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단지동맹(斷指同盟)
[선비촌만필] 단지동맹(斷指同盟)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19.09.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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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26일 하얼빈 역에서 발사한 안중근의 육혈포 3발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전 세계적인 뉴스가 된 이토 처단사건의 주인공 안중근은 이듬해 3월26일 대한 의병의 신분으로 여순 감옥에서 의연히 순국했다.

우리 민족 가슴에 불멸의 독립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는 안중근은 교육 사업을 하던 진남포에서 1907년 연해주로 망명하여 의병 운동에 투신했다.

1908년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두만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 일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패배하고 다시 연해주로 돌아왔다.

한말 망명 독립 운동가들의 전진 기지였던 연해주에는 유인석, 이상설, 이범윤, 신채호, 이동휘, 최재형, 홍범도 등 수많은 우국지사가 독립운동에 뜻을 모으고 있었는데 당시 연해주에서는 일찍이 재력을 확보한 최재형과 이범윤 등의 지원으로 의병 활동 중심의 무장독립투쟁에 안중근도 참여하고 있었다.

1908년 국내 진공 작전에서 뼈아픈 실패에 괴로워하던 안중근은 연해주 한인들을 상대로 독립정신을 고취하며 특단의 구국 투쟁 방안을 고심하다 1909년 3월 5일 블라디보스토크 부근 크라스키노에서 12인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했다. 이어 동지들이 목숨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하늘에 맹세하고 그 의지를 천명하는 ‘단지동맹(斷指同盟)’이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게 된다.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기념비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기념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린 이 단지동맹의 맹약문(盟約文)에는 생사를 함께 한다는 ‘사역동혈(死亦同穴) 생역동일(生亦同日)’이라 하여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와 매국노 이완용과 송병준을 3년 내에 처단하지 못하면 자살로 국민에게 속죄하겠다고 맹세했으니 이것이 단지동맹을 결사한 목적이었다.

이렇게 맹세한 단지동맹 동지 12인은 왼손 네 번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자른 선혈로 ‘대한독립(大韓獨立)’ 네 글자를 쓰고 맹약문도 혈서로 써 내려갔다. 이를 안중근은 정천동맹(正天同盟)으로 부르기도 했다. 후일 그 단지동맹의 결의가 놀라워 묻는 지인에게 “손가락 한 마디쯤 자르는 것이 어찌 나라를 잃는 고통에 비하겠는가!”라고 태연히 그 결기를 천명했다.

단지동맹 가담자는 안중근과 김기룡, 강기순, 정원주, 박봉석, 유치홍, 조순응, 황길병, 백남규, 김백춘, 김천화, 강계찬(이상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12명의 명단이 있으나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한다. 기록마다 명단이 상이할 뿐더러 안 의사가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며 취조를 받을 때마다 그들의 이름 글자를 바꾸거나 다르게 진술했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동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토를 처단한 하얼빈 의거에 함께한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는 단지동맹 동지가 아니었던 것이 특이하다.

생사를 함께 할 동지들을 규합하여 단지혈서로 서약문을 만들어 하늘에 맹세한 단지동맹! 목숨 바치기로 맹약하고 이를 앞장서 실천한 안중근!

그 거룩함이 세계인을 울렸으니 당시 청의 군벌 원세개(袁世凱)는

“몸은 한국에 있어도 이름을 만방에 떨치고(身在三韓 名萬國)
백년을 산 자가 없는데 죽어 천년을 가는구나!(生無百世 死千秋)”

라는 만사(輓詞)를 지어 안중근의 거사를 칭송했다.

이런 안 의사의 단지동맹을 기념하여 8년 전인 2011년 8월4일,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주관하여 단지동맹을 결사했던 블라디보스토크 부근 크라스키노 마을 강변에 단지동맹 기념비를 세웠다.

한편 1910년 2월 사형을 선고받은 아들 안중근에게 보낸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단호한 편지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는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추상같은 당부에서 안중근 의사의 생사를 초월한 독립정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것 같다.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흥망성쇠 역사에는 수많은 애국 영웅들의 희생과 용단으로 점철되어있다. 19세기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 속에서 안중근 의사와 같은 생사를 초월한 놀라운 애국 독립정신과 실천력, 그리고 ‘동양평화론’ 같은 사상의 위대함이 오늘 같은 동북아 정세의 전환기적 혼란함에서 더욱 우러러 보인다.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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