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한글날 단상
[대림칼럼] 한글날 단상
  • 문민(한중포커스신문 편집위원)
  • 승인 2019.10.08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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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한국에 온 미영이는 한국어 평가 진단 결과 한국에서 2~3개월 배운 학생들의 수준이었다. 받아쓰기는 곧잘 하지만 읽고 말하기는 아직 서툴렀다. 그래도 중국에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한국어를 배웠다는 것에 감사하고 1단계 뛰어넘어 2단계(6단계까지 있음)부터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에 임하는 자세가 대견스러웠다. 이 지면을 통해 미영이한테 한글을 잘 가르쳐 주신 조선족학교 선생님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9.2 동포정책’은 정치, 경제 등 여러모로 의미가 있겠지만 한국에서 5년째 한국어 교육을 하는 필자는 이번 정책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여러 나라 재외동포 중 중국동포들이 민족교육을 잘했다고 칭찬했다. 그 이유는 방문취업(H-2) 교육을 10여년 시행하면서 여러 나라에서 온 동포 중 중국동포의 한국어 수준이 월등한 것을 직접 봐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 교육만 좀 더 받으면 한국에서 잘 정착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문제는 기술 자격시험에서 낙오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사달이 났다. 특히 20대~30대의 불합격률이 40대~50대보다 높았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어찌 학교를 금방 졸업한 20대가 학교 문을 나선 지 20년이 지난 40대보다 합격률이 낮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현상은 중국 조선족교육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조선족학교는 지난 세기 90년 초를 정점으로 학교가 점점 줄기 시작했다. 현재의 40대인 80년대 생들까지만 해도 웬만하면 조선족학교를 다녔고 조선족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어를 기본으로 배웠다. 그러나 학교 폐교가 가속화 되고 한족학교로 입학하는 조선족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어 습득의 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엔 요즘 20대~30대의 한국어 능력은 윗세대에 비해 크게 떨어져 있다.

한국어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찾는 20대~30대들이 늘고 있다. 옛말에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고 했다. 가뜩이나 인구가 줄고 있는 한국 정부로서는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환영’ 치레는 잠깐. 바로 스쳐 지날 뿐이다. 3개월 비자를 받고 입국한 이들은 기한 내에 한국어 시험, 기술자격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아니면 귀국했다 재입국을 해야 한다.

‘9.2 동포정책’은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기본소양 수준을 갖출 것을 요구를 하고 있다. 한글은 기술자격처럼 단기간에 배우기 어렵다. 문제는 한글을 잘 모르면 기술도 배우기 어렵다. 중국에서 조선족학교를 다니지 않았거나 가정에서도 한글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훌쩍 성인이 되어 온 이들은 후회가 막심하다.

지난 8월에 입국한 김선녀씨는 한국어를 배운지 20일째. 어느 날 울면서 원장실을 찾아왔다. 한국어가 너무 어려워 배우기를 포기하고 싶단다. 선녀씨는 어려서부터 한족학교를 다녔다. 부모님도 한국어를 잘못해 가정에서도 주로 중국어를 사용했다. 친구들은 모두 한족이다. 그중 몇몇 친구들도 한국에 왔는데 불법으로도 잘 지내고 있단다. 자기도 한족친구처럼 살고 싶다고 한다. 세종대왕께서 들었으면 대노할 일이다.

이제 곧 한글날이다. 12년 전 한글날을 기념하여 동아일보의 인터뷰에 응한 적 있다. 그때 인터뷰에서 못다한 얘기들을 이제는 실천으로 옮겨본다. 바로 10월9일 한글날을 기념하여 한중 이중언어 말하기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김선녀처럼 한글 배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어를 즐겁게 배우는 이들도 많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중국어까지, 이중언어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 준비되어 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에 대한 이해와 중국어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한-중 교류의 역사 이야기, 중국 고향과 현재 사는 서울과의 비교 등등. 한국에 온지 길게는 5년, 짧게는 2개월, 한국에 온 이유는 다양하지만, 한결 같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엄마, 아빠보다 한국어 더 잘하는 학생이 있다. 세종대왕께서 살아 계신다면 재미있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하시며 치하하실 것이다.

이번 이중언어 말하기대회는 중국동포 기업인의 후원으로 개최하게 된다. 학생들이 한국어와 중국어 모두를 사용하여 세종대왕의 후예로서 오늘날 역사 한 페이지를 남기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믿어 마지않는다.

한국어는 물론 중국어도 잘하는 이들은 한중 가교의 중역으로 자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한국에 남아 한국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또 일부는 중국으로 귀환할 것이다. 중국으로 간 그들은 한동안 침체할던 한국어 교육을 다시 활성화할 것이며 이를 계기로 조선족학교 교육까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때 가면 더 이상 조선족학교를 다니지 못해 한국어도 모르는 조선족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교육학 석사 졸, 이주동포정책연구원(2010~2013),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강사 (2011~현재), 어울림주말학교 교장(2014~2017), 서울국제학원 원장(2014~현재)·한중포커스신문 편집위원.
저서: 귀화시험 한권으로 합격하기, KBS '거리의 만찬-대림동 블루스' 출연(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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