길 것이라 믿는 착각에서 온다고 했다. 미래의 더 큰 성취를 위해 오늘의 소소한 즐거움을 다 포기한다면 내일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렇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의 오늘이 모인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니던가!

10년 전 회갑 때였다. 백세시대인 만큼 칠순 때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조용히 보냈다. 그 후 또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해 아내와 수차 고심을 했다. 이번에도 백세시대를 핑계로 팔순 때를 기약하며 부부가 터키여행을 다녀왔다.

실은 금년 초까지만 해도 지인들을 모시고 칠순잔치와 첫 수필집 출판기념회를 동시에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서른아홉 아들이 금년에도 장가를 가지 않아 칠순얘기는 입 밖에 뻥끗도 하지 않기로 했다. 혼기 찬 자식을 둔 부모심정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니, 그놈의 스타일은 어디에 숨어서 이토록 애간장을 태운단 말인가? 근심과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는 아내를 지켜보기 안타깝다. 세간에 ‘아무리 명문대를 나오고 좋은 직장 들어가도 연애 잘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줄 알았던 그 말이 요즘은 만고의 명언인 듯, 실감을 하고도 남는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 온지 어언 34년이다. 자식교육을 대도시에서 시켜보겠다는 일념으로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전 무조건 보따리를 쌌다. 그 때는 내 나이 서른여섯의 젊음이었다. 人生七十古來稀(예로부터 사람이 칠십을 살기는 드물다)라 했던가? 내 마음은 아직 청춘이다. 그런데 이일을 어찌하랴!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바라보니 앞머리가 한 뼘이나 올라가 이제는 누가 봐도 영락없는 노인이다.

지난세월 뒤돌아보니 후회와 여한이 남는다. 아쉬움도 적지 않다. 창조주는 왜 예비목숨을 하나 더 만들어 시행착오 없는 생을 다시 한 번 살아보게 하지 않았을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이를 가슴아파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거실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흰 구름이 정처 없이 흘러간다. 내 인생도 저 구름처럼 흘러온 듯하다. 요즘 들어 세월의 속도가 점점 빠르게 느껴지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간다는 징조가 아닌가 싶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어떻게 살 것인가 고심이 깊었던 탓인지 우울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 유서까지 쓸 정도의 위기였다. 수필에 입문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사는 게 별거던가? 지금부터가 제2의 내 인생이다.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내 육신이 허용하는 한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글을 쓰리라. 이 또한 키케로가 말한 준비가 아닐까 싶다. 고희(古稀)를 앞두고 상념에 젖어 잠시 적어본 단상(斷想)이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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