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숲해설가 초등친구가 준 선물
[이계송칼럼] 숲해설가 초등친구가 준 선물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19.11.25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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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보석 같은 초등친구들이 많다. 내가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의 만남은 추억과 재회, 특별하다. 순수하다. 행복하다.

지난가을 고향을 찾아 친구 H를 만났다. H는 평생 고향과 함께 살았다. 요즈음 칠순 나이에 숲해설가 자격증을 획득, 멋진 말년을 보내고 있다. 어린이들과 놀며 자연학습을 도와준단다. 그에게 정말 딱 어울리는 일이다. H는 표정도 어린애처럼 맑다. 할아버지 숲해설가와 어린이들의 만남은 찰떡궁합이다. 그는 나무, 풀 그리고 꽃들을 아이들에게 친구로 맺어주며 더 없이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H가 최근 사귄 자기의 ‘나무 친구’ 얘기를 해주었다. 그 친구는 광주 5.18 공원에 서 있는 자귀나무다. 그가 이 나무를 친구로 삼은 이유가 재미있다. “초여름의 숲속에서 짧은 분홍실을 부챗살처럼 펼쳐 피워 주위를 압도하는 조그마한 꽃나무가 자귀나무다.” “자귀나무는 예로부터 금실 좋은 신혼부부를 상징한다.” “재미있는 것은 50~80개나 되는 작은 잎이 짝수로 이루어져 있어서 서로 상대를 찾지 못한 홀아비 잎은 남지 않는다.” “밤이면 잎이 오므라들어 서로를 포옹한다고 하여 합환수(合歡樹)로 불리며, 정원에 심어놓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H는 이 자귀나무를 친구로 삼은 후부터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껴안아 준다고 한다. 하루는 아내에게 그 자귀나무 친구를 보여 주고 “여보, 내가 죽더라도 저 자귀나무를 나로 생각하고 많이 사랑해 주시게”라고 당부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아들딸들과 손자 손녀들에게도 그랬더니, 하루는 손녀가 “할아버지 오늘 할아버지 친구 껴안아 주고 왔다”면서 자랑해, 너무도 기뻤단다.

H 얘기를 듣고, 나도 샘이 났다. 아내가 좋아하는 산책 숲길, 내가 좋아하는 키 큰 푸라타나스 한 그루를 친구로 삼기로 했다. 내가 죽으면 그 밑에 날 수목장 해주어도 좋을 거다. 사람도 자연도 결국은 모두 흙이 되어 하나로 만나는 것, 그 흙이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고 꽃을 피우는 자연의 놀라운 신비가 거기에 있다. 푸라타나스와 나는 이제 하나가 된 셈이다.

운명이랄까. 난 김현승 시인의 “푸라타나스”시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싯귀절 모두를 고스란히 외우고 있어, 자주 흥얼거리기도 한다.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이 시를 소개하시면서 암송하셨던 모습에 너무도 반해 나도 따라서 했었던 것이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푸라타나스 /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푸라타나스, / 너는 내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느린다. / 먼 길에 올 제, 홀로되어 외로울 제, / 푸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함께 걸었다. / 이제 너의 뿌리 깊이 /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 푸라타나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 푸라타나스,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 있느냐? /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친구 H, 어린애처럼 해맑은 웃음을 띠며, 조용조용 속삭이듯 얘기하는 그의 모습도 닮고 싶다. 푸라타나스를 나의 친구로 삼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덕이다.

필자소개
이계송/재미수필가, 전 세인트루이스한인회장
광주일고, 고려대정치외교학과졸업
저서: <꽃씨 뿌리는 마음으로>(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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