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촌만필] 아석고택(我石古宅)에서의 보름달!
[선비촌만필] 아석고택(我石古宅)에서의 보름달!
  •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 승인 2020.01.1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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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정

5년 전, 장마도 끝난 7월, 창녕 화왕산에서 떠오른 보름달이 아석고택 구연정(龜蓮亭) 누(樓)마루 앞 반도지 연못에 은은히 내려앉았다. 고택을 비추는 보름 달빛에 취한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듯했다.

국내의 유명 한옥, 고택, 종택을 두루 섭렵했다고 자부해온 나도 보름달 아래 아석고택이 발산하는 한옥의 멋과 정원의 운치에는 밤잠을 설치고 말았다. 나의 전통 한옥, 고택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애착은 50여 년 동안 박제화 된 도시 아파트 주거환경에서 지친 영혼이 소년기 전통마을 고택 시절에 새겨진 DNA가 은퇴기를 맞아 다시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시화와 편의성에 밀려 주거 가치를 상실하고 있는 한옥! 유지, 관리비용이 터무니없다는 목조건축 한계! 기존 유명 고택조차도 폐가로 버려지고 있는 세태에 무엇으로 아석고택의 명성은 높아만 가고 있을까?

강릉 선교장이나 구례 운조루 같은 명당으로 소문난 고택은 물론 근대 한옥으로 호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보은 우당고택(선병국 한옥), 옛 권세가들이 살았던 고대광실(高臺廣室) 한옥도 답사했지만 아석고택은 나에겐 아주 특별한 체험이었다. 집은 주인의 삶의 모습과 닮아간다고들 한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주인의 영혼이 깃든다고 하는데 과연 아석고택의 재(齋), 당(堂), 헌(軒) 하나하나엔 스토리가 살아 있다.

이제 그 이야기들을 찾아가 보자!

아석고택의 현 주인 成 회장의 5대조인 아석 성규호 선생이 1855년 창녕성씨 시조 묘소 주변인 대지면 석리에 입향했다고 한다. 아석헌(我石軒) 건립을 시작으로 그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담을 경계로 석운재(石雲齋), 구연정(龜蓮亭), 경근당(敬勤堂)을 그 시대 건축양식에 따라 지었는데 1930년대에 근대 한옥 일신당(日新堂) 신축을 끝으로 그 자손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30여채의 디럭스한 한옥군이 형성됐다고 한다. 시대별 한옥 양식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기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355호로도 지정됐다

70여 년 전 세상의 변화를 예민하게 읽은 아석고택의 선각자는 이 땅에 최초로 양파를 재배, 보급하여 창녕이 양파 시배지(始培地)가 되면서 창녕일대를 부농으로 키웠으며 1920년대 신학문을 창달하는 육영사업으로 지역 인재양성에도 기여한 전설적 인물이 성회장의 조부이시니 아석고택 사람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4대째 이어지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석고택의 웅장한 솟을대문 내, 외 3문을 들어가니 소나무, 향나무, 백일홍, 대나무 등 전통 한옥 정원수에 석등, 연못, 바위 등이 어우러져 고급 한옥별장을 방불케 했다. 반도지(半島池) 연못 뒤의 구연정은 어느 고택 구재(舊材)를 써서 중건했다고 하는데 그 우아한 품격이 단연 압권이었다.

구연정 누마루 계자(鷄子) 난간에서 바라본 반도지 연못과 서쪽에 새로 지었다는 별당의 호화로운 건축 장식에도 주인의 안목과 능력을 유감없이 구사해 놓았다. 자연을 집안으로 받아들인 자연 친화적 설계가 돋보이는 구연정 누마루는 고급 한옥의 격을 높여 주는데 주인의 휴식은 물론 접빈객 공간으로 활용된다.

누마루 계자 난간에 앉아 정원등과 무드등이 안내하는 별당과 연못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어떤 긴장감도, 잡념도 날려 버리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었다. 아석고택은 아석헌 건립을 시작으로 80여 년, 4대에 걸쳐 지어진 30여 채의 옛 사대부 주택의 전형으로 시대별로 외래 건축양식을 절충했기에 한옥의 진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거니와 계몽 지주계급의 성향이 다양한 건축양식에 잘 녹아있어 고급 생활 한옥으로 그 탁월함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별당

6·25 전란과 세월의 풍파에 훼손된 아석고택은 조상의 유적인 아석헌을 비롯한 구연정, 석운재 등 본체와 별당, 정자, 곡창, 객사 등 부속 한옥들의 중건과 보수, 신축이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사업에 바쁜 아석고택 주인께서 우리를 초청해준 환대도 감사하지만, 보수, 중건된 아석고택에서 보름달을 즐긴다는 것도, 최고의 전통 한옥에서 여름밤을 체험하는 것도 사양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그런 성 회장과 반도지 연못가 정원에서 인사를 드리고 아석고택의 역사를 들으며 누마루 앞 소나무에 걸린 보름달 빛의 교교(皎皎)함에 취한 나는 옛 왕후장상(王侯將相이)나 누렸을 법한 호사를 만끽했다.

성공한 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성 회장은 그의 경륜 때문인지 전통 한옥 주인에게서 흔히 풍기는 유교적 교양의 가부장(家父長적) 이미지보다는 중후한 인품과 절제된 매너의 소유자였다.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체화(體化)된 성 회장 형제는 20세기 선대의 적선(積善)을 재현하고 있는 정성도 놀랍거니와 그들의 조상에 대한 향념(向念) 또한 오늘날의 경제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대 초월적 감동으로 다가왔다.

투자 대상도, 사업용 시설도 아닌 비효율의 상징인 전통 한옥의 보수와 중건, 그리고 그 관리에 거액의 사재를 투자하는 과감함(?)은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 참화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아석고택 사람들의 상처 치료법인지도 모른다.

“돈 버는 것은 기술이지만 돈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처럼 “번 돈보다 쓴 돈이 진짜 내 돈이다”라는 것이 그들의 재물 철학이었다.

1963년 새마을 운동의 기원이 됐다는 경화회(耕和會)를 창립하여 창녕 지역의 번영을 선도했던 선대의 유지(遺志)를 기리기 위해 창녕 읍내에 세운 「耕和會館」은 창녕의 랜드마크가 되어 있었다. 아석고택은 주변에 있는 우포늪과 함께 세계인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서구의 인문 석학들도 전통 한옥 아석고택의 우아함과 편리함을 찾는 발길 이 빈번한데 그들을 맞아주는 아석고택 주인들의 나눔 정신은 끝이 없었다.

그 시대 외래 건축양식을 절충하여 앞뒤면 유리 창문 미닫이로 설계되고 위당 정인보 선생의 기문(記文)이 걸려 있는 근대한옥 일신당(日新堂) 온돌에 지진 꿈같은 하룻밤 추억을 짧은 만필(漫筆)에 담는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김도 한민족공동체재단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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