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원의원 출마한 영김, 자신의 이민자 삶 소개하며 도전과 용기 강조
미하원의원 출마한 영김, 자신의 이민자 삶 소개하며 도전과 용기 강조
  • 청주=이종환 기자
  • 승인 2019.08.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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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코윈대회에서 기조강연··· ‘한인여성들의 미래 역할’이 주제
영김 전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웬 자식 자랑, 남편 자랑?”

지난해 미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탈락했던 영김 전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이 자신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며 남편의 외조에 대한 소개에 이어 자녀들에 대한 언급에까지 이르자 참가자들이 앉은 테이블에서 의아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김 전 의원은 남편 찰스 김씨와의 사이에 네 자녀가 있다고 소개했다. 모두 성품이 좋고 잘 커 준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32세인 큰딸이 2015년, 29살인 둘째 딸이 2017년, 셋째인 아들이 3주 전 결혼했고, 막내는 24살이라면서 순서대로 결혼해 준 것도 고맙다고 설명했다.

종교 얘기가 약간 길게 이어질 때 또 한 번 청중석이 웅성거렸다. 그는 자신이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일 때 캘리포니아 주도에서 ‘미주한인의 날’ 선포식을 가진 것을 소개하며 “미국 주도에서 한인 목사님들과 함께 한국말로 기도하며 찬송하고 예배드렸고, 합창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듬해 같은 기념식 날에는 “주경찰이 그것(우리말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으나 또 그것을 했다”고 설명했다.

영김 전 의원은 8월27일 청주 그랜드호텔에서 막을 올린 제19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대회에 참여해 개막식 직후 기조강연을 했다. 강연 타이틀은 ‘역사의 주체: 한인여성들의 미래의 역할’.

그는 이 주제를 미주 이민생활 속에서 소수민족으로 자긍심을 갖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자신의 삶의 역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소화해 냈다.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1975년 가족이 괌으로 이민을 떠나면서 이민자 생활을 시작했다. 괌에서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해변가에서 빈 캔도 주웠으며, 어머니는 이것을 모아 한인교회 구입에 기부했다고 한다. 괌에서 중학교를 마친 그는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미군에 입대한 막내 언니의 주둔지였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 섬을 떠나 본토에 있는 대학을 지원했다. 남가주대학(USC)였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그는 시민단체 ‘한미연합회’ 활동을 하는 남편 찰스 김을 만나 결혼했다.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인 에드 로이스로부터 파트타임으로 의원실에서 일할 것을 제안받은 것은 남편 일을 돕던 1990년이었다. 2년간의 파트타임 기간, 그는 풀타임 같이 일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때문이었는지 에드 로이스가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부터 그는 ‘풀타임 페이를 할 테니 풀타임으로 일을 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정식 보좌관 제안을 받은 것이다. 당시 그는 두 딸에 이어 셋째인 아들이 태어나 자녀가 셋이 됐을 때였다.

이때 남편의 격려가 힘이 됐다고 한다. 결국 에드 로이스한테 합류했으며, 그가 2013년 캘리포니아주 하원으로 당선될 때까지 에드 로이스 의원실에서 23년간을 일했다.

에드 로이스 의원 보좌관으로서 그는 에드 로이스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 에드 로이스 의원이 한미의원연맹 미국 측 의장을 맡았을 때는 미국 측 실무자 역할을 했고, 탈북자인권문제 세계의원연맹이 조직되면서는 미국 측 실무자도 맡았다.

미국에서 한국의 독도문제도 돕고, 한미자유무역협정의 긴 과정에도 도왔으며, 북한인권법안 성립에도 힘을 보탰다.

한편으로 그는 KBS월드와 아리랑TV 토스쇼 진행자를 맡을 것을 제안받아 8년간 매주 토요일 한국어로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그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의 한국어 어휘실력도 전문가 수준으로 성장해갔다고 한다.

그는 캘리포니아주에서 공화당으로서는 주하원의원이 된 첫 한인여성이었다. 그에 대한 민주당 측의 견제는 가혹했다. 하지만 그는 저소득층 자녀를 돕는 학용품 도네이션 일을 성사시키는 등 활동을 강화해갔다. 캘리포니아에서 유일한 한인 주의원으로 ‘미주한인의 날’ 선포에도 참여했다.

그는 에드 로이스의 지원 아래 그의 지역구에서 하원의원으로 출마했다. 공화당 지지와 민주당 지지가 백중세를 이루는 지역이었다.

민주당 후보에 비해 선거자금이 10분의 1 수준으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선전해 그는 선거 당일 개표에서 당선자로 소개됐다. 김창준 전 의원 이래 미국에서 첫 한인 하원의원 선출을 알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부재자 투표함이 열리면서 결국 고배를 마셨다. 아주 근소한 차이였다. 캘리포니아에 몰아닥친 반트럼프 정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신 선거 당일 개표에서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 뉴저지의 앤디 김 후보는 민주당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반트럼프 바람을 제대로 탄 것이다.

그는 한국은 친정, 미국은 시집이라고 소개했다. 미주한인사회는 친정, 미주 주류사회는 시집이라고 덧붙였다. 시집서 일 잘하면 친정 갈 때 보따리 하나 더 싸갈 수 있다는 말도 덧보탰다.

그는 세계 한인여성 지도자들이 차세대를 양성할 때 용기를 주고, 비전을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이 닫겨 있으면 다른 문을 찾도록 조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가 너는 안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의 한계가 아니라 말하는 화자의 한계라고 역설했다. 성공하는 사람은 중도에 멈추지 않고, 하다가 멈추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내년 선거에서 당선되면, 세계한인여성지도자대회를 워싱턴에서 개최하겠다고 역설해 큰 박수를 받았다.

영김 전 의원의 이날 강연은 큰 호응을 이끌어내며 끝을 맺었다. 하지만 맨 처음 소개한 것처럼 그의 강연은 어떤 부분에서는 가족자랑(?)으로 이어지고, 어떤 부분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강해 감동을 반감시켰다.

이런 얘기를 굳이 덧붙이는 것은 향후 정치활동에서 그의 감각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그의 말대로 내년에 미 하원에 입성해 ‘자랑스러운 한국의 딸’이 되기를 원한다면 예민한 정치적 후각을 무디게 해서는 안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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