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호칼럼] 옴니암니, 나의 정치학
[전성호칼럼] 옴니암니, 나의 정치학
  • 전성호(시인, 미얀마 한인회장)
  • 승인 2019.12.23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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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별로 듣고 싶지 않는데도 많이 듣게 되는 소리가 정치 이야기, 그것도 서로 싸우는 이야기들이다. 대체 정치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일까. 끊임없이 서로 옳다고 목청을 높이는 여야의 싸움은 정말 끝이 없이 계속된다.

도대체 끝없이 계속될 것만 같은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어릴 때 어머니가 자주 쓰시던 말이 떠오른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옴니암니 지랄하고 자빠졌네”란 통렬한 한 문장이 그것이다. 지적은 오일장에 다녀오고 난 뒤 동네 아낙네들 끼리 말다툼이 벌어질 때가 주로 터져 나오곤 했다.

갈치와 소금, 시금치를 사거나 콩나물이나 녹두 콩 따위를 사 가지고 돌아온 뒤 동네 아낙네들 끼리 서로 잘 샀네 잘못 샀네, 그 물건이 좋았네 그 옆에 물건이 더 좋았네 정말 끝 간데 없이 이어지는 말싸움은 어머니의 “옴니암니!”가 터져 나와야 끝이 나곤 했다. 물론 이것도 작은 시골 마을의 일상적 정치라면 정치일 것이다. 정치란 생각이 다른 둘 이상의 주체가 총칼이나 폭력 대신 말로 싸우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전쟁이란 최후의 정치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선 “숨만 쉬면 정치”라는 푸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정치를 혐오하고 싫어 한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단 한 발자국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례는 많고도 많다. 잘 아는 정당의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면 건널목의 위치가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100m 안 되는 도로변에 두 개의 슈퍼가 있었는데 건널목의 위치에 따라 슈퍼의 매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런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의 위력은 추상적이고 거대한 정책이다 보니 보통사람들이 일상의 작은 현실 속에서 더 크고 결정적인 것이 될 때가 많다.

그러니 정치가들을 욕하다가도 내 삼촌이나 친한 선배나 지인이 금배지라도 달게 되면 벌써 말투가 달라진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칠 경우 우리는 분개해 마지 않던 <공공의 적>이 순식간에 우리 의원님, 우리 판사님으로 변해 버린다. 이런 이중적인 우리의 의식과 태도 때문에 사실 공론장에서의 시시비비는 늘 명확한 결론이 나기보다 유야 무야 꼬리가 사라져 버릴 때가 많다.

외국에 나와 오래 살다 보면 고국에서 들려오는 이런 정쟁의 모습이 때론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더 선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지면에서 하고 싶은 진정한 이야기는 정치와 정쟁이 마치 같은 아이를 놓고 앞니가 어떻고 어금니가 어떻다는 “옴니암니” 현상과 똑같다고 조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싸움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양보할 수 없는 어떤 마지노선이 있으니 그리 싸우는 것일 것이며 그 싸움이 자신들의 정치적 명분과 존재 이유와 관련된 것일 경우 더욱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에서의 이런 이전투구는 끝내 해결되기 어려운 일일까.

서유럽에서 동유럽 러시아에서 폴란드, 그리고 미얀마 까지 반평생을 넘게 세계 의류 비즈니스로 살다 미얀마에 정착한 지 20년이 된 나로서는 칠순이 가까이 오자 고국의 모든 것이 소중하고 그리워 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릴 적 양산 서창에 살던 때 친구들과 어울려 “옴니암니” 다투던 모습 까지 모두 그리워 혼자 미소를 지을 때가 많다. 그냥 그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치 나와 한 몸이 기억 속에서 함께 늙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 기억과 몸은 본래 한 몸 안에서의 일이구나! 소중한 우리의 고국에서 벌어지는 정쟁들 까지 모두 내 기억 내 몸의 일이구나. 너나없이 소중한 것들과의 화해는 어쩜 이 소중한 그리움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닐까. 당신이 내일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어떤 싸움인들 그립지 않은 것이 있을까.

전성호(시인, 미얀마 한인회장)
전성호(시인, 미얀마 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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