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45] 지금의 한일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
[유주열의 동북아談說-45] 지금의 한일관계 어떻게 풀어야 하나?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23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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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일로의 한일관계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당초 대법원이 강제징용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을 내렸을 때 정부는 3권 분립을 이유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일본은 우대국인 ‘백색국가’(white list)에서 한국을 제외했고 한국은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결정 통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역사문제가 통상문제로 파급되고 급기야 안보영역으로 확산된 것이다.

세계 2차 대전 후 소련의 급부상으로 인한 미소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은 점령지 일본에 대한 정책을 바꾸어야 했다. 미국은 당초 일본을 더 이상 공업국가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일본의 공업시설을 해체하고 낙농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될 우려가 현실이 되자 미국은 오히려 일본을 공업화시켜 반공의 보루로 만들고 그 연대로 한일 국교정상화가 필요했다.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소극적이었으나 1961년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경제건설을 위해 일본과 관계개선이 필요했다. 국내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5년 청구권 협정과 함께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됐다.

조약문에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avoid)’라는 표현이 있다. 강제병합조약 등 구조약이 이미 무효가 됐다는 의미다. 한국은 구조약이 1910년 애초부터 무효라는 것이고 일본은 해방 이후에 효력을 상실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미”라는 모호한 단어로 과거사를 각자 입맛에 맞도록 봉합한 것이다.

한일 기본조약 체결로부터 반세기 이상 세월이 흘렀다. 냉전은 종료되고 소련은 해체됐다. 일인당 국민소득 110불에 불과하던 한국은 5천만 인구에 일인당 국민 소득 3만불에 달하면서 30-50 세계 경제대국 클럽에 7번째로 가입했다. 한국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외교관으로 일본에 6년간 근무한 경험에서 보면 일본 사람들은 과거는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낸다면서 현재와 미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일 간의 문화차이를 볼 때도 일본의 경우 법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정의나 도덕에 맞지 않은 법은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것은 한일 간 역사문제에 일본이 통상문제로 보복함으로써 촉발됐다. 일본은 한국의 반도체 기업이 일본의 부품 없이는 생산하기 어려움을 알면서도 느닷없이 지난 7월1일 부품의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한국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나온 황당한 조치였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피해자 판결에 대한 불만을 외교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글로벌 협력을 무너뜨리는 상호의존성을 무기화(weaponization of interdependence)한 것이다. 일본의 강공에 허를 찔린 한국은 자존심이 크게 훼손되어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나오자 놀란 나라는 일본보다는 오히려 동맹국 미국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에 대해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마이클 그린 선임부소장은 ‘미국이 했었어야 했던 것들’이라는 칼럼을 통해 미국이 조처를 취하지 않았던 몇 가지를 지적하면서 미국정부를 비판했다. 1)도쿄의 G20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정상과 함께 3자 회담 주최 2)미국정부가 일본이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 못하도록 확고한 반대의사 표시 3)미국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상충하는 부분이 있음을 주시해야한다고 한국에 제안 4)미국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 외교적 갈등해결을 위한 초당적 상.하원 의원들로 구성된 사절단 파견 등이다.

한일갈등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아야 한다. 한일 양국은 당분간 감정적 대응을 ‘쿨 다운’하고 새로운 해법을 찾아 양자협의로 푸는 것이 최상이다. 미국정부는 마이클 그린의 지적처럼 늦었지만 적극개입을 고려해야 한다. 마침 미국 조야에서는 한일 갈등이 미국의 경제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 중재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하원은 한일관계개선과 동맹 강화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곧 표결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실제 지소미아 종료일은 금년 11월22일 자정이다. 그 이전에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 제외를 철회하고 한국은 지소미아를 복원해야 관계개선의 첫걸음이 된다. 그러나 한국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고 일본은 중의원 해산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양국의 선거철 상황이 되어 해결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정치는 차가워도 경제는 뜨겁다는 정냉경열(政冷經熱)이 지금까지의 한일관계였다면 지금은 정치와 경제가 동시에 차가워진 정냉경랭(政冷經冷)이 됐다. 헤어질 수 없는 한일의 향후관계를 생각하면 정부끼리 불통이라면 민간끼리라도 소통 교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오랜 역사를 통해 한일교류를 이어 온 우리에게는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는 미셸 오바마의 말이 와 닿는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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