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지새우며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파티가 끝난 후 난생 처음 유숙한 서귀포 칼 호텔 큰 스윗트룸 침대에서 잠든 내가 아닌, 소파에서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나는 누군가 ‘할’ 하면서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출이 막 끝난 하늘아래 서귀포 앞바다가, 검푸른 태평양이 양팔을 벌리고 나를 품을 뜻이 3D로 출렁 거린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북쪽으로 바라본 나는 열린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속에 억겁을 침묵으로 우뚝 솟은 한라산 백록담의 노루마저 보일 것 같은... 손에 잡힐 듯이 너무나 선명하게 LED 3D 영화보다 더 선명히 달려오는 삼신 할망의 축복이 넘쳐나고 있었다.
부랴부랴 체크아웃을 하면서 간편한 가방을 맨 나의 마음에서는 음치 특유의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고 있었다. 호텔 정문 ‘물허벅 소녀상’에게 윙크를 보내면서 돈내코행 택시에 올라탔다.
이런 날씨는 제주도 사람들에게도 일년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보기 드문 쾌청, 화창, 청명한 날이기에 한라산 등반하기에는 최고의 날이다. 최근에 개방된 돈내코 등산로에서 뒷걸음으로 올라가며 고도 차이에 따라 지귀도, 섶섬, 문섬, 범섬, 형제섬, 가파도가 보이는 서귀포시 앞 바다의 절경은 한마디로 천하일품이었다.
더하여 한라산을 경외감으로 바라보니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구천을 맴도는 4·3사건 영혼을 위로하는 까마귀들만이 오직 푸른 창공을 유유자적 날고 있었다.
돈내코 코스는 가파르고 돌이 많기 때문에 무릎에 충격이 많이 갔지만 처음가보는 처녀림이기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다. 바람은 숲을 목욕시키고 숲속의 수행자들은 제각각 하늘에 온전한 신심을 공양한다. 춤 바람 소리, 춤 나무 소리, 춤 풀벌레 소리, 춤 새 소리, 춤 계곡물 소리, 춤 구름 소리, 춤 하늘 소리 삼라만상의 합창단의 화음에 도회지 생활에 찌듯 모든 비자연적 유무형 존재가 사라져간다.
그 순간은 空(공), 비워있다. 그 순간은 無(무), 존재하지 않다. 한라산과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 된 자연, 구성원이 된 실감은 일체의 느낌과 겸허함으로 다가왔다.
돈내코에서 7km를 4시간 동안 걸어 남벽분기점까지 도착 했으나 백록담까지는 더 이상 갈수가 없었다. 분화구 보호를 위하여 출입제한 구역으로 설정하였다. 작년에 제주공항에서 이용했던 택시기사분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백록담에 올라가는 바람에 백록담 바위에 금이가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만수절경은 보기 힘들고 밑 빠진 독이 되었다”는 비분강개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워낙 동가식서가숙을 좋아 하여도 어디로 갈거나 판단해야 한다. ‘윗세오름’으로 갈려면 하산은 ‘영실’ 또는 ‘어리목’으로 해야 하고 아니면 이곳에서 다시 돈네코로 하산해야 한다.
이곳에도 컵라면 파는 줄 알고 일부러 점심을 준비 안 했는데 배는 고프다고 고르륵 신호를 보내오고 물마저 떨어졌다. 어쩔 수 없어 남벽 관리인에게 고마운 생명수 삼다수 작은 병 하나를 얻었다.
목을 축이며 한라산 백록담을 품은 윗세오름으로 향하는데 장엄함 기상과 삼라만상의 형상에 압도되어 방아오름샘에서 나도 모르게 챙겨간 소주 한 병과 정한 수 한잔 올리고 합장 고사를 지낸다.
“우리 700백만 재외동포들과 언론인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제주도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을 위하여 헌신하게 하소서.” “제주의 원초적 자연을 보호하게 하소서.” “제주도민들의 안녕과 평화 속에 삶을 영위도록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