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나의 아버지 최재형
[신간소개] 나의 아버지 최재형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9.09.19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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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올가, 최발렌틴 지음··· ‘민족 가슴 울리는 별빛 서신’

“나는 가장 먼저 러시아로 건너온 한인들 중 한 집안의 출신이다. 나는 우리 시골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갔던 사람들 중 한 명이고, 러시아에서 첫 번째 한인 여성 엔지니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다. 이제 나와 나의 아버지 최재형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에게라도 나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렇게 서두를 시작하는 책 ‘나의 아버지 최재형’이 최근 출간됐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딸 최올가 여사와 아들 최발렌틴 씨가 쓴 육필원고를 번역한 책이다.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여 도서출판 상상이 출간했다.

책에는 최올가 여사와 최 발렌틴 씨의 기구했던 일생도 담겨 있다. 러시아어로 된 육필수기를 번역한 정민씨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최재형 선생은 연해주 항일 독립 운동의 대부다. 1860년 8월15일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9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와 형을 따라 연해주로 건너갔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상주한 러시아군을 상대로 군납을 하고 무역업을 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그는 연해주의 수 많은 독립투사들에게 무기와 숙식을 제공하는 등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부대장으로서 직접 항일 유격대를 이끌고 항일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는 1860년대 후반부터 한국인의 연해주 이주로 조성된 한인 마을 곳곳에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문화 계몽운동을 통하여 이주민들의 문화적 수준을 향상하는 데 주력했으며 학교를 마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기금과 자비를 들여 러시아 전역으로 유학을 보냈다. 

1909년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를 만나러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자 항일투사들은 1907년부터 연해주에 와 있던 안중근을 거사 설행자로 정하고, 대한제국의 간도 관리사 이범윤 등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사살 작전 준비했다. 노보키옙스크에서 본격적인 이토 히로부미 암살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때 최재형은 안중근이 자신의 집 창고 안에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위한 사격 연습을 하도록 하는 등 치밀한 계획 수립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를 뒷받침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최재형은 안중근의 거사 후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돌봤다. 한편 안중근의 거사 성공 후 일제는 최재형을 안중근의 최대배후 인물로 지목하여 집요하게 그를 추적하면서 1920년 4월5일 우수리스크 자택에서 그를 체포해 다음날 처참하게 살해했다. 그 후 남은 가족들도 많은 핍박을 받았다. 최재형은 7명의 딸과 4명의 아들 총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최재형의 가족 중에 총 7명이 특별한 이유도 없고 아무런 죄도 없이 총살을 당하였다.

이 책 「나의 아버지 최재형」은 최재형의 딸 중 다섯째인 올가 페트로브나의 글과 아들 중 셋째인 발렌틴 페트로비치의 회고록이다. 올가 페트로브나는 당시 한인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모스크바로 유학을 가서 대학을 졸업하였고 그 후 최초의 한인 여성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홀러갔다.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끌려가서 재판을 받고 10년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여러 지역의 감옥을 옮겨 다니면서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아들인 발렌틴 페트로비치는 20년 이상을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혀 살았다. 학창 시절 아버지인 최재형이 부르주아였다고 고발당한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농업 기사로 근무하면서 가는 곳마다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직급에서도, 주요 보직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그를 따라다녔던 '인민의 적'이라는 낙인 때문에 여기저기 쫓겨 다니며 사람들의 따돌림과 눈치 속에서 살아야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인민의 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80세가 넘어서 자신의 한 맺힌 삶의 역정을 회고록으로 쓰게 된다. 그리고 남은 일생을 아버지 최재형의 애국적 활동과 인생을 조명하는 일에 바쳤다.

이들의 육필 원고를 번역한 정헌씨는 옮긴이의 말에서 “독립이 되고 난 후 독립투사들의 자손들, 한반도에 남겨진 자손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았는가를 생각하면 깊은 한숨과 함께 가슴이 미어진다”면서 “국가는 조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끝까지 존경하고 추념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발렌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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