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의 사자성어] 불이법문(不二法門)
[미학의 사자성어] 불이법문(不二法門)
  • 하영균(상도록 작가)
  • 승인 2019.11.3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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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법문(不二法門)

불교 미학의 핵심적인 사자성어다. 깨달음에 길이 두 개가 아니라고 해석된다. 불이법문 즉 분열이 아니라 통일이 바로 불교 미학의 핵심이다. 미와 추는 구별되어 있지 않고 색도 공도 구별되어 있지 않다. 미의 완성은 바로 색과 공이 함께하고 미와 추가 한 몸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낼 때 그 불교의 미학은 완성된다. 바로 자연이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추함도 발견하고 미도 발견한다. 장미꽃이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호박꽃이 추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의 눈으로 보면 풍부한 호박덩이를 제공하는 호박꽃이 가시만 보여 주는 장미꽃보다는 훨씬 아름다울 것이다. 불이법문의 핵심 가치는 바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미학의 기본이 관점이 바뀌기에 어느 하나를 완벽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즉 미가 추가될 수도 있고 추가 미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색이 공이 되기도 하도 공이 색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바로 불교의 도가 통일되어 있을 때 즉 온전한 틀로 갖추어져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지듯이 미의 관점도 그러하다. 이것을 좀 더 확장하면 세계와 나 자신이 하나라는 관점 즉 범아합일(梵我合一)의 관점이 그 바탕에 있는 것이다. 자연이 인간을 버리지 않고 인간도 자연을 버리지 않고 사는 것이 바로 불교의 도리이다.

불이법문은 불교의 사상에서 보면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경계가 없다는 것은 바로 경계는 진선미도 없고 미추도 없고 인간과 우주도 구별이 없고 나와 나의 구별도 없다. 내용과 형식도 없고 음양도 없다. 미에서 시작하여 추가될 수도 있고 추로 시작하여 미가 되기도 한다. 자신으로 시작하여 부처에 이르기도 하고 부처로 시작하여 자신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밖에 있으나 안에 있기도 하고 안에 있지만, 밖을 보기도 한다. 직관으로 사물을 볼 수도 있지만, 원리를 깨달아 사물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불교의 깨달음이다. 현상을 통해 본질을 보는 눈, 본질을 깨달아 현상을 볼 수 있는 능력도 다 해당한다. 마음이 생겨 현상을 보기도 하고 현상을 통해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사물이나 인간 우주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색일여(心色一如), 공색일체(空色一切)로 보는 것이다. 즉 물심일체(物心一切)이다.

유교의 미학이 경계를 중시하던 미학이었지만 불교의 미학은 경계를 허무는 미학이다. 유고가 이(理)와 기(氣)의 논쟁을 통해 미학적 관점을 세웠다면 불교의 미학은 그 경계를 허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색과 공의 시작과 끝을 허물어서 일체로 만들어 내려고 한 것이다. 유미경에 불이법문 품에 보면 유마거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마거사 수많은 보살에게 물었다. “불이법문이 무엇인지 저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해 주십시오” 그러자 보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자신들만의 깨달음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이 이야기했다. “일체법(一切法)에 있어서 그것을 말하는 것도 없고 해설하는 것도 없으며 좋고 나쁘다는 것도 없고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없고 문답도 없는 것이 불이 법문에 드는 것이다.” 그리고는 유마거사에게 문수보살이 물었다. “무엇이 보살이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그러자 유마거사는 잠자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를 보고 문수보살이 “이것이야말로 불이 법문에 드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유마거사의 유명한 불이법문의 침묵이다. 말을 하는 순간 이미 그에 따른 해설이 붙을 것이고 분석이 되며 결국은 분리가 되는 것이다. 사물의 실체 파악을 분리된 상태로 인식하려는 순간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즉 미학에서도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려는 순간 그 완전한 미학적 체계는 해체되는 것이다. 불이법문은 바로 이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불교미학의 핵심 주제는 바로 깨달음이다. 미를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전제로부터 불교 미학은 출발한다. 불이법문의 깨달음으로 아름다움을 인식하게 되면 어떤 분석적 방법으로도 얻을 수 없는 체험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바로 불이법문의 미학 체험이며 그것이 깨달은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불교 의식에서 등장하는 모든 미술품이나 예술은 그 근본 목적이 바로 깨달음에 있는 것이다. 깨달음을 일깨우거나 깨달음을 체계적으로 보여 주거나 아니면 그 깨달음의 구체적 체험이 가능하게 하여 주는 것으로 예술이 등장한다. 모든 불교 예술의 상징체계는 바로 하나로 귀결된다. 일체유심(一切唯心)이다. 마음이다. 모든 자연이나 사물이나 인간이나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은 하나이다. 아름다움도 하나다. 그게 본성이다. 그것이 불교에서 말해 주는 미적 개념의 핵심이다. 이 본성을 느끼면 된다. 그 속에는 어떤 욕망도 물욕도 없다. 있는 그대로이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농생물학과 졸업,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마케팅 전공 수료, 가치투자 전문 사이트인 아이투자 산업 분석 칼럼 연재(돈 버는 업종분석), 동서대학교 전 겸임교수(신발공학과 신제품 마케팅 전략 담당), 영산대학교 전 겸임교수(신제품 연구소 전담 교수), 부산 정책과제-글로벌 신발 브랜드 M&A 조사 보고서 작성 책임연구원, 2017년 상도록 출판, 2018년 대화 독법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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