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백의 백두산 기행-1] 천지(天池)의 물은 샘물처럼 맑았다
[안영백의 백두산 기행-1] 천지(天池)의 물은 샘물처럼 맑았다
  • 안영백 뉴질랜드 네이쳐코리아 대표
  • 승인 2020.02.0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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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교민 안영백(제임스 안) 네이쳐코리아 대표가 지난해 9월10일~17일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다녀왔다. 안 대표는 뉴질랜드 출신으로 한국에서 사진작가 겸 트레킹 전문가로 활동하는 로저 셰퍼드 등 7명과 함께 했다. 기행문을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주>
 

평양에서 삼지연으로

오전 10시 30분 평양공항을 출발한 고려항공(Air Koryo) 국내선 비행기는 12시 30분에 삼지연공항에 도착했다. 창밖으로 내다본 날씨는 맑았다. 사흘 동안 내내 마음을 졸였던 날씨였다. 한반도를 영향권에 둔 태풍 링링 때문에 일정이 일그러졌고, 그렇게 일그러진 마음을 우리 일행은 개성과 판문점, 평양 시내의 명소를 둘러보는 것으로 달래야 했다. 그나마 가는 곳마다 감회가 워낙 새롭고 정취가 아름다워서 잠시 일정에 대한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어젯밤에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일기예보로는 날씨가 갤 것이라고 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 장비를 챙기면서도 눈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하늘 위로 올라온 비행기에서 짙푸른 산하를 내려다보면서야 마음이 놓였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땅을 디디자 비로소 가을의 냄새와 빛깔이 물씬 풍겨왔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게는 살갗처럼 익숙한 하늘빛이었고, 익숙한 바람이었다.

삼지연공항은 소박했다. 넓은 활주로 끝은 짙푸른 숲이었고, 숲 너머로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관제탑과 공항 청사는 어느 공항보다 깨끗했고, 사람들의 표정 또한 밝았다. 청사를 빠져나가자 현지 안내원들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 동안 우리 일행이 타고 다닐 25인승 버스와 장비를 싣고 갈 SUV차량과 함께였다. 그러자 우리 일행의 숫자가 늘어났다.

집결지인 북경에서 출발할 때 우리 일행은 일곱 명이었다. 나를 포함한 뉴질랜드 국적의 교민 두 명, 유일한 여성인 죠와 플로이드, 노르웨이 사람 새더릭, 캐나다 사람 사이먼, 그리고 외국인으로서 백두대간을 돌파하여 유명해진 로저 셰퍼드였다. 거기에 평양에서부터 함께 온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소속의 담당자 두 명, 현지의 안내원과 차량 기사들까지 당당한 대열이 되기에 충분했고, 든든한 마음마저 들었다. 숙소로 오다가 혁명 기념비를 둘러보았다. 대리석으로 세운 웅장한 기념비와 깔끔한 보도블록으로 조성된 광장에는 북한사람들이 많았다.
 

베개봉 호텔

베이스캠프인 베개봉 호텔에 도착했다. 젊은 직원들이 우리를 맞았다. 직원들은 친절했고, 영어도 꽤 잘하는 편이었다. 유명한 관광지여서인지 로비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대부분 백두산 당일 등정을 온 관광객들이거나 유니세프 등 단체에서 온 직원들이었다. 한 외국인 관광객이 백두산 트레킹 프로그램이 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면서 부쩍 관심을 보였다. 관광객들을 맞는 직원들의 태도와 말투 또한 순박했다.

약간 오래되긴 했지만, 시설이나 가구는 잘 갖추어져 있었다. 2인용 방에는 침대 두 개와 티 테이블에 딸린 의자가 있었다. 대나무 돗자리가 깔린 바닥은 따뜻한 온돌이었다. 된장국과 감자볶음, 산나물 그리고 돼지고기볶음으로 차린 한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한 후, 호텔 주변을 산책했고, 저녁 식사를 했다. 고급스럽지는 않았지만 정갈한 한식 차림이었다. 몇 가지 요리와 일반 소주, 그리고 도토리 소주가 있었다. 고산지대의 특산품이라는 도토리 소주는 50도가 넘는 독주였다. 달콤한 향이 나면서 씁쓸한 맛이 났다. 그리고 다들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백두산으로

오전 9시, 우리 일행을 태운 승합차와 장비를 실은 지프는 백두산을 향해 출발했다. 빽빽한 숲 사이로 뚫린 도로를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백두산은 손에 잡힐 듯했다. 화창하고 맑은 가을 날씨였다. 숲길을 벗어나자 하늘을 배경으로 은회색 오르막이 완만하게 펼쳐져 있었다. 30여 분을 더 달려서 도착한 곳은 정상 바로 아래의 넓은 주차장이었다. 축구장 반의반 정도 넓이의 바닥에는 깨끗한 보도블록이 깔려 있었고, 둘레에는 난간이 처져 있었다.

여러 지역에서 백두산 답사를 온 단체와 대학생들이 모여 서 있었다.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나이 듬직한 노인들도 섞여 있었다. 문득, 주차장이라기보다는 정상에 오르기 전에 마음가짐을 다시 하는 곳이라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뱀이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도로를 걸어 올라가는 것과 전차처럼 생긴 삭도(케이블 웨이)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정상을 향해 똑바로 올라가기로 했다.

장군봉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비탈을 가로질러 걷기는 쉽지 않았다. 걷는다기보다는 기어간다는 말이 맞지 싶었다. 숨을 헐떡이면서 한참을 기었다고 여겼는데, 정상은 늘 눈앞에 있었다. 그렇다. 내가 지금 오르고자 하는 곳은 백두산에서도 정상이었다. 백두산이 어떤 곳이고, 그 정상에 무엇이 있는가. 쉽사리 정상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나는 무릎을 감싸 쥐고 다시 돌투성이 비탈을 기어올랐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단조롭게 보였는데, 일단 오르려고 하니 험하기 이를 데 없는 산세였다.

정상에 다다랐을 때, 먼저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의 너머에서 한 줄기 빛이 솟구쳤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솟은 봉우리들과 함께 청청(淸淸)한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천지

하늘에 있는 거룩한 못

천지(天池)였다.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있는 거룩한 못이라고 여겼던 바로 그 천지였다. 바람과 빛은 천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신비로움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어졌다. 20여km의 둘레에 지름이 4km 남짓, 여의도만하다고 하던가. 짙푸른 물빛에서는 영험한 기운이 뿜어지는 것 같았고, 잔잔한 수면 위로 그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천지는 내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캐묻지 않았고, 왜 이제야 왔느냐고 나무라지 않았다. 병풍을 두른 듯한 날카로운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천지는 무거운 침묵으로 나를 맞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두 번 천지를 보러 갔었다. 중국을 통해서였고, 장백산 전망대에서였다. 두 번 모두 정상 주변에 짙은 구름이 끼어 있어서 천지를 보지 못했다. 구름 속에서 구름 속 저편을 더듬거렸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천지를 보려면 삼대에 걸쳐서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한반도의 자손인 내가 중국 땅인 장백산에서 천지를 보려 했던 잘못이었다. 그 무례함이 죄송스러웠다. 천지는 백두산의 천지이어야 했다.

백두산의 진정한 정상은 해발 2,750m의 장군봉(將軍峰)이었다. 하늘을 향해서 우뚝 솟아 천지를 내려다보며 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장군봉의 좌우에는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해발봉(海拔峰)과 하늘을 집어삼킬 듯 울부짖는 망천후(望天吼)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장군봉에 올라서자 백두고원(白頭高原)의 모든 산봉우리가 눈 아래에 있었고, 광활한 용암대지, 그리고 끝없는 원시림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양팔을 크게 벌리고 가슴을 크게 부풀려 숨을 들이마셨다. 내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 백두산 정상에 다다른 것이었다. 일찍이 나라의 조종산(祖宗山)으로 일컬어져 왔으며, 또한 남북으로 나뉘어 있는 한민족에게 통일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백두산의 정상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한반도기(統一旗)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 사방을 향해 힘차게 흔들었다. 비로소 한반도의 자식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아오른 물

장군봉 아래에서 천지까지는 풀 한 포기 없는 회색 현무암 지역이었고, 40도 가까운 경사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평양 개성간 고속도로가 일직선이듯이 계단 역시 일직선이었고, 그래서 굉장히 가팔랐다. 우리 일행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리막이어서 수월할 거로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걸을만 했는데, 어느새 무릎이 후들거리고 발목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난간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천지까지는 200m 정도가 남아 있었다. 자잘한 야생초와 모래사장으로 이어졌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다들 걸음이 빨라졌고, 배낭을 벗어 던졌고, 물가에 엎드려 손을 담갔고, 두 손을 모아 물을 떠서 한 모금 마셨다. 천지의 물은 샘물처럼 맑았고, 시릴 만큼 시원했고, 약수인 듯 달콤했다. 과연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아오른, 천지의 물이었다. 나는 물가에 털썩 주저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용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물이 발목을 지나 정강이를 적셨다. 물의 기운이 살갗을 지나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따갑고 찌릿하고 차가웠다.

얼마나 오고 싶었던 천지였으며 보고 싶었던 천지였던가. 살아생전에 못 볼 줄 알았고, 그럴 줄 알고 살아왔다. 나는 천지를 보았고, 천지의 물을 마셨고, 천지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다시 한번 한반도의 자식임을 확인했다. 우리 일행은 풀밭에 모여 앉았다. 베개봉 호텔에서 준비해준 도시락을 쌀 한 톨, 반찬 한 토막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출발했지만 도로를 따라 올라오느라고 늦게 도착한 북한사람들과 대학생들이 우리가 했던 것처럼 물에 손을 담갔고, 물을 한 모금 떠먹었고, 발을 담근 채 활짝 웃으며 사진들을 찍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풀밭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리고 봉우리에 갇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과 천지 사이는 거칠 것 없이 텅 비어 있었다. 회색의 거대한 절벽과 날카로운 능선으로 둘러싸인 신의 영역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나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형체가 없어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드높은 기상과 위대한 업적들이 응집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더 표현할 수 없지만 오랜 세월 동안 묵묵히 흐르고 있는 힘이 나는 자랑스러웠다.

바람도 구름도 없는 최고의 날씨였다. 날씨조차 내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제야 옆을 돌아볼 마음이 들었다. 오른쪽에는 케이블카 관리소가 있었고, 왼쪽에는 지진관측소가 있었다. 남북의 두 지도자가 타고 오르내렸던 케이블카였고, 한시도 쉬지 않는다는 시설이었다. 백두산은 우리가 모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통일의 상징이었고, 잠시 사색에 빠진 살아있는 휴화산(休火山)이었다. 관심이 크면 클수록 백두산은 우리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것이었다. 아무리 뜻 깊은 곳이지만 눌러앉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배낭을 짊어지고 계단을 기어올랐다. 다시 오른 정상에서 나는 천지를 가슴 깊이 담았고, 두 눈 가득 채웠다. 천지에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이 내게는 새삼스러웠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 삶에 새로운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외국인의 신분으로 오른 백두산이지만 그런 점에서 나는 행운아였고, 선택받은 한국인이었다.<다음 호에 계속>

필자소개
안영백(제임스 안):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거주하는 교민으로 북한 전문 여행사인 네이쳐코리아 (www.naturekorea.org)를 운영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와 백두고원을 잇는 백두산 트레킹을 기획했으며 북한낚시 여행상품을 개발했다. 남북의 스포츠레저, 학술, 문화, 자연환경보호 등 민간교류 사업을 하고 있다.<Tel: +64 27 489 1801, Talk: nature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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