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홍어를 좋아하세요?(1)
[홍미희의 음악여행 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홍어를 좋아하세요?(1)
  • 홍미희 기자
  • 승인 2019.10.0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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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의 정서는 내밀하고 모호하고 주관적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즉각적으로 감동에 빠뜨리지 않는다.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야금야금 침범해 모두 이해시킨 뒤에 완전히 무너뜨린다.”(한소라·채문영 리사이틀 중에서)

9월27일 금요일 저녁 일신홀에서 한소라·채문영 듀오 리사이틀이 있었다. 연주가 있는 일신홀은 한남대교를 바로 건너에 위치한다. 6시 반 밖에 안 됐는데 주변은 어두워졌다. 강 오른쪽으로는 한강 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는 동호대교의 파란색 조명이 반짝거린다. 일신홀은 클래식연주 전문홀이다. 모두가 이런저런 이유로 실용음악이 대세인 요즘, 그냥 내 생각대로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아름다운 곳이다.

멀리서 인디언 핑크와 바이올렛의 중간쯤 되는 조명이 마름모로 온 건물을 감싸고 반짝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참 감각적이다. 일신홀은 그냥 거리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접근성이 참 좋다. 건물에 들어서면 여기가 연주홀인지 미술관인지 착각할 정도로 격조 높은 현대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것도 전시장에 따로 전시된 것이 아니라 1층 로비에 전시되어 있다.

일신홀 외관과 로비

천천히 1층을 둘러본다. 많은 작품 중 낯익은 작품이 있다. 백남준의 선덕여왕이다. 백남준의 혁신적이고 자유로운 마음이 일신홀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신홀은 특히 현대음악을 전파하고자 하는 사명감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 우선 연주자는 1900년대 이후의 작품을 꼭 목록에 넣어야 한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일신프리즘콘서트’를 열어 근현대음악을 테마로 연주하고 전석 무료초대 공연을 하고 있다. 잘 알려진 연주자나 교수들도 고전음악과 낭만음악만 레슨하면서 안일함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연주하는 한소라 바이올리니스트는 늘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주자다.

지난 연주에서는 프랑스 음악을 시리즈로 연주하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주회의 곡을 선정하는 일은 여러 가지로 고민에 빠지게 하는 일이다. 사실 청중의 환호와 지지를 위해서는 잘 알려진 곡을 선정하면 위험이 적고 인기를 얻기도 쉽지만, 베토벤이나 쇼팽도 처음에 신인이었고 현대음악이었던 것처럼 현대음악을 연주하고 같이 공부하는 것은 어렵지만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백남준 선덕여왕

연주홀은 누가 뭐래도 소리가 좋아야 한다. 스피커가 나타나기 전 연주홀, 즉 공연장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소리의 전달이었다. 특히 공연장이 클수록 소리의 전달을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그리스의 건축물들은 돌을 사용하여 소리의 울림이 좋도록 설계했다. 소리의 크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소리의 질이다. 좋은 소리를 좋게 들리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똑같이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소리의 전달과 울림을 위해서는 반사재를 많이 쓴다. 그러나 음파는 계속 직진하기 때문에 반사재를 많이 쓰면 소리는 크지만, 잔상이 남아 깨끗한 소리를 듣기는 어렵다. 그래서 흡음재와 반사재를 적절히 같이 사용하여 소리는 크게 전달하고 잔상은 적어지도록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소리는 앞뿐만 아니라 구석 자리에서도 모두가 똑같게 들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훌륭한 건축가의 몫이다.

같이 만나기로 한 일행을 로비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7시부터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7시 10분이 되어 홀로 들어갔다. 홀은 체리 빛 나무로, 좌석은 빨간색 가죽으로 마감되어 있고 의자 간격도 넓다. 보기에도 아름답고 한눈에도 좋은 소리가 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는 지인이 예매를 해주셨는데 안목과 배려를 알 수 있는 1층 9열 4번이다. 보통 피아노나 바이올린의 경우 앞에서 볼 때 연주자의 손과 악기를 잘 볼 수 있는 약간 왼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뮤지컬이나 오페라처럼 무대의 그림을 같이 봐야 하는 경우는 중앙이 좋겠다. 지인과 같이 온 친구분은 피아노를 전공했고 한예종 등 대학에서 강의했던 분이다. 대화하다 보니 미리 프로그램의 곡을 듣고 왔다고 한다. 괜히 미안해지면서 후회가 되기도 한다.

일신홀 내부

불이 꺼지고 처음 연주된 곡은 쇼스타코비치의 ‘로망스’였다. 아내 니나의 죽음을 겪고 그 빈자리를 바라보며 만든 ‘로망스’는 이름 그대로 아름답다. G현에서 낮게 시작되고 두 사람의 목소리처럼 계속 화음으로 연주되는 바이올린 소리는 부드럽고 아름답고 슬프다.

짧은 곡이 끝나고 사회자가 인사를 한다. 지난번 한소라씨와 연주를 같이했던 피아니스트다. 연주할 때는 굉장히 카리스마 있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웃으면서 인사하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연주회의 곡들이 어떤 맥락을 가지고 있다. 첫 곡은 로망스, 두 번째 곡은 브람스, 세 번째 곡은 클라라 슈만의 트리오, 마지막 곡은 브람스의 레인 소나타이기 때문이다. 가을과 로망스, 연인, 허무함 등 이 계절 밤에 딱 맞는 곡들이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는 이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중간중간 음악을 간단히 설명하고 연주회의 의도를 말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미리 공부하고 듣고 가는 열성적인 청중도 있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음악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연주자 입장에서는 관객의 몰입도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소라씨가 입고 있는 드레스도 금색과 초콜렛색이 섞여 가을빛이 완연하다. 무대 매너라고 하는 짧은 단어에는 참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실력은 당연하고 연주자로서의 매력, 의상, 요즘은 외모까지 연주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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