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사자성어] 애이불비(哀而不悲)
[미학의 사자성어] 애이불비(哀而不悲)
  • 하영균(상도록 작가)
  • 승인 2019.11.11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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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자성어는 낙이불류(樂而不流)와 대구로 만들어진 사자성어이다. 뜻은 슬퍼도 비통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즉 슬프되 절망적일 정도로 슬프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 표현을 우륵이 한 표현이 시작이라고 한다.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슬픔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논어의 팔일 편에 보면 시경의 첫 시인 관저(關雎)에 대해서 표현을 할 때 쓴 말에 나오는 표현과 연결돼 있다. 관저는 즐거워도 지나치지 않는 낙이불음과 슬플 때도 화기를 상하게 하지 않는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의 대표작이라고 공자는 표현했다. 

공자는 낙이불음과 애이불상을 예의 근본정신으로 파악하면서 이를 관저 시의 정신과 통한다고 한 것이다. 시경에 첫 번째 소개한 이유도 바로 이점이라 보인다. 실제 시경의 이 시구를 보면 공자가 그렇게 평가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관저(關雎)

關關雎鳩(관관저구) 在河之州(재하지주)
관관(꾸륵꾸륵) 우는 저구(물수리 새)는 물가(황하)에서 노네 

窈窕淑女(요조숙녀) 君子好逑(군자호구)
요조숙녀(아름다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라네

參差荇菜(참치행채) 左右流之(좌우류지) 
올망졸망 노랑어리연꽃 풀을 이리저리 헤치고요

窈窕淑女(요조숙녀) 寤寐求之(오매구지)
요조숙녀는 자나깨나 찾는다네

求之不得(구지부득) 寤寐思服(오매사복) 

구하려 해도 얻지못 해 자나깨나 생각하네 

悠哉悠哉(유재유재) 輾轉反側(전전반측)
끝없는 그리움에 이리저리 뒤척이네

參差荇菜(참치행채) 左右採之(좌우채지) 
올망졸망 노랑어리연꽃 풀을 이리저리 헤치며 뜯고

窈窕淑女(요조숙녀) 琴瑟友之(금슬우지)
요조숙녀는 금슬(거문고와 비파)을 벗으로 삼는다네 

參差荇菜(참치행채) 左右芼之(좌우모지) 
올망졸망 노랑어리연꽃 풀을 이리저리 고르고요

窈窕淑女(요조숙녀) 鐘鼓樂之(종고락지)
요조숙녀는 종과 북을 울리며 즐긴다네

아무리 시구를 바라 보아도 공자가 이해했다는 낙이불음 애이불상의 감정 표현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공자도 이 시구를 시경의 첫머리에 넣은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어 그렇다. 하지만 낙이불음 애이불상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 이에 대한 후대의 해석이 여러 가지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만큼 해석도 다양했다. 

우륵은 공자의 낙이불음 애이불상의 구절을 받아서 낙이불류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구절로 바꾼 것이다. 여기서 애이불비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애이불비(哀而不悲)는 해석처럼 슬프지만 비통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감성의 표현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우리의 문화가 바로 장례식장이다. 한국의 장례식은 특이하다. 외국인이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그런 문화다. 엄숙해야 하는 장례식장에 와서 고도리를 치고 논다. 술도 마시고 상주와도 놀기도 한다. 슬픔이 분명한 그런 곳에서 놀이가 함께 하는 것이다. 슬픔을 넘어 그다음의 경지를 본 것이다. 어차피 삶이란 죽음을 함께 하는 것이다. 인생은 어쩌면 언제나 죽음을 함께 한다. 손 없는 날에 나이 든 분들은 자신의 수의를 짓는다.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바로 애이불비(哀而不悲)의 모습이다. 

재미있는 이런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사상이 가장 잘 표현되었다고 하는 시가 바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라고 한다. 이 시는 떠나보내는 임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 그러나 그 표현을 절제하며 참아 내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 준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바로 이 구절이 애이불비(哀而不悲) 절정을 표현하는 시구이다. 즉 죽을 만큼 떠나보내는 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지만 그래도 그 감정을 드러내 놓고 눈물 흘리며 붙잡거나 울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려 속요 가시리나 황진이의 시에서도 이런 감정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황진이 시중이 나타난 구절은 이것이다. 

“잔(盞)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죽은 자의 무덤 앞에 죽은 것을 슬퍼 하는 것이 아니라 술 한잔 서로 못 받아 마시는 것을 슬퍼한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민요에서도 자주 나타나는데 진도아리랑의 첫소리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청천 하늘에 잔 별도 많고, 우리 내 가슴속엔 수심도 많다.” 이 말은 별만큼 수심이 많아도 표현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그저 가슴에 담아 둔다는 의미이다. 슬퍼도 슬퍼하지 않고 기뻐도 기뻐하지 않고 가슴에 담아 두는 생활 철학이 바로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사상이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한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한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바로 애이불비(哀而不悲)이다. 즉 속에 담기는 하지만 밖으로 뿜어내는 것이 아니다. 애(哀)의 한자 뜻은 마음에 슬픔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비(悲)의 한자 뜻은 마음에 담은 슬픔을 밖으로 표한다는 뜻이다. 즉 같은 슬픔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차이가 있다. 한국인이 한이 많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슬픔을 표현하지 않고 가슴에 담아 두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 많은 민족이라 그럴 것이다. 그 한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한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사상으로 인해서 그저 슬픔을 담아 두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본다. 공자로부터 시작하여 우륵의 가야금, 고려가요 가시리, 황진이의 시조, 그리고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감정이 바로 애이불비(哀而不悲)이다. 즉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시작부터 관통하던 슬픔에 대한 사상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슬픔은 예술적 표현으로 만든 것이 민요나 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대 이런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분들이 바로 세월호 부모들이 아닐까 생각하면 가슴이 애(哀)린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 졸업,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마케팅 전공 수료, 가치투자 전문 사이트인 아이투자 산업 분석 칼럼 연재(돈 버는 업종분석), 동서대학교 전 겸임교수(신발공학과 신제품 마케팅 전략 담당), 영산대학교 전 겸임교수(신제품 연구소 전담 교수), 부산 정책과제-글로벌 신발 브랜드 M&A 조사 보고서 작성 책임연구원, 2017년 상도록 출판, 2018년 대화 독법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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