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삭과(削科) 파동
[선비촌만필] 삭과(削科) 파동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19.11.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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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광해3) 문과(文科) 전시(殿試)에서 광해군은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이 무엇인가?”라는 책문(策問, 임금이 출제하는 논술 문제)을 출제했다.

이에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라는 대책(對策, 논술 문제에 대한 답안)을 쓴 36세의 임숙영(任叔英)은 ‘왕 자신의 실책과 나라의 허물에 대하여는 묻지 않고 왕비와 후궁의 정사(政事) 개입을 묵인하며 뇌물과 코드인사가 난무하고 임금을 비판하는 언로(言路)를 막는 것이야말로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직언한 대책문(對策文)을 제출한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대답한다’는 결기로 써낸 대책문엔 ‘전하께서는 자기 수양에 정진하시되 자만을 경계하라’는 고언(苦言)도 덧붙였다.

문과 합격자의 등수를 결정하는 전시에서 임숙영이 제출한 대책문에 시관(試官) 심희수는 그를 병(丙)과로 급제시켰다. 그러나 대책문을 본 광해는 “그 답이 책문에 대답한 것이 아니고 주제를 벗어났으며 방자하고 거리낌이 없이 패악한 말을 했다” “요즘 인심이 극악하여 오직 임금을 능멸하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있으니 너무도 무뢰하다”며 진노(震怒)했다.

이런 광해군의 진노는 임숙영을 문과 합격자(33명)명단에서 삭제하라고 명(命)하는 이른바 ‘삭과(削科) 파동’으로 발전했다. 조선 과거사(科擧史)에 시험 답안지가 일으킨 필화(筆禍)사건은 있었어도 삭과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광해의 진노가 이러함에도 언론 3사와 재야 선비들의 간쟁(諫爭)은 계속됐고 급기야 영의정 이덕형 좌의정 이항복 등 대신들도 삭과 처분이 부당하다며 임숙영을 엄호하고 나섰다.

책문에서 응시자들의 철학과 소신을 기탄없이 말하라고 했으니 그 말이 옳으면 수용하되 그렇지 않다고 벌 줄 수는 없다며 대책문을 빌미로 삭과를 명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결국 광해는 삭과 파동 수개월 만에 삭과의 명을 철회하여 임숙영은 벼슬길에 나가게 됐다. 문장에 뛰어나며 강직하고 소신에 찬 임숙영은 벼슬길에 나가서도 광해의 실정을 비판하다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는 곧은 선비의 길을 갔다고 기록돼있다.

책문과 대책을 통해서 본 것처럼 조선의 임금과 신하 간에 소통시스템은 탁월했다. 철학과 소신에 따라 임금에게도 직언(直言), 직필(直筆)하는 언로, 이를 수용하거나 용서하는 왕도정치, 군신유의(君臣有義를 비롯한 삼강오륜(三綱五倫) 질서의 유교 문화, 여기에서 비롯한 선비정신이 문약(文弱)한 조선을 500년이나 지탱시킨 힘이었던 것이다.

400년 전 왕조시대에도 국정의 난맥상을 예상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임금에게 직언하는 기개 높은 선비를 볼 수 있었건만 국민주권 시대인 오늘날 권력자에게 저런 대책을 냈다는 책임 있는 공직자도, 이를 수용했다는 지도자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삭과 파동의 트라우마 때문이었을까? 삭과 파동 5년 뒤인 1616년 문과 전시 책문에서 광해군은 “섣달 그믐밤, 이날이 되면 서글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논하라”라고 국정 현안이라고 할 수 없는 지극히 감상적(sentimental)이고도 엽기적인 주제를 출제했다.

이런 책문을 받아본 문과 응시자들의 표정이 어떠했을까? 이에 대한 대책에서 이명한(李明漢)은 “뜬구름 같은 인생이 어찌 이리도 쉽게 늙는단 말이냐”고 감성주제(感性主題)에 맞짱을 하면서 “인생이란 부싯돌의 불처럼 짧고 인생도 끝이 있어 늙으면 젊음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며 인생의 허무함을 시(詩)로 토로하는 대책문을 내놓았다.

가히 스승이 제자에게 타이르는 듯한 21살의 이명한에겐 어울리지 않는 답변도 엽기적이다. 또 “사람이 세월 감을 안타까워하는 것이지 세월이 사람 가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는다”고 대책문을 써 내려갔다. 과연 당대의 문장가 월사 이정구의 아들다웠다. 재기발랄한 이명한의 대책문을 보고 광해군은 어떤 등급을 매겼을까?

광해는 이 대책문에 甲과가 아닌 乙과 4등의 등수를 주었다.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감성적 책문에 철학적, 시적 담론으로 촌철살인 한 이명한의 대책문이 을과에 불과했다면 갑과 1등으로 장원급제(壯元及第)한 대책문은 어떤 것일지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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