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④] ‘사의찬미’에서 ‘돌아와요 부산항’까지··· 부산을 노래하다
[홍미희의 음악여행 ④] ‘사의찬미’에서 ‘돌아와요 부산항’까지··· 부산을 노래하다
  • 홍미희 기자
  • 승인 2019.09.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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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0일, 금요일 새벽 5시. 집을 나섰다. 짧은 볼일이 있어 부산에 가기 위함이다. 사실 서울에서 부산은 하루에 운전을 하면서 다녀오기는 벅찬 도시이다. 그렇지만 두 명이 운전을 나눠서 하면서 휴게소도 여기저기 들리고 즐겁게 또 다녀올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여주쯤 오니 산 뒤가 훤해지기 시작한다. 고속도로의 새벽길은 맑고 씩씩하다. 큰 차들은 짐을 싣고 작은 차들은 일터를 향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휴게소를 들러 아침을 먹고 부산에 도착해서 볼일을 보고 나니 점심때가 됐다. 구름이 이중으로 떠 있는 맑은 날이다. 태풍이 내일부터 온다고 한다. 낮은 뭉게구름과 높이 떠 있는 구름 사이에 파란 하늘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높은 고층 아파트와 부산의 바다가 보인다.

부산은 우리나라의 대중가요와 참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 도시이다. 음악과 사회는 서로 상호영향을 끼친다. 음악은 개인적으로 볼 때는 매우 고독하고 사적인 일이지만 또한 공공성과 사회성을 지닌다. 사회는 음악에 음악은 사회에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다. 신세대 문물인 레코딩은 늘 유일무이하게 지정된 자리에서 한정된 시간 안에 존재해 왔던 음악을 여러 장소에서 다 같이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부산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인 ‘사의 찬미’이다. 이 노래를 부른 ‘윤심덕’은 1926년 일본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행하던 관부연락선에서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비행기가 없던 시절 부산은 모든 외국의 문물이 오고 가던 도시였다. 사의 찬미는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라는 가사와 우리나라 고유의 5음 음계와 비슷한 ‘도나우강의 잔물결’에 붙인 가락이 당시 우울했던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 이후 바로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은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의 중심지가 됐다. 어릴 때 부산사람이라고 하면 왠지 강할 것 같고 열심히 사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모든 사람이 힘들었던 시절, 노래는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주었을 것이다.

1926년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발표한 음반‘사의 찬미’의 가사집.[사진=
동국대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단]

이후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던 부산은 여러 노래의 주인공이 된다. 1954년 박인수가 부른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부산 땅에서 피난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고 떠나는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의 순간을 노래한 것이다.

또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에서는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등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가사들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사는 암울하지만 그 가락은 아주 빠르고 경쾌해서,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던 그 시절 사람들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후 1960년대, 1970년대는 월남전쟁이 있던 시기로 미군부대를 통해 들어온 팝송이 일반적으로 불렸다. 트윈폴리오처럼 외국 곡을 번안해서 부른 노래들이 인기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노래들은 우리나라의 대중가요의 수준을 높이는데 한몫을 하게 된다.

그리고 80년대 들어와서는 가왕이라고 불리는 ‘조용필’이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이 있다. 점심을 먹으면서 문득 “부산이 항구인가요?”하고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금의 부산은 관광지의 느낌이 강하다. 멀리 광안대교가 보이고 센텀시티와 많은 호텔이 즐비한 바닷가에는 부산항의 느낌은 왠지 멀다.

1960년대 말부터 미군 부대에서 노래 부를 정도로 실력이 있었던 조용필은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했다. 이후 이런저런 사건에 연루되면서 활동을 못하다가 80년대에 들어와서 그룹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고 지금도 놀라운 100만장 판매를 기록한다.

그런데 조용필을 가왕이라고 하는 이유는 ‘단발머리’에서 볼 수 있는 락의 느낌, ‘창밖의 여자’에서 만나는 트로트, 또는 발라드, 민요 등 다양한 분야의 느낌과 방법을 사용한 점일 것이다. 또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는 당시는 생소했던 가락 없이 가사를 랩처럼 가사를 읽는 방법도 사용했다. 강렬한 전주가 지나고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이 있는가”라고 시작되는 노래는 지금도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그러나 조용필의 음악 중 가장 훌륭한 것은 이러한 기술적인 측면보다 그 음악의 품격이다. 무엇이든 처음은 참 힘들다. 조용필은 당시 기초 화음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다양한 화음과 리듬의 아름다움을 선물해 주었다.

또,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부산의 노래가 떠오른다. 롯데자이언츠 응원가로 사용했던 ‘부산 갈매기’이다. 요즘은 저작권 문제로 응원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떼창으로 사직구장과 모든 행사장에서 ‘부산 갈매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는 부산은 참 자유롭다. 그리고 바다가 있어 아름답다. 그리고 내게는 생소한 사투리가 매력적이다. 잠깐 바쁘게 갔던 부산에서 옛날의 음악과 어렸던 나를 만났다. 음악은 그 시대를 말한다. 요즘의 대중음악은 기획사를 통해 만들어지는 거대한 기업, 상업의 시대가 됐다. 이 시대는 어떤 음악으로 기억될지 어떤 음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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