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호칼럼] 코끼리 감기
[전성호칼럼] 코끼리 감기
  • 전성호(시인, 미얀마 한인회장)
  • 승인 2020.01.2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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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감기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도대체 감기와 코끼리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미얀마를 다녀간 사람들은 모두가 잘 아는 유명한 말이다. 사스나 홍콩 A형 감기 바이러스처럼 세계를 휩쓴 감기 이름은 아니지만 미얀마에선 그보다 더 맹위를 떨치는 이름이다. 미얀마에서 말하는 코끼리 감기는 일명 ‘치쿤구니아 바이러스’다.

코끼리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주범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감기는 모기가 옮기는데 이 감기로 인한 고통이 코끼리가 온몸을 짓누르는 것처럼 무겁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코끼리 감기다. 한국에 “문틈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 표현이 있지만 감기를 코끼리에 비유한 이 이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 감기에 걸리면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데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보통 감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열이 심하게 나는가 하면, 두통, 피로, 근육통, 발진, 관절통으로 아파본 사람만 안다. 코리안 패션에 매니저로 근무하는 소대명(28)은 한동안 발목을 다친 사람처럼 절뚝거리며 걸어 다녀 왜 그러느냐고 묻자 코끼리 감기가 발목으로 와서 그렇다고 했다. 발을 땅에 디디려고 하면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이 몰려와 온전히 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손목으로 감기가 와 자동차 키를 돌리지 못해 시동을 걸 수 없었으며 다른 친구는 손가락에 감기가 걸려 라이터를 켜지 못해 담배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엄살이 심하다며 무심코 넘겨들었는데 한 달 전 나에게도 역시 이 코끼리가 찾아왔다. 손목이나 발목이 아니라 온몸의 관절이란 관절은 모두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통증이 몰려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급히 병원에 가 포도당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의사들조차 이 바이러스에 손수무책 대책이 없다고 했다. 오직 시간이 흘러 코끼리가 지나가는 길밖에 없는 셈이다. 더러 미얀마 사람들은 코코넛 주스를 마시기도 하는데 큰 효과는 없다.

본래 코코넛은 포도당 주사 한대 맞는 것 보다 낮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 또한 아무런 효과가 없다. 나는 온 몸의 관절을 주무르며 모기의 덩치보다 수천 배는 더 큰 코끼리에 감기의 고통을 비유한 미얀마 사람들의 작명 솜씨에 거듭 공감을 하며 몇 년 전 아프리카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마주쳤던 야생의 흰 코끼리를 떠올렸다. 거대한 그 코끼리는 무거움을 떠올리게 하기 보다 오히려 신성함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사파리 트럭의 몇 배에 달하는 그 코끼리가 빼빼 마른 내 몸을 짓누르고 있다고 상상하자 미얀마 코끼리 감기의 위력이 더 실감이 났다. 코끼리 감기에 걸리면 최소 2주는 잦은 통증이 있다. 길게 가는 사람은 2개월까지도 저리고 쑤시고 통증이 따른다. 아무리 모기장과 각종 모기약으로 방비를 해도 엄청난 비와 무더위가 설치는 습기 많은 나라 미얀마에서 모기에 안 물리고 지나가기란 불가항력이다. 미얀마를 찾는 여행객들은 부디 모기가 싫어하는 퇴치 약품을 꼭 지참하라고 권하고 싶다. 자존심이 유달리 높은 미얀마 사람들 대신 모기가 먹이는 “혹독한 한 방”을 피하려면 말이다.

전성호(시인, 미얀마 한인회장)
전성호(시인, 미얀마 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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