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봄날이 내 곁으로
[해외기고] 봄날이 내 곁으로
  •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24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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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는 소리가 곁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춥다고 움츠렸던 겨울이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봄맞이 축제가 열리는 9월 말에 들어섰다. 날씨가 추웠다가 따뜻해지면 햇살의 소중함을 깨닫고 마음마저 느긋해지는 여유를 갖게 된다. 자카란다 나무에서 조금씩 번져가는 연한 보랏빛에서, 짙어가는 초록빛 나뭇잎사귀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순간, 우리는 가슴이 설레는 기쁨을 만난다. 매일 매일의 오늘을 맞이하지만 바로 이 시간에 멋진 추억을 만들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봄날의 나른함을 잊고 새로운 기운에 온몸을 맡겨보면 좋은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겨울의 잔재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싹에 물이 오르듯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시켜야 할 봄날이 이미 내 옆에 와서 서 있다.

브리즈번축제( 2019 Brisbane Festival)가 9월6일부터 28일까지 시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브리즈번 축제를 총괄하는 예술 감독 데이비드 버솔드(David Berthold)는 “당신의 9월 축제를 어떻게 최고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물론 여러분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단편적인 쇼도 있지만, 축제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은 각각의 다른 부분들이 서로 연결되며 쌓여나가는 것이다. 3주 동안 이어질 더 큰 흥분 그리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9월의 브리즈번축제는 해가 거듭될수록 이 도시의 예술과 문화 수준을 발전시키며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나는 올해의 축제 공연은 ‘We live here’라는 제목의 예술 서커스를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가족이라는 콘셉트를 담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어머니라는 이름 아래에 가정주부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서커스로 표현한 공연이다.

근육으로 잘 다듬어진 몸매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십자가처럼 어깨에 놓인 가사노동을 예술로 승화시킨 점이 놀라웠다. 일반적인 서커스 쇼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바꾼 획기적인 예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의 정원(Fire Garden)이라는 이벤트가 시티 보타닉가든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산불이 연이어 일어나는 현재 상황에서 위험부담을 덜기 위해 소방안전 당국의 경고에 의해서 공연이 전면 취소됐다. 기대감으로 설레며 티켓을 예약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공연들이 퀸스랜드 예술센터(Queensland Performing Arts Centre)에서 매일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나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욕심을 낼만한 공연이 없어서 오히려 아쉬움을 갖게 한다.

지난해에 보았던 특이했던 한 공연이 기억난다. 아프리카 콩고공화국의 예술 팀이 기획한 쇼로서 공연제목부터가 색달랐다. ‘두려움과 즐거움(Fear & Delight)’이라는 버라이어티 쇼로서 관객들이 흰색과 검은 색상의 옷을 입고 입장해야만 했었다. 공연자들은 흰색 바탕에 검정색 굵은 선으로 덧칠한 의상을 입고 얼굴은 마치 공포영화 속에 나오는 무서운 유령처럼 분장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는 희뿌연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여성 드러머의 강렬한 드럼소리에 맞추어서 마치 마사이족의 전사처럼 큰 키에 마른 체형인 남자가수가 거친 목소리의 저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등장했다. 신나는 춤사위와 함께 서커스 공연이 이어지고, 반나체의 여성 공연자를 내세워서 섹시함을 뽐내보려 했으나 관객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전달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색다른 공연이었던 점은 칭찬할 만하다. 예술 감독 데이비드의 표현처럼 또 다른 기획 작품들을 연결해 나가다 보면 멋진 축제의 한 묶음으로 쌓여가는 즐거움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축제의 마지막 밤을 장식할 불꽃놀이를 기다리며 남겨진 봄의 카니발을 제대로 즐겨볼 생각이다.

주말에 투움바 꽃축제(Toowoomba Flower Carnival)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투움바 꽃 축제는 캔버라의 꽃 축제와 더불어 호주 내에서도 유명세를 타는 퀸스랜드주의 대표적인 꽃 축제 도시로 알려져 있다. 1950년 10월에 시작된 이래로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매년 다녀간다고 한다. 일 년에 단 한 번 9월에 열리는 꽃 축제를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듬뿍 느끼며 흙냄새를 맡고 싶었다. 그래서 편안한 여행을 위해서 버스투어를 신청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하루 여행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의 모습에서 활기찬 봄 냄새가 풍겨나는 듯했다. 버스 창문을 통해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시골 야외 풍경들. 호주의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투박해 보이는 농가의 모습들. 말, 소, 양 떼들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뭉실 거리며 떠가고 있었다. 그런 경치들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끼니 호주가 내 삶의 안식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투움바(Toowoomba)로 들어서니 거리 입구에 꽃의 도시 투움바 라는 팻말이 걸려있고, 그 밑에는 둥근 모양의 화단에 봄꽃축제를 상징하듯이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투움바에서는 꽃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정원 경연대회가 있어서 이미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챔피언 상을 받은 집들이 정해진다. 수상을 한 정원들은 공식적인 꽃 축제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자신들의 정원을 일반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공개해서 관람을 시켜주는 것이다.

메달을 수상한 집들의 정원을 들어서며 연신 환호성을 지르는 관광객들. 꽃보다 더 고운 집주인들의 어여쁜 마음씨, 일 년 내내 정성 들여 가꾼 정원을 무료 공개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꽃향기와 화려한 색상으로 물들여준다. 참 인심도 좋은 집주인들. 낯선 이들을 자신들의 집 정원 안에 들여서 마음 놓고 꽃구경을 하게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개방한 집주인들의 마음이 더 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흙냄새 맡고 땀 흘리며 일 년 내내 정성껏 가꾸었던 정원을 다른 사람들의 기쁨으로 전해주는 집주인들, 자연과 함께 사는 착한 사람들의 열린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했다. 그랜드 챔피언으로 뽑힌 집의 정원 안쪽에는 작은 폭포가 만들어져있었다. 파란색의 폭포가 연못으로 떨어지는데 화려한 색의 꽃 무리와 어울려서 너무나 환상적으로 보였다. 천상의 모습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아름다운 정원의 매력에 푹 빠졌다.

꽃 잔치의 황홀함 속에서 헤매며 나를 온전히 잊어버린 채, 도시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꿈속 같은 몽롱한 시간을 보냈다. 공원에서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소풍 나온 어린아이들처럼 웃고 떠드는 사람들에게서 정겨운 미소가 피어난다. 오늘 하루 그들의 묵은 사랑도 아름다운 꽃밭에서 행복하게 다시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거리에서 펼쳐지는 환상의 퍼레이드를 보면서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질러보면서 꽃 축제를 마무리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꽃향기에 취한 즐거운 여정이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가장 큰 축복은 자연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우리에게 마련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술과 문화와 꽃 축제가 어우러지는 9월.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해지는 봄날의 축제. 황홀한 색상의 꽃들이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시간을 기억 속에 잠시 접어두려고 한다.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황현숙(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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