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열의 동북아談說-49] 2020년 국제정세와 지정학 부활
[유주열의 동북아談說-49] 2020년 국제정세와 지정학 부활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3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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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컬럼비아 대학에는 헨리 키신저와 함께 국제관계에서 쌍벽을 이루는 교수가 있었다. 폴란드 태생으로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폴란드가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됨에 따라 돌아갈 곳을 잃게 되어, 캐나다와 미국에서 공부하고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가 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1928-2017) 교수다.

브레진스키 교수는 국제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저서 ‘거대한 체스판(Grand Chessboard)'을 출간했다. 브레진스키 교수는 이 저서를 통해 미국은 소련의 붕괴로 냉전의 승리자가 됐지만 이에 만족하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는 지정학적 세계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등 4강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운명은 브레진스키 교수가 말하는 ‘거대한 체스판’ 위에 놓여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 체스판(지정학 구조)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재계의 총수들이 모이면 “이런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이다. 앞으로 30년은 갈 것이다”라고 걱정한다고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는 안보와 함께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지정학적 위기는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 사이에 위치한 한국의 정치적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파생된 위기이다. 홍콩사태의 장기화와 함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세계경제는 요동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은 역사문제의 갈등에서 비롯된 통상 분쟁은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부추기고 있다. 이번 12월24일 중국 청두(成都)에서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은 두 정상이 모처럼 마주 앉아 대화의 중요성을 확인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지난 12월12일 영국의 조기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의 보수당 압승은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추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여 유럽 국가를 단일 경제블록으로 묶으려는 유럽인의 꿈을 흔들고 있다. 미국의 시리아 철군과 함께 터키와 러시아가 공백을 메우려고 하는 등 중동 질서의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사우디와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중동 분쟁이 격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제조업 타격은 불가피하다.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래 미국의 다자무역체제 기피로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서서히 와해되면서 세계무역질서가 다자에서 국가 대 국가의 양자로 변하고 있는 것도 지정학적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정치 안보 측면에서 보면 북한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6.25 한국전쟁에서 실패한 후 호시탐탐 적화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북한은 1960년대부터 세계여론을 교묘하게 피해 가면서 숙원의 핵 개발을 추진해 왔다. 김일성 이래 3대 세습을 통해 새로운 독재자 김정은의 젊음의 광기로 핵과 미사일의 기술을 예상보다 빨리 고도화시켰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비핵화라는 가능하지도 않은 주장을 흘려 2년의 시간을 얻어 핵과 미사일을 완성시켰다. 2019년 한 해에만 13번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등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 시키고 모든 단계의 운반 수단(미사일)을 보유하여 동북아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안보에 크게 위협을 주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10월1일 건국 70주년 행사에서 보여 주었듯이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면서 어둠에서 실력을 기름) 정책을 버리고 ‘일대일로’와 ‘중국몽’의 실현에 매진하여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향해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혔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패권경쟁으로 발전하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에 적극적인 행위자로 끼어들고 있다. 푸틴은 과거 닉슨 대통령이 ‘차이나 카드’로 소련과 중국을 분리시켜(decoupling) 어부지리를 얻었던 정책을 역으로 따라하고 있다. 푸틴은 미중갈등을 이용, 중국을 미국에서 분리해내는 ‘역(逆) 닉슨 (Reverse Nixon)’ 정책을 쓰고 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최장수 총리로서의 자신감을 가지고 정치적 유산과 집권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헌법 개정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5월1일 일본은 나루히토 일왕 즉위로 아름다운 평화라는 의미의 레이와(令和)시대를 열었으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는 불화(不和)를 이어 왔다.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 우리는 주변국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흔들리는 체스판 위에 놓여 있음에도 우리의 입장을 당당히 밝히고 주변국을 설득하여 적절한 균형을 잡을 경우에만이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길로 보인다.

2020년에는 지정학의 부활이 본격화될 것 같다.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지속하면서 미중간의 새로운 냉전시대를 열어 과거의 지정학을 소환하고 있다. 부활하는 지정학은 19세기의 지리적 인접성뿐만이 아니라 5G 등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가상(virtual)의 국경도 고려해야 하는 이른바 ‘하이브리드(복합) 지정학’이다.

미국이 중국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WTO 가입을 돕는 등 중국의 기술력 향상을 도왔으나 중국은 미국이 원하는 국제질서 편입에는 주저했다. 미국이 중국의 지연술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제 미국 단독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은 인도 일본 호주 등 ‘인도 태평양 국가연합’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 미소 냉전 하에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일본과 함께 미국을 지지했던 한국의 선택이 오늘날의 성공을 가져온 것을 생각하면 새로운 냉전 하에서도 다시 한번 선택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지정학이 다시 부활하고 있는 2020년은 냉정하면서도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한국 외교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필자소개
한중투자교역협회(KOITAC) 자문대사, 한일협력위원회(KJCC) 사무총장. 전 한국외교협회(KCFR) 이사, 전 한국무역협회(KITA) 자문위원, 전 주나고야총영사, 전 주베이징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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