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만 전 홍콩한인회장, “한국마벨 주재원으로 해외수출시장 개척”
김진만 전 홍콩한인회장, “한국마벨 주재원으로 해외수출시장 개척”
  • 홍콩=이종환 기자
  • 승인 2020.01.2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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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 엔지니어로 튜너, 액정 시장 뚫어...제46대 홍콩한인회장 역임
김진만 제46대 홍콩한인회장
김진만 제46대 홍콩한인회장

저녁시간에 감미로운 팝송을 즐기려면 FM93.9 Mhz를 돌리면 된다. CBS FM 배미향이 저녁스케치다. 클래식에 빠지고 싶으면 93.1 Mhz를 찾아가면 된다. KBS라디오 클래식채널이다. 도로교통정보는 95.1 Mhz 교통방송. 뽕짝을 즐기는데도 이만한 채널이 없다.

이처럼 채널을 찾아가게 만드는 라디오의 구성품이 튜너다. 무선장치에서 주파수를 맞춰내는 장치로, 바리콘이라고 부르는 가변축전지가 핵심부품이다.

지금은 삼성 LG 등 우리나라 전자제품과 IT가 세계의 톱을 달리지만, 불과 40여년 전만해도 우리는 막 걸음마를 뗀 형국이었다. 일본과 미국 등지의 기술이 한국에 들어와 라디오와 TV 등의 부품을 생산해 조립하는 수준이었고, 미제와 일제 완성품은 사치품이던 시절이었다.

이같은 시기, 한국에서 생산해 해외 수출시장을 개척하면서 한국의 ‘전자입국’에 크게 기여한 부품의 하나가 한국마벨이 생산한 튜너였다.

“1975년 한국마벨에서 저를 포함해 4명을 홍콩으로 파견했습니다. 홍콩에 주재하면서 수출시장을 개척하는 임무였습니다. 당시는 일본이 홍콩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김진만 홍콩한국인회 고문의 말이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 11월 하순 홍콩 빅토리아만에 들어서 있는 고급 클럽형 레스토랑에서였다.

제46대 홍콩한인회장(2010.3.1.-2012.2.29.)을 지낸 그는 “당시만 해도 주재원으로 나오려면 상공부가 주관하던 주재원 시험을 쳐서 합격을 해야 했다”면서 “영어 상식 무역 전공과목 시험을 쳤다”고 소개했다. 홍콩은 오죽하면 ‘홍콩간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개인에게도 성공을 위한 기회의 땅이었으나, 영국령으로 비자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구로공단에 회사를 둔 한국마벨은 홍콩에 인재 4명을 파견해 홍콩과 동남아시장 개척에 나섰다. 당시 삼성과 현대도 홍콩에 한명씩을 파견했을 때였으니, 한국마벨이 얼마나 대담한 시도를 했는지 읽을 수 있다.

“일본이 시장을 석권하고 있어서 우리 부품이 파고들이 어려웠어요. 일본 제품과 호완성이 있는 부품만 공급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세계 라디오수신기 생산량이 월 1200만대였는데, 홍콩이 500만대를 생산하고 있었어요. 라디오수신기 부품인 바리콘을 들고 라디오조립공장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한국마벨은 마산 진동출신인 재일동포 김용태 회장이 투자해 경영하던 회사로 구로공단에 공장이 있었고, 3천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던 큰 회사였다.

“홍콩에서는 전자계산기 전자시계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카튜너와 전자계산기에 들어가는 파란색 액정을 공급하기 위해 4명이 조를 이뤄서 업체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김회장은 당시 세일즈 엔지니어로 업체들을 찾아가 한국마벨 부품을 쓸 수 있도록 호환시켜주는 일을 떠맡았다고 한다.

“하루 8군데 회사를 찾아 부품을 호환시켜주는 일을 했습니다. 열심히 하니까 거래처도 70개로 늘었습니다. 1년반 고생한 끝에 우리 제품이 드디어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일본회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했지만, 홍콩시장에서의 마진이 30%를 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홍콩에서 어렵사리 오더를 받았으나 납기에 맞춰 납품을 해주지 못해 클레임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 회사에서 도시산업선교회의 지원으로 노동쟁의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어려움을 이기고 홍콩시장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한국마벨은 해외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바리콘 세계시장 60%를 한국마벨이 공급하게 된 것이다. 한국마벨은 88년 홍콩인근 주하이에 700명이 일하는 공장을 세웠고, 태국에도 1500명 직원이 일하는 공장을 세웠다. 한중수교한 1992년에는 중국 칭다오에도 공장을 세웠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마벨의 홍콩시장 개척사는 한국마벨 성장사의 주축이자, 한국 전자입국과 궤를 같이 하는 역사였다고 하겠다.

“정영수 CJ그룹 고문도 한국마벨 홍콩주재원으로 나왔습니다. 1978년으로 한국마벨이 안정적인 성장기로 접어들었을 때였습니다. 정고문은 80년대 들어 싱가폴 지사로 발령나면서 홍콩을 떠났습니다.”

한국마벨은 창립자인 김용태 회장이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해 타격을 받은 나머지 1995년 한솔제지에 회사를 매각했다. 그와 함께 한국마벨이란 회사 이름도 한솔전자로 바뀌었다.

“1995년 2월 서울 본사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여해 회사매각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 두달후 한솔제지로 넘어갔습니다. 당시 남을 사람과 그만둘 사람을 가렸는데, 주재원으로 나온 지 만 20년이 되던 날 회사를 그만두고, 한솔에 홍콩업무를 인수인계했습니다.”

그후 김회장은 지인과 함께 강원도 횡성에 튜너 생산공장을 만들어 제품을 생산해 홍콩시장에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파트너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5년여 만에 사업을 접었다고 한다.

김회장의 부인은 미국 뉴욕에서 보석가공 엔지니어 자격증을 따서 침사초이에서 보석가게를 열어, 성공적으로 경영했다고 한다. 자녀들도 성공해 아들은 금융권에서 활약하고 있고, 딸과 사위는 미국 보스톤에서 바이오의료분야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70년대만 해도 홍콩 교민수가 1500명 정도였습니다. 가족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주말이면 해변에 나가서 함께 바베큐를 즐기기도 했지요.”

김진만 회장의 회고다. 마천루들이 즐비하게 들어선 지금의 홍콩으로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풍경이다.  

빅토리아만에 있는 고급 클럽형 레스토랑에서.
빅토리아만에 있는 고급 클럽형 레스토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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