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버킷리스트
[이영승의 붓을 따라] 버킷리스트
  • 이영승(영가경전연구회 회원)
  • 승인 2019.12.09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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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골프를 무척 좋아한다. 나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를 말하라고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골프를 원 없이 한번 쳐보는 것’이었다. 골프는 정말 묘할 정도로 재미있는 운동이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부킹도 쉽지를 않아 라운딩이 끝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젊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퇴직 후 우리부부는 매년 겨울이면 동남아로 골프투어를 떠난다. 7년째 계속되는 연중행사다. 국내에서 칠 수 없는 계절이며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비용에 너무 치중 비수기인 3월초에 주로 갔다. 금년에는 고희(古稀)를 명분으로 다소 비싸지만 좀 덜 더운 계절을 택했다. 기간도 11월25일부터 8박 10일간 다소 여유 있게 잡았다. 방콕에서 북쪽으로 2백여km에 위치한 롭부리 나라힐 골프장이었다. 잔디 상태가 좋았으며 비용에 비해 숙소와 음식도 전혀 불만이 없었다. 이번에 겪고 나니 과거의 해외투어는 골프를 치러 간 것이 아니라 고생하러 간 것만 같았다.

글의 소재로 늙는 얘기와 아픈 얘기 그리고 손주자랑은 가급적 피하라는 말이 있다. 거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골프얘기가 아닐까 싶다. 자랑으로 비치기 쉬우며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골프관련 글은 한 편도 쓴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즐거웠던 추억을 도저히 그냥 묻어둘 수가 없다.

이번 투어는 과년과 특이했다. 단체로 가지 않고 아내와 단 둘이 갔으며, 현지에서도 타인과 조를 짜지 않았다. 그리고 8일간 전 일정을 줄기차게 36홀씩 돌았다. 과거에는 비용이 부담되어 주로 27홀을 돌면서 어쩌다 한번 36홀을 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27홀이나 36홀의 가격이 거의 같아 욕심을 부렸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진행이 지체되지 않으니 그야말로 황제골프를 치는 기분이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인 새벽 5시 반에 모닝콜을 했다. 6시에 아침 먹고 6시 반에 스타트하면 점심시간인 11시경에 27홀이 끝났다. 식사 후 숙소로 돌아와 에어컨을 켠 후 샤워를 하고나면 날아가는 기분이다.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는 등 마음껏 휴식을 취하다 햇볕이 약해지는 3시 반부터 남은 9홀을 마치면 저녁식사 시간인 5시경이 된다. 식사 후는 한가한 자유시간이다. 즐비한 코코넛 나무 사이로 푸른 잔디밭이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고, 곳곳에 작은 호수들이 운치를 더한다. 아내와 둘이 석양을 향해 그 대자연 속을 거닐며 이국의 정취를 만끽했다. 숙소로 돌아오면 YTN이 국내 소식을 전해준다. 시간이 많아 갖고 간 책 2권을 정독하여 다 읽었다.

아내는 잘하는 운동이 별로 없는데 골프는 좋아할 뿐만 아니라 소질도 있다. 비거리는 다소 짧지만 어프로치와 퍼팅이 정교해 60대 중반에 보기플레이를 넘나드니 말이다. 젊은 시절에는 부부가 시합하면 내가 늘 몇 타씩 이겼으나 비거리가 현격히 줄어들기 시작한 사~오년 전부터는 내가 열세를 면치 못한다. 출국하면서 아내가 내기를 제의했다. 한 타에 천 원씩 하되 룰을 칼같이 지키며, 절대 봐주거나 우기지 않기로 했다. 첫날부터 팽팽한 긴장이 연속되었다. 골프의 매력은 이러한 치열함에 있음을 새삼 실감했다.

라운딩을 마치고 스코어카드를 집계하니 총 16라운드에 내가 38타를 이겼다. 버디 수도 12대 5로 압승했다. 그동안 받아온 수모를 이번에 말끔히 씻은 셈이다. 나만 전지훈련의 효과를 본 것 같아 조금은 미안했다. 정산을 하려는 아내에게 그동안 내가 부도냈던 것을 다 면제 하는 조건이라며 사양했다. 매일저녁 얼굴에 팩을 붙여준 고마움의 답례이기도 했다.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캐디를 잘 만난 것도 즐거운 라운딩에 한몫했다. 의무적으로 1인 캐디를 써야하는데 우리는 남녀 두 사람을 배정받았다. 여자캐디는 노련하고 상냥했으며 남자는 파이팅이 넘쳤다. 언어소통도 문제가 없었다. 첫 버디를 했을 때 20바트(8백원)지폐 1장씩을 줬더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리가 더 기뻤다. 만원을 받고도 표현에 인색한 국내 캐디들과 비교되었다. 불교나라인 그들은 돈을 받을 때 마다 꼭 고개 숙여 합장을 했다. 우리도 따라 합장했다. 너무도 친절해 버디를 할 때마다 계속 팁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일 쓴 캐디를 다음날 계속 쓸 것인지 선택하는데 우리는 전 일정 같은 캐디를 지정했다. 라운딩이 끝난 후 다음에 오면 찾겠다고 약속하고 넷이 사진을 찍었다. 오래도록 손을 흔들며 아쉬움을 달랬다.

처음 골프를 배운 것은 24년 전 1996년이다. 부장승격 후 1년간 서울대 경영자과정을 수료하고, 지방사업소에 발령받고 나서다. 과장 때부터 일찍 배우는 사람도 있었으나 나는 과장시절 8년을 감사실에 근무하다보니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두 아이 모두 대학에 보낸 후 나보다 4년 뒤 시작했다. 아내가 처음 라운딩을 다녀와 진심으로“고마워요”하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마도 처음 들어본 고맙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부부싸움을 남들 못지않게 했는데 골프로 인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지금까지 살면서 잘한 일 중 하나가 골프를 배운 것이다. 아내와 함께하여 더욱 그렇다. 같이 골프를 치고 나면 할 얘기가 왜 그리도 많은지, 상대의 웬만한 과오는 모두 용서가 되었다. TV를 볼 때도 골프만 나오면 우리는 채널싸움할 일이 없다. 간식 배낭을 둘러메고 둘이서 프로대회 구경을 다니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아내와 함께 걷는 인생후반 하산 길, 푸른 잔디와 흰 공이 있어 외롭지 않다.

골프를 치던 초창기 18홀이 왜 그리도 빨리 끝나던지, 다 돌고 나면 아쉽기가 그지없었다. 골프 창시자가 한 라운딩을 20홀이나 25홀로 하지 않고 18홀로 정한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골프를 원 없이 한번 쳐보는 것이꿈이었는데 이번에 정말 원 없이 쳐보았다. 24년 만에 드디어 버킷리스트 하나를 해결하였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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